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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심 May 09. 2024

D+16 home sweet home

엄마의 일기

바구니 카시트 안에 아이가 쏙 들어가 있다. 아니, 조금 쭈그러진 채로 들어가 있다. 목이 불편해 보이지만 자세를 잘 잡아주는 게 어렵다. 카시트가 제대로 만들어진 게 맞는지 의심한 채로 차에 태웠다. 집으로 가는 15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진다. 작은 덜컹에도 '조심해'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이의 물리적 고향은 서울, 그것도 중심에 가까운 상당히 복잡한 동네가 되었고, 아이의 첫 집은 꽤 오랜 시간 사람들이 자리 잡고 살아 크고 작은 주택과 빌라가 부대껴있는, 심지어 아파트까지 들어서 있는 골목 끝자락에 위치한 6층자리 빌라에 4층이 되었다. 옥상에 올라가면 다른 건물들 사이로 한강도 보이고, 그곳으로 산책 나가기도 용이하다. 강으로 넘어가는 일명 토끼굴 주변으론 육고기, 물고기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음식점들이 즐비해 있고 편의점도 두세 군데가 있어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동네사람, 외지인 가리지 않고 오가는 턱에 사람 사는 냄새나는 이곳이 아이의 고향이다. 얼마간 이곳에서 아이는 유아차에 실려 첫 산책을 나가 세상에 이것저것을 구경할 테고, 대지에 스스로 첫 발을 딛딜테고, 첫 어린이집을 다니며 사회생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아이의 집은 아직 성인 두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가구들로 채워져 있다. 언젠가 아이방으로 꾸며질 작은 방은 높은 책장과 책상, 전자기기들이 들어가 있고 한동안 아이가 잠들 게 될 안방에도 아이에게 허락된 공간은 600x1200자리 원목 침대 하나뿐이다. 거실에는 반 접힌 매트리스 위에 역류방지쿠션과 모빌 하나가 딸랑이다. 아, 아이의 맘마존이 작은 방 책장과 책상 사이에 겨우 들어가 있다.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아이의 짐들은 옷방에서 줄지어 대기 중이다.


자신의 집에 처음 들어온 아이는 일단 거실 한편에 마련되어 있는 역류방지쿠션 위에 폭 뉘어졌다. 쿠션감이 만족스러운지 예쁜 미소를 지으며 쌔근쌔근 잠들어 있는 아이는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아이에게 첫 집은, 고향은 어떻게 기억될까. 어쩌면 이 집과 이곳이 기억에 채 머물지 못한 때에 터를 옮기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그리워할 만한 집이 없다. 고향도 서울 변두리 어디쯤이라고만 알지 정확히 어딘지 잘 모른다. 집안 사전상 2년마다 옮겨다녀서 동네에 정 붙이기 쉽지 않았고 동네 친구 한두 명 만들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따뜻했던 한 동네, 집 하면 떠오르는 따듯한 기억이 하나 있다.


길을 잃은 적이 있다. 가랑비가 내리던 장마 끝물의 어느 날, 당시 여덟 살이었던 나는 전주의 한 시골 마을에 살고 있었고, 그날은 친구네 놀러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연탄을 때는 낮은 1, 2층 주택으로 이루어진 골목들이 얽히고설켜 이 길이 저 길 같고, 저 길이 이 길 같던 동네였다.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돌고 또 돌고 다시 돌았다. 멀리서 볼 땐 익숙해 보여 ‘저기가 우리 집인가’하고 가까이 가보면, 낯선 대문이 서 있고, ‘여기가 우리 집인가’하고 들여다보면 진짜 우리 집 옆에 붙어있던 옆집의 모양이 달랐다. 적갈색 지붕에 2층짜리 목조 주택의 담장 한 귀퉁이에 있는, 줄기차게 드나들던 반지하로 통하는 쪽문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울상이 되어 골목을 하염없이 뺑뺑 돌았다. 친구네에서 나올 때, 하늘을 가득 덮었던 먹구름이 비까지 뿌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머, 얘! 왜 이러고 있니?” 우산이 없어 눈물, 콧물, 빗물로 내 얼굴이 흠뻑 적셔질 때쯤 한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나는 낯선 아주머니의 등장에 눈물을 멈추려 애썼지만, 도움을 줄 누군가를 만났다는 안도감에 순간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을 수 없었다. 아주머니는 놀라면서도 내 손을 잡아주며, “괜찮아, 괜찮아. 길을 잃은 거야? 여기 사니? 집이 어딘데? 집 번호는 아니?” 여러 질문을 쏟아냈다. 아주머니의 손은 따듯했다. 나는 간신히 외우고 있던 집 전화번호를 읊었다.      


잠시 후, 나는 아주머니의 뒤를 따라 돌았던 길을 다시 빙글빙글 돌았다. 충분히 돌았다고 생각할 즈음 눈에 익은 큰 우산이 보였다. 초록색과 흰색이 파라솔처럼 번갈아 가며 원을 만들고 있는 엄마의 우산이다. 엄마는 죄송함과 감사함의 표정을 동시에 지으며 비에 등이 젖도록 연신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내 손이 엄마 손에 인계되었다. 엄마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집에 들어가니 맛있는 냄새가 났다. 아침에 내가 먹고 싶다고 졸랐던 칼국수였다. 칼국수는 불어있었다. 나도 불어있었다. 나는 혼날까 봐 전전긍긍하는데, 엄마는 나를 품에 안고 밖에서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고, 왜 이제 왔냐며 훌쩍이셨다. 나는 비로소 집으로 오는 길을 찾았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던 칼국수를 눈물과 함께, 엄마와 함께 먹었다.     


그로부터 4년 뒤 우리는 다시 서울로 이사 왔고, 서울로 온 그 해에 엄마는 병으로 돌아가셨다. 그러고도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나는 엄마가 그리울 때면, 그때의 일을 기억한다. 따뜻한 집이 그리울 때면, 그때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그때의 아주머니의 따듯한 손과 엄마의 차가운 손을 기억한다. 두 분의 손 온도는 달랐지만, 마음 온도가 같았다는 것도 안다.




아이가 집을 떠올릴 때, 고향을 기억할 때, 따듯함이 있기를 소원한다. 때론 길을 잃어 눈물이 흐르더라도 돌아갈 따듯한 집과 문 앞에 나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엄마가 있다는 것을 마음에 품고 살 수 있도록 따듯한 집을 만들어 주고 싶다. 물리적으로도 따듯한 공간으로 꾸며주고 싶다. 아이가 기억하는 첫 집이 이곳이 아니더라도, 낯선 세상에 나온 아이가 잠을 자고 터미를 하고 배밀이를 하고 네발로 기고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나는 이곳이 차갑지 않도록, 그리고 아이와 첫 동거를 시작한 나에게도 이곳이 따듯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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