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서 따낸 가지를 데쳐서 나물을 무치고, 고추를 된장에 찍어 달게 점심을 들었다. 나물을 씹을 때, 가지꽃에 매달려 건들건들 노래하던 여치의 소리가 들렸다. 밭의 가장자리에는 잎을 갉아먹다 지친 벌거숭이 애벌레가 기어간다. 머리부터 수그리고 온몸을 접었다 폈다 하며 한 호흡으로, 단숨에 간다. 굽이치는 몸짓에는 계절의 흔적이 없어서, 신생한 생명임을 알겠다.
손바닥만 한 오후의 텃밭은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한아름 따낸 바질과 깻잎은 향기롭다. 솔솔 흙냄새를 풍기던 부추는 꽃대를 올려서, 온 고랑에 별사탕을 뿌려 놓았다. 두어 포기뿐인 배추 모종 사이로 흰나비가 날아오고, 여린 날갯짓으로 팔랑대면 어지럼증이 난다. 배추가 속이 들고 살이 차서 이름값을 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비와 잠자리와 애벌레를 불러 모으는 일만은 충실히 하고 있음을 안다. 배추에게, 누군가의 놀이터이자 편안한 잠자리와 먹이가 되는 다층적 임무는 성실히 수행되고 있다. “모든 존재는 다른 존재의 이유가 된다”라는 미셸 세르의 문장은 배춧잎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잠시 딴청을 피우고 오면, 날아든 잡초의 씨앗이 금세 싹을 틔우고, 봄가을 구분 없이 번성한다. 이내 잔디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박힌다. 꼼지발로 땅을 딛고 서서 기어이 뿌리를 내린 녀석들도 있다. 공들인 잔디 정원 사이로 놀러 온 모든 씨앗들은 잡초로 치부되어 쫓겨 간다. 들의 씨앗은 각기 제 살 곳을 찾아 내려앉아야 한다. 마당의 잔디에 눌러앉은 것들은 여지없다.
주인을 떠난 닭들이 산으로 도망갔고, 어미 닭과 병아리를 노리던 고양이도 얼씬하지 않는 오후. 빈 닭장엔 단물이 빠진 사과가 굴러다니고, 돌담 너머에 숨어 있던 머루가 송이송이 까만 눈빛을 보내온다. 장미 가시를 헤치고 돌담마다 박힌 알머루를 한 움큼 따서 입에 넣어본다. 달고 시큼하고 오래 퇴적된 묵은 먼지 맛이 난다. 우두둑 씨앗을 깨물어서 먹으면 입가는 이내 검붉어지고 만다. 손끝에 번진 머루 빛은 어머니의 밭두렁에 열 지어선 수숫대를 연상케 한다. 한여름의 뙤약볕을 견디고, 가물었던 날을 버텨온 동지처럼, 키 작은 해바라기가 병풍을 두르고 여물어간다.
나는 가을날의 하늘이 얼마나 높고 푸른지, 몇 해나 온전히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어 세어본다. 그 세월의 깊이만큼 나의 시간도 깊어졌는가 하는 물음에 이르면, 접어 세던 손가락의 셈을 잊어버린다. 머리칼은 온통 허옇게 센 억새처럼 헝클어져서 바람 한 번에도 나폴거리며 날린다. 기억은 상념을 따라잡지 못한다.
내가 소망하고 지키고 싶었던 것들과 당신에게 보내고 싶었던 말을 무성한 거미줄에 매달아 둔다. 새벽이슬이 내려 거미줄이 낭창해지면, “빛은 자신을 잃으며 드러난다”라던 시인의 말처럼, 나의 사연도 영롱하게 진동한다. 빛을 따라 물의 분자는 스스로 분열하고, 이글거리다 사라진다.
변함없는 하루가 평온처럼 여겨지는 나이가 되었다. 내가 발 벗고 선 작은 텃밭에도 신이 계셔서, 고춧대와 콩 줄기 사이로 바람을 고루 보내주듯 나의 하루에도 평화를 내려주신다. 이제 하루하루에 의미를 덧입히기보다는, 고요를 사랑하게 되었다. 작고 보잘것없는 것을 가까이하며, 소박한 음식을 달가워하는 삶에 충만을 느낀다. 저녁나절 나긋나긋하게 내려온 엷은 노을이 하늘에 가득하다. 노을 속으로 잠자리가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