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도서관 9와 4분의 3 승강장

지침서를 만나다

by 보보

4학년의 마지막 학기, 나는 또 교내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신청했다. 이전 학기에 경험했던 도서관 일이 나에게 정말 잘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만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했던가? 안타깝게도 치열한 아르바이트 경쟁에서 나는 떨어져 버렸다. 그런 이유로 낙담하고 있을 때, 도서관 2층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알아본 누군가가 다가왔다. 지난 학기 내가 일하던 층 아래층에서 일하시던 사서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이 먼저 내게 반갑게 인사했다.


“2층에서 민경(가명)쌤이랑 일했었죠?”


정말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셔서 나까지 기분 좋아질 정도였다. 그런데 더 좋은 일이 생겼다.


“혹시 도서관 아르바이트할 생각 없어요?”


이게 웬걸! 마침 선생님 네에서 같이 일하기로 했던 친구가 수강정정 문제로 일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건 정말 신이 주신 기회라 생각하며 그 제안을 냉큼 받아들이고서는 곧바로 내 강의 시간표를 보여드렸다. 마침 시간표를 도서관 아르바이트하기 좋게 널널이 짜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마지막 학기의 많은 시간을 도서관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내가 이렇게 좋아라 하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먼저 다른 일에 비해서는 피로함이 덜해 학업에 크게 무리를 주지 않는다는 것과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급하게 처리할 필요 없고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것도 아니라 몸과 정신이 편한 상태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내게 있어 아주 큰 장점이었다. 뇌전증을 진단받은 지 아직 반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에 좀 더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편하게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바랐다. 초반에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리고 감사하게도 시험기간에 일이 별로 없을 때는 공부할 수 있게 배려해주셨다. 카트에 책을 싣고 정리할 때는 천천히 해도 되는 일인지라 구석에서 몰래 책을 읽기도 했다. 물론 농땡이를 피워도 된다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할 일을 빨리 끝내고 잠시 쉬는 개념으로 하는 거니 함께 일하는 분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주의하자.


도서관의 백색 소음 속에서 책을 정리하다 보면 나 혼자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우연히 내게 도움이 되는 재미있는 책들을 만난다. 소설 작가를 꿈꿨던 난 자연스레 글쓰기와 관련된 파트 근처에서 자주 어슬렁어슬렁 거렸는데 이때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 수업> 책을 만났다.


<작가 수업>은 작가를 꿈꾸는 내게 큰 위안과 용기를 주었으며 지침서와 같은 책이 되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우연히 발견하여 읽었지만 알고 보니 1934년부터 작가 혹은 작가 지망생들의 필독서이자 전 세계 베스트셀러로 글쓰기 지침서의 어머니로 불렸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도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이 책을 발견한 것이다.


<작가 수업>은 창작 기교에 대한 수업이 아닌 작가로서의 멘탈 케어와 방향을 제시해준다. 쓰고 있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나면 어떤 형태로든 반응이 나오게 되는데 여기에서 전달해 보여준다는 목적이 달성되어 더 이상 힘겹게 계속 쓰고 싶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정말 예리한 분석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런 기분이 들까 봐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걸 어려워했는데 의외로 이런 경우가 많고 이상하지 않은 현상이라는 점에 심심한 위로를 받았다. 다른 것에는 안 그러는데 유독 소설을 쓸 때 맘이 약해지는 나 같은 경우에는 초기에 다른 사람의 반응을 보는 걸 조심하는 편이다.


그리고 수줍음이 많아서 글을 쓰지 못한다는 비유도 찰떡이라 생각했다. 소설을 쓰다 보면 인물들이 격정적인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다. 이때 어떻게 써 내려가야 할지 막막하기도 한데 이것을 작가가 수줍음이 많아서 그렇다고 표현한다. 글을 못 쓰는 게 수줍음 때문에 그렇다고? 어이없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도러시아 브랜디는 감정에 호소하며 거침없이 써 내려가야 할 부분에서 막히는 건 기교가 아닌 감정적 표현에 서툰 작가의 성격 때문이라고 집어냈다. 자기 자신조차 인지하기 힘든 글쓰기의 고충을 섬세하게 풀어내 주는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면 <작가 수업>을 읽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아르바이트와 수업을 병행하며 나쁘지 않은 마지막 학기를 보냈다. 나의 대학 로망 중 하나였던 대학도서관 아르바이트를 1년 동안 할 수 있어 즐겁고 행복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내 안의 세계가 확장되는 의미 있는 나날이었다.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다는 건 늘 즐겁다. 그건 마치 책을 읽는 것과 같이 새로운 걸 깨닫기도 하고 나를 성장시켜 주기도 한다.


모든 병원이 그렇듯 약을 처방받기 위해서는 먼저 진료를 받아야 한다. 나의 경우 초반에는 약효와 상태 확인 차 약 한 달에 한 번 꼴로 진료를 자주 받았어야 했다. 이 시기에는 두 달에 한 번 꼴로 병원에 갔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며 나중에는 두 달에 한 번에서 세 달에 한 번으로 진료 주기가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2022년 현재는 8개월 간격이 되었다. 진료 주기가 멀어졌다는 건 그만큼 나의 상태가 안정적이라는 것을 의미해 나는 물론이고 부모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실 한, 두 달에 한 번씩 진료를 받는 게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일단 내가 사는 지역에 있는 병원이 아닌지라 차를 타고 병원까지 이동해야 하는데 이 시간만 약 1시간 반 정도다. 그리고 도착해서 진료를 바로 받는가? 아니다. 기다리는 시간도 있고 진료 보고 나면 가까운 약국에서 약도 받아야 한다. 그렇게 따지면 병원 볼일을 보는데 넉넉잡아 약 4시간이 걸리는 셈이다. 이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고 돌아왔는데 4주 뒤에 또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벌써?’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 그래도 이제는 조금 느긋하게 말할 수 있다. 무려 8개월이니 잊고 있다가 병원 가는 달이 다가오면 ‘이제 갈 때 됐지.’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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