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재의 의미, 긍지와 자랑, 내 편. 하이네 '아름다운 달 오월에'
대학 초년생 때 친구들과 결성한 독서클럽에 열심인 시기가 있었다. 소설가 최인훈의 소설 '광장'이 그 이름이었다. 그때 어느 날의 주제가 이런 것이었다 - '과연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이것은 그저 개인의 판단과 선택의 문제일 뿐인가? 논리와 감정, 그 경계는 어디인가?'
앞에 폭이 넓고 깊은 강이 있다. 뒤에서는 지금 적들이 나를 쫓고 있다. 강을 건너지 못하고 그들에게 잡히면 아마도 예외 없이 모두 여기서 죽임을 당할 것이다. 다른 곳에서도 그랬단다. 여기 아주 작은 배가 한 척 있다. 노를 저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러니 나는 타야 한다, 이 배를 사용해서 강을 건널 생각이라면. 그런데 나 외에 단 한 사람만 더 탈 수 있다. 배가 작은 것도 그 이유지만 배 바닥에 이미 작은 구멍이 난 상태라 무게가 무거워지면 그냥 가라앉고 만다.
나, 나의 아내 그리고 아직은 어린 내 아들이 여기 있다. 내가 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겠다 그리 결정한다면 그때 나는 과연 누구를 태우고 이 강을 건널 것인가? 다행스럽게도 아들도 아내도 한 명은 누구나 탈 수 있다. 누가 여기 남을 것인가, 아내 아니면 아들? 그것도 아니면 우리 셋 다?
그때 내가 열을 올리며 답을 한 기억이 생생하다. 그 논리와 내 판단의 근거도 흥분 속에 말했다, 거의 그대로 다 기억난다. 그런데 지금 내게 내 생각을 말하라 한다면 그때와는 많이 다를 것이라 그리 생각한다.
지나온 긴 세월/그 사이 내가 겪은 그 많은 세상의 파도와 거센 바람/그로 인한 내 인생관의 변화/나를 둘러싼 환경과 상황의 변화/삶에 대한 나의 기대치의 큰 변화/내가 경험해 본 아내와 아들/그래서 조금은 감정적일 내 판단의 근거들, 그 미묘한 흔들림...
아들은 아버지에게 무엇일까? 어떤 존재로 다가올까? 내 안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을까?
하나, 나의 모든 것이다. 너무 상투적인 표현 아니냐고요? 그런데 사실이 그래요. 그것보다 더 잘 표현할 단어나 문장이 저는 지금 딱히 기억나지 않아요. 제가 한국말을 잘 하기는 하지만. '한 이빨 한다'는 소리를 학교 다닐 때부터 자주, 많이 들었지만!
내가 속한 과가 그 학교 다른 과 여학생들과 교내 단체 미팅을 할 때면 나는 말을 담당하는 이빨로, 또 한 친구는 우리 과 대표 얼굴로 그렇게 둘이서 '맛 보여주기' 파견을 나갔다. 여학생들 강의실 앞에서 기다리다가 교수님이 오시면 예의를 다해 양해를 구하고 귀한 5분의 시간을 얻어낸다. 모델은 내 옆에 서있고 5분만에 내가 프리젠테이션을 끝낸다. 일사천리, 실패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말 하나는 잘한다, 그때도 지금도!
'너는 나의 모든 것이야' (You mean everything to me), '나는 오직 너를 사랑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어' (I was born to love you) 굳이 이런 팝송의 가사들이 아니더라도 아들은 그 아버지에게는 그냥 모든 것이다. 그의 삶의 모든 것이고, 그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며, 언젠가는 가게 될 그 다른 세계에서의 모든 것이다. 끝 (피어리어드, Period!)!
내가 좋아하는 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는 자신의 어머니를 많이 사랑한 듯하다. 그들의 노래 곳곳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퀸의 정말 100% 불후의 명곡 '보헤미안 랩소디'에도 어머니를 향한 애뜻한 외침이 몇 군데 등장한다.
