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의 힘과 기분전환
"환자보다 내가 더 힘들어요"
보호자분들이 하는 말씀이다.
긴 병 앞에 효자가 없다는 말이 있다. 이동이 불편한 환자를 케어하는 일은 정말 힘들다. 간병을 직업으로 하는 분들도 물론 힘들지만, 환자를 케어하는 방법을 숙지했다면 조금 수월하게 일을 해낼 수도 있다. 그러나 환자가 갑작스럽게 병을 맞이했다면 가족도 역시 초면인 병이다. 환자가 힘들게 재활을 하는 만큼 보호자분들도 종종 힘들다고, 골병이 났다고 토로한다. 이런 말을 환자분이 보호자에게 직접 듣지 않아도 환자분은 미안한 마음도 들고 보호자를 배려하려고 하신다.
우리 병원에서는 보호자분들에게 월 1회, 1일 간병인을 신청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전문적으로 교육된 간병사가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환자를 보호자 대신 돌보아 주시는 것이다. 처음에 이 서비스에 대해 들었을 때 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보호자분은 그 시간 동안 주민센터에 들러 일을 처리하거나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기 위해 진료를 보기도 한다. 어떤 분들은 집을 다녀오기도 하고, 가까운 찜질방에 들르거나 친지나 친구를 만나고 오기도 한다. 이런 서비스로 짧은 시간이나마 보호자분이 여유를 느끼고 더 건강해져서 병원으로 다시 복귀해서 힘을 얻지 않나 싶다. 아직 월 1회라서 아쉽지만, 이러한 제도를 만든 우리 병원을 참 칭찬한다!
또 통합 간병인 제도가 있어서 보호자 없이 병실에서 환자분들끼리만 지내는 경우도 있다. 스케줄마다 간호조무사 선생님들이 치료 스케줄에 맞춰 환자를 모셔드리고 병실로 모셔온다. 식사를 할 때 같이 계시기도 한다. 삼킴에 어려움이 있으신 분들이 잘못 삼켜서 도움이 필요하거나 어떠한 사고라도 생기기 전에 예방적 활동을 하는 것이다. 한 환자분은 왕 대접을 받고 있다며 하하 웃으셨다. 식사를 하고 있을 때도 쳐다보고 있어서 몇 번 씹는지 기록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환자는 조금 답답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호자도 일상적인 생활을 해야 할 때, 일을 해야 할 때, 적절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니 좋은 것 같다. 물론 재활병원에서는 어느 정도 잘 걷고 인지 기능도 좋아야 통합 간병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고 한다.
병원 내에 또 하나 좋은 곳은 도서실이다. 직원과 보호자들이 책을 읽을 수 있고 무인 대여 서비스가 가능하다. 아늑한 인테리어로 깔끔하게 꾸며 놓았고 책을 읽다가 빌려올 수 있는 곳이다. 환자분은 가끔 그곳에 가서 책을 소리 내서 읽다가 온다고도 하였다. 공간 제공과 관리는 병원에서 담당하지만, 책을 기증한 곳은 외부 기업이다. 좋은 책을 다양하게 구비해주신 그 기업에 감사할 따름이다. 나도 종종 그곳에 들러 책을 빌려온다. 바쁜 와중에도 보호자분들은 그곳에 가서 책을 빌리고 환자가 치료받는 동안 책을 읽으며 기다리신다. 환자분도 물론 책을 고르고 빌려오신다.
나무들로 우거진 산책로에서 환자를 만나는 일도 많다. 점심시간에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환자와 보호자를 만난다. 서울 외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이러한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지 않을까. 한 해 한 해 조금씩 자라나는 나무들 덕분에, 매 해 예쁜 꽃들을 심어주는 덕분에, 초록이 무성한 공간에 있으면 한적한 시골에 와 있는 느낌이다. 마음이 조금 더 여유로워지고 가벼워진다.
병원에서는 각자의 루틴대로 움직인다. 환자들도 보호자들도 각자의 루틴이 있다. 환자들은 치료실 내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보호자는 대기하면서 자신의 루틴을 만들어간다. 대략 30분 치료를 받고 다시 다른 치료실로 움직여서 또 30분의 치료를 받고 그렇게 하루를 채워간다. 보호자분들은 잠깐씩의 30분 동안 담소를 나누기도 책도 읽기도 뜨개를 뜨기도 강의를 듣기도 한다. 루틴대로 움직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 루틴이 있어서 활력이 돌고 행복감이 들 때도 있다. 할 일 없이 무료하게 집에서 늘어질 때 당장은 좋을 수 있지만 장기간 늘어지면 참으로 지루하다. 나는 쉼이 길어지면 하루에 할 일을 메모지에 써놓고 하나씩 해 나간다. 그래야 마음이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 루틴대로 움직이다가도 체력이나 마음이 소진되면 참 힘들다. 병원에서든 일상에서든 체력도 마음도 소진되기 쉽다. 그럴 때는 일단 나에게 쉼을 주어야 한다.
그 이후에는?
걷기도 좋고, 자신의 루틴대로 다시 움직여도 좋고, 새로운 일을 도전하는 것도 좋다.
힘이 빠질 때 약간의 휴식을 취하며 쉬어가는 일도 좋다. 나의 몸과 마음을 충전하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향이 좋은 차를 마신다던가, 멍하니 하늘을 본다던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본다던가, 분명 내가 좋아하고 마음이 힐링이 되는 포인트가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끄적여보는 것도, 나는 좋았다.
정말 힘들 때는 전문적인 상담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분명 내가 좋아하는 일들, 활기가 돌게 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 그것을 내가 잘 알고 있다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다. 음식, 운동, 수다, 만들기, 여행. 내가 힘을 낼 수 있는 자원은 어떤 것이었을까? 생각보다 많은데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나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를 잘 보듬어 주어야 한다.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선뜻 생각이 나지 않거나,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 때는 끄적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