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경자 Oct 29. 2023

팔리지 않는 과일은 어디에나 있다

밤이슬을 먹고 자란 열매는 향기롭다


품위를 지닌 것들은 값이 싼 새벽시장에서는 팔리지 않아

새벽부터 시작한 하루를 꼬박 기다려도 오지 않는 만큼 재고가 쌓여가고

쌓이다 보면 밀려서 떨어지는 과일들은 단맛을 먼저 뱉어내고 떪은 맛으로 자신을 포장했다


팔리지 않는 과일처럼 물러져 가는 하루가

제법 묵직해서 어느 땅속에 깊이 묻으면

다시 과일이 될 때가 올 거라고 예언자들은 가르쳤다


꽃을 과일이라고 부르는 것은 쪽빛이 지구 밖으로 투영되어

오로라가 될 때가지의 절박한 시간

꽃의 바깥에서 물들다 사라지는 잎들은 쪽빛이다


한평생 누군가를 축하만 하다 끝나버리겠어

무엇을 시도해도 돌아오지 않는 답이었다


쭉쭉 뻗은 나무들의 갈피들이 햇살을 타고 올라가 집을 짓는다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는데도 계속해서 내려가는 시간에는

그늘을 늘려 빚은 누룩이 꽃으로 피어난다


시장 한 모퉁이에 과일들이 향기를 뱉어낸다

이제 저 과일들은 떨어질 때가 된 것이다

이전 07화 호접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