그룹의 리드 싱어, 작곡가 그리고 작사가인 프레디 머큐리는 인도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잠시 공부한 페르시아 계통의 사람이다. 아버지는 영국의 관리로 그 당시 식민지였던 탄자니아 진지바르에 파견되어 일했다. 당연 부유했다. 그러나 그 후 식민지배가 끝나고 그의 집은 탄압을 받는다. 재산도 거의 반 이상 몰수당했다. 결국 그의 가족은 영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곳에서 컬리지를 나오고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다.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전공이었다. 그러다가 록 밴드그룹 퀸을 결성한다 (그는 이미 모여진 기존 멤버들의 오디션을 받고 합류한다). 퀸의 사실상 리더가 된다, 리드 보컬뿐만 아니라 모든 활동의. 그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퀸은 있는 것이라고 나는 그리 믿는다.
후일 내가 탄생시킬 나의 아들을 사랑하기 위해 나는 태어난 것 같다. 그 숭고한 미션을 위해 나의 어머니 아버지는 나를 낳으신 것 같다. 늘 그리 생각한다. 굳이 천륜을 말하지 않아도 그렇다, 내 마음이 그렇게 느낀다 그 오랜 세월 변함 없이. 그리움과 그 사랑의 강도는 점점 그 정도를 더해만 간다. 고마운 일이다.
둘, 또 다른 기회 혹은 가능성? 아들에게는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은근히 부담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나의 아들을 통해 나는 '한판 뒤집기' 또는 나의 여전히 안타깝고 애석한 부족 부분을 메꿀 기회가 올 수도 있겠다,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의식 속에서든 무의식 속에서든. 나는 부인하지 못한다. 사실이다. 그와 나를 동일시한다. 패자부활전에서 가까스로 얻어낸 또 한 번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한 판 더 뛰어볼 판돈이 내게 생긴 것이다.
셋, 나의 아버지에게 할 말이 생겼다. 아버지가 낳아주신 저, 저도 아버지가 크게 기뻐하실 자식을 낳았습니다. 늘 보고 계시지요? 좋으시지요? 든든하고 뿌듯하시지요, 저도 제 아들 녀석은 더욱 더? 그러니 저도 제 할 일의 최소한은 한 겁니다, 아버지?
넷, 본능적 만족감도 있다. 아무튼 모든 동물의 기본적 태생적 욕구와 바람인 '종의 보존' 행위를 멋지게 완수한 것이니까! 동물들은 지금도 오직 이 목적을 위해 짝을 고르고 그 책무에 집중한다. 사랑이니 삶의 안정이니, 영혼의 만족이니 이런 거창한 소리 하지 않는다. 그만큼 모든 살아있는 존재 (인간, 동물과 식물, 그리고 하다못해 원생동물들까지도)의 엄숙한 존재의 목적이자 임무다.
다섯, 내 세력, 나의 편의 확보다. 원시시대 그리고 유목민의 시대에는 이것은 대단히 큰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것이었다. 생과 사의 문제와 직결되는 사안이기도 했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이런 내 편과 나의 세력의 확보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리적 싸움을 한다고 해도 그렇다. 나는 형제가 많았다. 어린 시절 내가 늘 든든한 것이 있었다. 다른 누군가가 나를 부당하게 괴롭히면 꼭 형들이 나서서 쉽게 해결해 주었다. 그때나 지금에나 결국은 힘이 현실이니까. 아들의 존재로 인해 나는 그렇게 늘 든든했다. 내 나이 들어가니 더욱 그렇다. 나는 점점 약화되고 그에 비례해서 아들은 크게 강성해지고.
여섯, 나의 장자방 (장량 -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우게 한 일등 참모)을 가까이 두고 있다고 나는 언제나 그리 생각한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나의 장자방이고 나는 그의 장량이었다. 지금은 내가 더 많이 그의 조언과 전략적 판단에 의존한다. 이 또한 크게 고마운 일이다.
