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탄이 없는 곳, 낙담도 없는 곳, 어디?

- 결국은 인간의 사랑, 아끼는 마음. 캐스팅 크라운즈 '유일한 상흔'

by 가을에 내리는 눈

30년 전쯤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처음 걸었을 때가 떠오른다. 곧고 긴 뻥 뚫린 그 넓은 길, 명품 브랜드 샵과 최고급 부티크가 늘어서 있는 그곳,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제냐/위블로 (그 당시, 내가 아는 것 기준으로만).


'샹젤리제'는 '엘리시온의 들판' (The Elysian Fields, 행복한 영혼들이 사는 낙원의 들판)이라는 뜻이다. 그리스어로는 엘리시온 (Elysion), 라틴어로는 엘리시움 (Elysium), 사후에 신들이 선택한 영웅들이나 축복받은 자들이 영원히 아무런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사는 낙원. 글쎄, 낙원에 사는 사람들도 여전히 저런 명품들을 좋아하나 그런 생각을 나는 했다.


늘어선 마로니에 나무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귀가 간지러울 정도의 그 달콤한 불어 그리고 샹송, 도로와 하나 되어 아치형으로 들어선 곳곳의 예쁜 건물들과 그 위의 주거 공간, 그리고 그렇게 위로 이어진 푸른 하늘, 이런 것들이 그나마 엘리시온/고통 없이 영원한 삶을 누리는 행복한 영혼들, 그런 낙원과 연결되는 이미지였다.


대학 다닐 때 시험이 끝나고 주말이 되면 친구 녀석 집으로 몰려갔다. 친구 아버지가 허락한 이층 거실의 넓은 공간에서, 술을 드시지 않는 그분이 모아놓은 좋은 술들을 마실 수 있는 특혜를 우리에게 주셨다. 늘 말이 없고 그렇게 조금은 무뚝뚝한 분이, 유난히 나를 좋아해 주셨다. 그래서 내게는 특히나 후하셨다. 성악을 전공하는 명품 보이스의 여동생은 가끔 우리를 위해 멋진 노래 몇 곡을 불러주었다. 밤이 깊어가면 우리는 이제 그 녀석 방으로 조용히 자리를 옮긴다. 그리고 고스톱을 시작한다. 머리를 써야 하는 포커보다는 우리는 그저 마음 편한 화투를 즐기는 편이었다.


가끔 파투가 난다. 괜찮다, 어느 녀석은 차라리 잘 되었다 좋아한다. 그저 다시 하면 된다. 육상 100미터 경기에서 부정출발이 생겼다. 다시 출발하면 된다. 물론 같은 행위를 두 번 하는 선수는 즉각 실격이다. 간발의 차이로 타야 할 시내버스가 떠나버렸다. 하지만 조금 더 기다리면 다시 온다, 같은 번호의 버스가.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이런 두 번째 기회라는 것이 아예 없는 때가 있다. 난감하다. '파탄', 일이나 계획 등이 원만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어긋나 깨지는 것을 의미한다. 대개는 그래서 무언가 아주 심각한 상태가 되었음을 말한다. 사람과의 관계가 뜻밖에/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상태에서/나의 의도나 바람과는 다르게/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면서 깨진 것을 가리킨다. 사실 이런 형태의 파탄이 가장 심각한 것이니까.


파탄, 그 한자를 살펴보면 참으로 무섭다. 우선 깨뜨릴 파 - 깨뜨리다/무너지다/깨지다/다하다, 바닥이 나다/부수다, 망그러뜨리다/무너지다. 나쁜 것은 거의 다 들어있다.


그 다음, 옷 터질 탄 - 옷이 터지다/솔기가 터지다/터지다. 깨지고 터지고, 뭐 달리 방법이 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아예 아주 잘게 조각이 나버리는, 아니면 거의 가루 수준으로까지 되어버리는 유리의 깨짐과는 달리, 사기그릇이나 옹기는 그래도 그 깨진 파편이 제법 크다. 그래서 왕왕 그 깨어진 조각들을 이런저런 방법으로 붙여서 다시 쓰는 경우도 있다. 모든 것이 귀하던 그 옛날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가 그렇게 했다.


하지만 어찌 이전만 하겠는가? 그 흉한 모습, 그리고 결국 언젠가는 다시 깨진다. 쉽게 그곳이 다시 아니면 그 옆의 다른 곳이 금이 가고 깨진다. 상처의 흔적 ('상흔')은 무섭다. 육체적으로도 그렇고 특히 우리 마음과 영혼에 어른어른 비치는, 남아있는 그 분명한 기억은 더욱. 그래서 트라우마 (trauma,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 충격이나 쇼크 - '큰 상처'를 뜻하는 라틴어)라는 의학 용어로까지 자리잡은 것 아닌가? 외상/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낙담,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맥이 풀리는 것, 혹은 너무 놀라서 마치 간이 떨어지는 듯한 상태. 쓸개 (담)가 떨어진단다. 이거 정말 큰 일 아닌가? 낙담, 그에 따른 실의, 사람을 참으로 힘들게 하는 일이다. 안타깝고 애처로운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없는 곳이 있단다. 정말? 당연 이 세상은 아닐 것이리라. 우리 사는 이 현세에서 어찌 깨어짐이 없고 어찌 낙심하고 주저앉는 일이 없을 것인가? 그런 것이 없다면 거꾸로 이미 우리들 사는 이 세상이 아닐 것이다. 물론 늘 예외 혹은 '비기/비책'은 있는 것이지만!


