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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rephath Oct 21. 2024

[에세이]나는 강박증 환자였다.

예전에 수험공부 할 때 이색 저색 사인펜이랑 볼펜이랑 형광펜과 자등을 사 본 경험들은 다들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중요한 부분 밑줄도 긋고 색도 칠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나는 좀 특이했다. 밑줄 긋는 일에 상당히 강박적 이었는데, 그 양상에 대해 나누어 봄으로써 나와 비슷한 증상을 겪는 분들께 용기를 드리고 싶다.


자를 글자의 하단에 일치 내지는 완전한 평행이 되기까지 맞추어 놓고 아주 중요한 것은 빨간색으로 좀 덜 중요한 것은 파란 색으로 줄을 긋는다. 자를 누르고 있는 손에는 힘을 줘야 한다. 줄을 긋다가 삐끗해 버리면, 줄이 반듯하게 그어지지 않는 대 참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줄을 일단 한번 그으면 따로 준비해 둔 종이에 자를 문질러 닦아야 한다. 빨간색 사인펜이 자에 묻어있는 상태로 파란색 사인펜을 그으면 회괴망측한 색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에 묻은 잉크가 손에 묻었다가 그것이 책을 더럽히는 일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색 펜을 사용할 때는 잘 닦아가며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형광펜, 형광펜은 활자 라인을 반 정도 덮어야 한다. 그리고 일자 라인을 그려야 함은 당연하다.

혹시, 사인펜으로 줄을 치다 자를 누르고 있는 손에 힘이 빠졌다거나 해서 줄이 이상한 곡선을 그리게 되면 그 자리를 화이트로 정교하게 색칠한 후 다시 줄을 긋는다. 혹시 그은 밑줄이 활자라인과 완전 평행이 안되어 비뚤어지게 그어 졌을 때도 화이트로 그은 줄을 정교하에 다 지운 후 다시 긋는다. 그렇게 해서도 그은 줄이 수정이 안될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책을 다시 구매하는 수밖에 없다. 어떤 과목은 밑줄 긋는 것 때문에 같은 책을 세번까지 사본 적이 있다.

맞다. 강박증이다. 나도 내가 정상이 아닌 것은 안다. 그렇다고 이게 고쳐지지가 않는다. 한번 고쳐 볼려고 일부러 자도 안 대고 멋대로 줄을 벅벅 그어본 적이 있었다. 그 책은 찢어버리고, 새 책을 사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이런 강박증이 책에 줄 긋는 일에만 있는가? 아니다. 세상 모든 일에 대해서 다양한 형태로 강박의 증상이 나타난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려고 자리를 잡을때, 책상의 흔들림이 있는지 먼저확인한다.(세상에! 그리 오래 된 학교의 도서관 책상이 안 흔들리는 게 몇개나 된다고.) 그리고 6인용 책상의 경우 완벽하게 6등분 된 넓이 만큼 각자 차지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조금이라도 빈 자리가 1/6에서 침범당한 것 처럼 보인다면 그 자리에는 앉지 않는다. 그 모든 조건이 충족되는 자리를 발견한 경우, 그 다음은 의자다. 일단 앉아서 흔들리는지 알아본다.(이 또한 오래된 학교 도서관 의자가 흔들리는 것이 당연하지.) 흔즐리면 앉지는 않고, 심혈을 기울여 찾은 자리 이므로 자리는 옮기지도 않고, 의자를 다른 곳의 의자와 바꾼다. 바꿀때는 당연히 흔들리는 지 여부를 확인하고, 네모 반듯한 대칭인지도 확인한다. 그렇게 겨우겨우 도서관 자리를 잡아서 공부를 했다. 자리 잡는데 거의 한 시간 이상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껌씹는 소리,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등 인간이 만들어내는 소음은 차단하기 위해 나는 항상 카세트 테이프에 헤비메탈 밴드의 곡을 선곡해서 듣곤 했다. 가장 시끄러운 소리로 그 외의 소음을 다 차단한 것이다.

한번은 비싼 원서 책을 샀는데, 거기다 이름을 써야 했다. 워낙 비싼 책이라 분실시 반듯이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름 쓴 것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미묘한 그 무언가가 내 강박을 자극했다. 처음엔 책장에 꽂아만 두고 안보다가 나중에는 그 책이 책장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쓰여서, 버리기로 했다. 버려도 애매한 쓰레기통 같은데 버리면, 그 쓰레기통 위치를 앎으로, 그게 그 쓰레기통에 있다는 자체가 신경이 쓰여서 도로 가지러 갈 것 같았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서 실수로 책을 놓고 내리는 척하며 어디로 갈지 모르는 전철에다 책을 버려 버렸다. 그리고, 책은 새로 샀다.

어떤 때는 시험을 치는 강의실 내 자리가 너무 심하게 흔들려서 시험을 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줄의 제일 앞자리 그 앞에 책상을 하나 가져다 두고 시험을 쳤다. 나중에는 그게 문제가 되어 부정행위자로 몰릴 뻔도 했다.

도대체 이런 류의 강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치료는 의외로 간단하다. 항우울제를 쓴다. 그것도 내재된 우울에서 오는 것이라던가? 요즘은 과학의 시대라 그런지 참 답들을 쉽게 제시한다. 이런류의 강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답은 유전자다. 쉽다. 참 쉽다. 모든 것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단다. 설사 유전자에 그런 소인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증상으로 발현되기 까지는 분명히 Psychodynamic한 요소가 있을 것이다. 어떤 이벤트이건, 어떤 힘든 시간이건…

내 경우는 사춘기가 오고 성적이 떨어지면서 발증한 것 같다. 그 때는 내가 보고 듣고 있는 모든 것이 내가 진짜로 보고 들은 것인지 조차 의심이 되었다. 그 정도로 극심한 자기 불신과 강박에 시달리는 동안 내 멘찰은 참 많이 지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내 성격이 이렇게 냉소적이고 비관적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다만 이 글을 통해서 강박의 한 양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런 사람도 잘 살아가고 있으니 정신적으로 힘든 분들 너무 좌절하지 마시고, 치료 잘 받으시면서 꿋꿋하게 살아가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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