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얄궂은 계절이다. 벌써 3월도 끝나가는데 여전히 날씨는 오락가락이다. 사방 천지에는 노랗고 분홍의 빛들이 봄이 왔다고 온몸으로 소리친다. 정말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그런데 서울에는 눈이 왔다고 한다. 꽃이며 새순이며 막막 피어나는데 우리 지역에는 큰 산불이 일주일이 지나도록 꺼지지 않고 있다.
우리 아이의 학교 생활도 그렇다. 우리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같은 반 아이 엄마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엄마들 단톡방에 초대되었다. 같은 반 학부모들의 단체 채팅방인데 교사 입장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엄마인 내게는 소속감과 안도감이 느껴진다. 나도 엄마들과 드디어 교류할 수 있는 창구가 생겼다고나 할까. 휴직하고 가장 만족스러운 일 중의 하나이다. 한 번씩 휴직으로 현타가 오기도 하지만 이럴 땐 정말 휴직을 잘했다 싶다.
그뿐 아니라 급하게 아이와 등교하던 어느 날 아침에는 같은 반 아이와 같이 등교를 했다. 그 같은 라인 엄마가 아이가 걸어서 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다며 아침에 나에게 급히 부탁을 한 것이 아닌가! 그 엄마는 둘째를 데리고 차를 타고 사라졌고 나는 처음 있는 일이라 살짝 당황했지만 친구와 함께 등교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어찌나 뿌듯하고 행복하던지! 어색했지만 최대한 친구에게 다정스레 말도 걸어보고 횡단보도를 건널 땐 둘이 손도 잡게 했다. 그 귀여운 투샷이라니! 키도 고만고만한 여자, 남자아이가 손을 잡고 큰 가방을 멘 채 걸어가는 뒷모습은 정말이지 사랑이었다. 나도 봄처럼 웃으며 사진을 남겼고 그 엄마에게 전해주기도 했다. 정말이지 우리에게도 봄날이 온 것만 같았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큰 일 없이 학교에 잘 다니고 있는 것 같아도 그 속은 여전히 불안하다. 저번 주에도 학교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안 빌리고 했던 일이 있었다. 자기가 빌리고 싶은 책을 선생님이 안된다고 했다고 토라져서 아예 혼자서 책을 안 빌린 것이다. 그런데 그 후폭풍은 그 뒤로도 계속 이어져 저번에 점심까지 안 먹은 일이 있었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이번에도 도서관에서 책을 안 빌렸다고 한다. 여전히 같은 이유였고 또 울었다고 한다. 하지만 선생님께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이 말은 이런 일들이 자주 있더라도 선생님께서 알려주시지 않는다는 말이다.
집에서의 모습도 걱정이 되긴 마찬가지다. 지기 싫어해서 게임을 잘하려고도 하지 않고 하더라도 지면 화를 표출한다. 한참 로봇 방과 후에 빠져 거의 하루 종일 로봇을 조립했다 분해했다 했는데 나중에는 나사 모양까지 꼭 맞추어야 해서 혼자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완벽주의적인 모습 또는 강박과도 같은 모습이다.
그리고 하나에 푹 빠지면 계속 그것만 하고 다른 것으로 전환이 잘 되지 않는다. 요즘은 갑자기 옛날 변신 로봇에 다시 빠져서 하루 종일 그것만 가지고 놀았다. 아무리 주말이라고 밖에 나가자고 해도 절대 싫단다. 집이 좋단다.
이런 부분들은 이전에도 계속 있어왔던 문제이고 기질적인 문제인지 ADHD의 특성인지 가장 걱정이 된다. 유치원에서처럼 교실 밖을 뛰쳐나가지 않는 건 정말이지 천만다행이지만 이런 어떻게 보면 사회성과 관련된 부분들은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느껴진다. 사회에 잘 적응하려면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고 참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말이다. 자기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거나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 아이는 늘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는다.
오늘 아침에도 등굣길에서 아이는 대뜸 이렇게 말한다.
"엄마, 선생님이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했어요."
나는 또 잔소리를 퍼붓는다. 친구들이 하는 건 다 해야 한다고. 선생님이 해야 한다고 하는 건 다 해야 한다고.
아이는 왜 다 해야 하냐며 울먹이고 떼를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삐친 아이는 끝까지 삐친 채로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교실로 들어갔다.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활동 특히 게임 같은 것들이 힘든 것 같았다. 결과를 알 수 없고 통제할 수 없으니 불안한가 보다. 그냥 그래,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지만 아이가 살아야 하는 세상은 그렇게 살 수 없으니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다. 선생님께서는 많은 아이들을 다 끌고 가기 힘드실 테고 하기 싫다고 떼를 쓰는 아이와 싸우기도 싫으실 테니 무조건 부탁을 드릴 수도 없다.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센터나 병원에서도 뾰족한 수가 없다. 친구들과 많이 어울리게 해서 배우게 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운 내 새끼지만 평생을 끼고 살 수 없으니 스스로 날 수 있도록 날갯짓을 가르쳐야 하는데 말이다.
4월에 공개수업이 있다. 내 아이의 모습을, 그 날것의 모습을 마주해야 한다. 제발 제발 잘하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다. 계절도 우리에게도 분명 봄은 왔다. 하지만 아직 눈이 내리기도 한다. 얼른 새순도 제 힘으로 쑥쑥 덩치를 키우고 꽃들도 부지런히 제 몸을 던져 열매를 길러야 한다. 내 아이의 마음도 봄처럼 쑥쑥 자라나기를, 탐스러운 꽃과 열매를 주렁주렁 맺어가기를.
3.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