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어가는 것들의 마지막을 보고 있다. 제각각으로 변주하는 빛은 비행기가 부리고 간 흔적운을 따라 모였다 흩어진다. 이국땅에서 죽은 작곡가 윤이상이 고향의 소리로 기억한, 소의 목방울이 '딸랑' 울리며 통영항에 퍼져간다.
멀리 사라지는 비행기는 망고 더미를 물에 빠뜨리면서, 이국의 땅으로 사라진다. 쏟아진 망고가 석양에 부딪혀서 튕기며 둥글게 구른다. 빛은 망고의 노랑을 산란시켜서 바닷속으로 가라앉힌다. 수평선을 떠다니는 망고들이 돌고래 떼의 등처럼 붉게 물들어간다. 그 빛을 주워 담으러 집어등을 단 고깃배가 몰려든다. 어지러이 흐트러진 붉고 노란 것들은, 그대로 풀어져서 물에 스며든다. 검붉어진 것들을 어선보다 먼저 바다가 빨아들인다.
하나의 음에 깃든 여러 세계를 꿈꾸었던 남자, 그의 소망은 해지는 바닷가에 널려있다. 그가 보내온 편지를 뜯으면, 밀봉된 푄바람(Föhn)이 새어 나와 발목부터 적셔온다. 그의 편지엔 활자가 없고, 빼곡히 들어찬 음표가 꿈틀거리며 접혀있다. 한 번도 소리가 된 적 없는 무생의 표기는, 살아있는 무엇이 되고자 웅웅댄다. 음표와 음표를 건너가는 무엇이 소리를 나게 하는 것인지, 무엇이 통영의 바다를 출렁이게 하는지 난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푄바람과 어우러진 바다의 바람은 그의 노래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해 불가한 편지에 덧붙이는 나의 답장은 늘 살아있는 것들이다. 봉투 가득 바닷물을 퍼담고, 망고가 일렁이던 노을 진 풍경을 쓸어 모아 보내는 것이다. 그 위에 어시장 아낙의 빼때기죽 인심과 언덕배기에 박힌 백열전구의 미열을 얹는다. 높은 파도를 톱질해 온 뱃사람들의 웃음과 경매장의 새벽 활기까지 동봉한다. 등이 푸른 만선의 배는 항구에 닻을 내리고, 잠시 자족한다.
바다를 마주 앉아 해산물 한 젓가락을 집어넣는다. 해안선의 무늬를 닮은 살결에 쌓인 푸른 기억은, 하얀 속살이 되어 가지런히 놓여있다. 이것이 얼마 전까지 물속에서 돌진하던 물고기라고는 믿을 수 없다. 씹히는 살 안에는 유선형의 날렵함이 없고 생기가 없다. 물고기의 형체는 사라지고, 부유하던 기억만 비릿하게 접시에 담겨 있다.
나는 고향 마을에 끝내 당도하지 못한 사내의 꿈을 묶어 다림질한다. 붉게 멍든 시간의 말은 살살 풀어지며 방울방울 눈물을 찍어낸다. 뿌려진 눈물은 굴곡진 기억을 잔잔하게 펴주고, 생명 끝에 매달린 사랑이나 미움과 이별 같은 인류의 보편타당한 추상어를 단추처럼 달아준다. 그러나 그 추상 속에 구체적 인간의 삶이 들어있다는 말은 믿기지 않는다. 삶은 형용될 수 없는 감정을 품은 낱낱의 전체이기에, 그 관념의 단추로 생을 감싸 이해하기는 부족해 보였다.
저무는 언덕 너머로 작아지던 비행기가 흩뿌린 상념은, 하늘에서 길을 잃은 새들에게 자취를 남긴다. 북극항로를 따라 북진하는 거대한 새의 군집을 본다. 노을을 거둬들이던 어부는, 집어등 가득 그 빛을 넣고 밤을 반짝인다. 나의 상상이 한 곡의 소나타가 되어 밤의 바다를 부드럽게 채우고 있다. 편지 속 물이 새어 나와 두 손을 적시고, 가득 채워진 음표를 바다 한가운데 풀어놓으면, 그 푸른 물을 찍어 나는 시를 쓴다.
*사진은 '별의 아이'님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