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을 다듬는 고등어

by 이채이

나는 직설화법에 서툴다. 직설화법의 생생함과 펄떡거림은 문장 안에서 요동치는 것이어서, 그놈을 진정시키려면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사람 사이에 오가는 거침없는 말은, 간접의 그물에 넣지 않으면 곤란해진다. 그 문장은 손으로 잡을 수 없는 활어처럼 미끄럽다.

바닷속을 누비던 물고기가 그물에 걸려 파닥거린다. 그물을 들어 올려서 마침내 배의 갑판에 쏟아내면, 나는 그 순간의 문장들을 모은다. 형용사와 부사는 성급한 붕장어처럼 꿈틀댄다. 나는 문장이 넙치처럼 차분해지는 순간까지, 바닷속 여린 지느러미의 기억을 모두 버릴 때까지, 숨죽여 기다리는 것을 좋아한다.

갑판에서 숨을 들썩이면서 유독 오래 버티는 것, 아가미를 붉게 드러내는 것들이 있다. 눈은 태양 아래서 무방비하다. 아가미가 아닌 허파 호흡을 하는 짐승이 되지 못한 종의 숙명이 언뜻 비쳐 든다. 어쩌면 바닷속에서 전설처럼 살았더라면 하고 바라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아가미와 지느러미는 무기력해진다. 순식간에 모든 것을 깨달아 버린 승려의 눈빛을 남기고, 마침내 온순해진다. 살고자 애쓰지 않고 순순히 무로 걸어 들어가는 꿈을 꾸는 싯다르타처럼, 고요하다. 다음 생은 뭍의 짐승으로 태어나기를. 날개를 펴서 물가를 날며, 물결을 박차고 오르는 가벼운 삶을 살기를.

제 몸속에 감춰져야 할 단단한 뼈가 비늘 견갑으로 무장된다. 비늘을 가진 물고기의 허세는 청동거울을 목에 주렁주렁 매단 제사장을 닮았다. 갑옷을 입고 자랑처럼 부유하는 삶을 사는 물고기는, 그들의 신화를 비늘에 새긴다. 비늘에 적힌 이야기는 인간이 새기던 갑골문을 연상케 한다. 거북이 등껍질에 새겨진 창세기의 설화는, 신과 인간이 나누던 친밀하고도 음모 가득한 대화를 떠올리게 한다. 신과 인간을 잇는 말씀의 통로가 어떤 힘이나 존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비늘을 가지지 못한 물고기들은 이내 신성에서 소외되고 단절된다.

청동거울이 하늘에 연결된 제사장의 상징이었듯 비늘 또한 그러하다. 비늘을 가지지 못한 물고기를 볼 때면, 어쩌면 그들이 물고기에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진화의 중턱에 있었던 건 아닐까 상상하게 된다.


뭍에 사는 것들에게는 피부라는 마감재가 필요하다. 대양에서 전설로 전해지던 비늘은, 육지에서는 바싹 말라서 부스럼처럼 떨어질 것들이다. 삶을 충동질하던 기억은 제 몸의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떼어내고, 따끔따끔한 피부만 남긴다. 물에서 뭍으로 기어 나오는 것. 그것이 진화의 방향이고 순리라면 매끈한 피부를 가진 이들은 이미 진화의 준비를 마친 것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유전적 특질마저 넘어서는 형질의 변화에 이르지는 못할 것이다.

갑판 위에서 마지막 숨을 들이마시고 있는 비늘 없는 고등어를 보면, 진화를 완성하지 못한 생명의 절박함을 느낀다. 그들이 꾸었던 세상은 물고기가 하늘을 날고 붕장어가 용이 되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초월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존재의 한계를 무시하는 우주를 꿈꾸었던 게 아닐까. 갑판 위의 물고기는 이제야 그 이룰 수 없는 서사를 듣고 있는 게 아닐까.

갑판을 긁는 지느러미의 움직임은 은은한 바다의 살냄새를 남긴다. 고등어의 안광이 사위어 간다. 날것의 퍼덕임은 수그러든다. 간절함이 하늘에 닿으면 그 소망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고등어는 죽는 순간까지 눈을 감지 않고 하늘의 구름을 밀어내는 바람을 본다. 때맞추어 산꼭대기 절의 수도승이 목어를 친다. 그 소리로 성불의 깨달음을 꿈꿀 수 있기를.

나는 물에서 축적한 노골적이고도 촘촘한 생살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무른 살을 지탱하는 가느다란 가시의 뾰족함을 취하고자 한다. 하여 내가 주워 담는 것은 직설이 아니라 바다 것들의 속살에 담긴 밀도 있는 기억이다. 그 살을 꼼꼼히 발라서 나는 나의 문장을 완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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