일곱, 앞으로의 그의 삶에 대한 나의 긍정적 소망이 담긴 기대감 혹은 호기심. 그는 어떤 삶을 살아갈까? 지금의 그의 모습과는 또 어떻게 다를까? 그가 만나게 될 미래의 가족들은 그에게 그리고 내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그저 아비로서의 궁금함이고 그의 화양년화를 바라는 간구의 마음이다.
여덟, 혹자에게는 미래의 의지처 또는 보호자로서의 역할이 현실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나름 이해는 한다. 어쩌면 우리 사는 순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내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자식에게 늘 부담을 주는 그런 존재는 되지 않겠다고, 절대로.
나의 부모님이 내게 그런 생각을 갖게 한 것은 아니다, 오해하지 마시기를. 나의 어머니 내 아버지는 다른 어머니 아버지만큼이나 참으로 좋은 분들이셨다. 나는 과연 내 자식에게 그만큼 해 주었나 수시로 자문한다.
내 삶의 모델이었다, 특히 나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존경하는 인물을 써내라고 하면 나는 언제나 나의 아버지라고 썼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한 사람 더 있다 이제는 - 나의 아들. 글쎄 적어도 존중은 당연하고 존경까지도 별 문제없다. 대단한 아이다, 여러 면에서. 그것이 늘 나를 기쁘게 한다.
아홉,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결국 아들은, 내가 이 세상에 와서 그나마 잘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나의 긍지이고 자부심이다. 늦은 밤 어두운 이불 속에서도 내가 나에게 당당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다. 이거면 충분하다 내게는!
오늘의 시를 본다. 내가 어린 시절 아마도 처음 만난 시의 세계일 것이다. 50년 넘게 늘 암송하고 있다, 머릿속으로 또 마음으로.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 (Dichterliebe)'의 첫 번째 곡으로도 유명하다. 독일의 아름다운 봄날, 만물의 소생과 함께 내 마음에서 솟아나는 뜨겁게 넘치는 사랑의 시작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움, 소망, 그리고 고백'
크리스티안 요한 하인리히 하이네 (Christian Johann Heinrich Heine), 뭐 다른 말이 필요 없는 대단한 분이다. 28살의 나이에 독일 괴팅겐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고 특히 수학과 물리학 분야에서 강점을 보인다. 법학 분야도 아주 유명하다. 그의 시 곳곳에서 그 대단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엄격하게 절제된 시어, 일절 군더더기 없는 시의 길이, 시 속의 논리와 철저한 감정의 강약 조절...
슈베르트나 슈만을 비롯한 대단한 작곡가들이 그처럼 열정적으로 그의 시를 자기 음악의 한 부분으로 삼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몇 해 전 나는 뜻밖의 우연 속에 큰 일을 하나 이루었다. 러시아에 인접한 작은 나라 조지아에 머무르던 그때, 초록빛 양장본의 아담한 중간 크기의 그의 시집 독일어 원본을 한 권 발견했다. 그 자리에서 얼른 찾아본다.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이 시가 들어 있다. 그 후 런던에서 아들을 만날 때 그에게 주는 큰 선물로 이 책을 주었다. 곱게 포장하고 내가 손글씨로 이 시를 독일어와 한글로 써서, 책의 독일어 원시 해당 페이지에 끼워서, 아들에게 주는 나의 별도 메시지 편지와 함께. 좋아했다, 아들이.
아름다운 달 오월에 ('임 분더쇄넨 모나트 마이')
- 하인리히 하이네
아름다운 달 오월에
모든 꽃들이 피어날 때
그때 내 가슴엔
사랑이 싺텄지
아름다운 달 오월에
모든 새들이 지저귈 때
그때 난 그녀에게
나의 그리움과 소망을 고백했었지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 독일어 원시에서 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