그러다면 정녕 방법은 없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이 파탄과 낙담의 공포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이 순간 등장하는 뻔한 얘기 - '그러니 우리가 늘 노력해야지요. 애쓰고 힘써야지요. 깨지는 일, 낙담하고 그렇게 넋 놓고 주저앉아 있는 일이 최소화도록!' 나는 이런 정말 뻔한 얘기를 내게 하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난다.


도대체 '어떻게'? 나 혼자의 일이라면 뭐 어떻게든 해 보겠다. 그런데 이 경우는 상대가 있는 게임 아닌가? 내가 도무지 어떻게 통제할 수 없는 상대방이. 그저 그의 처분과 판단을 바라보는 수밖에는.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이 그렇고 (특히 부부 사이의 일이라면 더더욱) 나를 둘러싼 일의 상황과 사정이 또한 그렇고. 애초 나의 컨트롤 범위 밖의 일이라면 사실 그 경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쯤은 나도 알아요. 그럼 내 이리 묻지요. 노력하니 그리 되던가요? 부단히 애쓰고 힘을 다하니 되더냐고요? 그래서 지금 당신의 삶은 괜찮아요? 아니잖아요? 당신도 이미 알고 있잖아요? 그러니 그런 '단지 말을 하기 위해 하는 상투적인' 얘기는 제게 하지 마세요! 부탁드려요!"


그래서 나는 오늘 할 말이 별로 없다. 그렇기에 이제 나는 바로 오늘의 시로 들어간다. 애쓰고 힘써서 번역했다. 이 밴드의 음악, 멜로디가 좋고 가창력도 좋다. 늘 가사가 참으로 깊고 애잔하다. 굳이 종교적인 의미나 인위적인 연결짓기는 하지 않으시면 좋겠다.


내게 음악은 그저 음악이다, 좋은 음악일 뿐이다. 내가 느끼고 음미하고, 그래서 나만의 어떤 메시지를 얻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오늘 내가 여러분들에게도 바라는 것이다.


그전에, '어디?'에 대한 제 답을 드리는 것이 도리겠지요?


'늘 내가 칭찬하고 응원하는 나, 그 안에서 비로소 가능한 것! 아주 조금이라도.' - 설사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엘리시움/무릉도원/샹글리라/발할라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나의 이 마음 속에, 내 마음의 평화 영혼의 평온은 있는 것이니까요!


'너그러움과 선함, 세상을 보는 창, 따뜻함과 긍지, 내가 나를 바라보는 창', 최근의 저의 생활 속 모토입니다.


하늘의 상흔 (Scars in Heaven)

- 캐스팅 크라운즈 (Casting Crowns)

그때 그것이 정말 우리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내가 알기만 했어도,

당연히 내 모든 일들을 다 나중으로 미루었을 것인데,

조금이라도 더 오래 머물렀을 텐데,

좀 더 꼭 잡아주었을 것을!


만일 당신과 하루를 더 있을 수 있다면, 그때 나는 당신에게 과연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여기 지금 내 마음 한구석에 그때 무언가 놓친 것 같은 그런 상처가 있거든!

사람들은 그러지, 시간이 지나면 그 또한 다 아물 거라고.


그러나 나는 알아, 당신은 지금 당신의 그 모든 아픔과 상처들이 깨끗이 지워진

그런 곳에 있음을, 그리고 사실 그처럼 그곳에서 당신의 상처가 치유되었음을 아는 것만으로도

내 상처는 치유되고 있어.


천국에서의 유일한 상흔, 그것은 나의 것도 아니고 당신의 것도 아니야.

그곳에는 깨지고 부서지고 낙심하고 파탄이 나고

그런 일이 없거든. 낡고 오래된 모든 것들이 다 새것이 되지.


비록 여전히 눈물은 흘러내리지만 그래도 천국에 있는 유일한 상흔은

지금 당신을 꼭 잡아주고 있는 그 두 손에 있는 그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나는 흐뭇하게 미소 짓게 돼.


지금껏 당신이 걸어온 길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알아.

그 과정에서 내내 당신은 당신 몫의 상처를 받아야만 했지.

하지만 오, 기쁘게도 당신은 지금 밝고 따뜻한 태양 아래 서있어,

당신은 지금까지 치열하게 당신의 싸움을 싸워왔고

이제 드디어 당신의 그 힘든 경주는 끝이 났어.

이제 모든 고통은 저 멀리 떨어져 있어.


천국에 있는 유일한 상흔, 그건 당신의 것도 나의 것도 아니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지금 당신을 꼭 잡아주고 있는 그 손을

찬미할지니.


지금도 이 순간에도 내 마음 속에서 당신을 보지 않는 날은 단 하루도 없어,

그리고 오히려 더욱더 내 마음 모든 곳에서 당신은 살고 있어.

내가 당신과 함께 그 태양 아래 서는 그날까지

나는 이곳에서 나의 싸움을 싸워갈 거야,

그리고 나의 삶의 경주를 계속할 거야,


당신이 지금 그곳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나도 마침내 보는 그때까지.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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