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원 지하에 마련된 체육관엔 도복을 입은 헝가리 아이들과 풍채 좋은 헝가리 관장님, 머리를 질끈 동여맨 여자 사범님이 몸을 풀고 있었다. 한국에서 보내온 중고 도복인지 아이들이 입은 도복에는 ‘ㅇㅇ태권도’라는 태권도 도장 이름이 등에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시범단이라고 쓰인 도복을 입고 있는 아이도 있는데 실력은 초보라 귀여워 눈길이 갔다. 벽 한 편에는 태극기가 걸려있는데, 가로가 아닌 세로로 걸려있어 자꾸 신경이 쓰였다.
‘가서 똑바로 걸어줄까? 리셉션에 얘기해볼까?’ 고민하다 일단은 아이들 수업을 좀 지켜보기로.
차렷! 경례!
헝가리 관장님의 조금 어설픈 한국말이 왠지 정감 있다. 금강 지르기, 가위 막기, 앞차기 같은 동작 이름도 모두 한국말이라 한국말로 동작을 배우는 한국 아이들은 관장님이 한국말을 할 줄 안다며 좋아하고, 헝가리 아이들은 어려운 외국어 발음이 힘이 드는지 버벅대며 따라 한다. 자세를 설명하는 건 헝가리 말. 우리가 한국에서 펜싱 같은 외국 운동을 배울 때 동작이나 용어는 불어를 그대로 쓰고, 설명은 한국말로 해주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겠지. 동작 이름은 알아듣지만 설명은 못 알아듣는 한국 아이들과 동작 이름은 못 알아듣지만 설명은 알아듣는 헝가리 아이들 중 누가 더 잘 이해하고 배우게 될까? 괜히 궁금해진다.
준비 자세를 배우고 서기, 지르기, 찌르기, 차기를 배운 후 한 줄로 쭉 서서 격파를 했다. 말이 격파지 아이의 힘으로 격파하는 게 아니라 판을 잡고 계신 관장님의 힘으로 판이 쪼개어지는, 하지만 칭찬은 아이가 받는 자신감 기르기 수업이다.
“오늘 태권도 배우면서 어떤 게 제일 재미있었어?”
“격파하는 거. 엄마 나 격파하는 거 봤어요?”
“그럼. 힘이 엄청나던데?”
“가운데를 잘 맞춰야 딱 부러져요.”
“그랬구나. 어쩐지 딱 잘 부러지더라.”
자신감이 한없이 올라간 아이의 장단에 맞춰주며 또 물었다.
“태권도 배우는 거 좋아?”
“네. 관장님이 한국말로 하니까 좋아요. 태권도는 한국말이라 좋아요.”
태권도가 좋은 건지, 한국말이 좋은 건지.
이방인으로 해외에서 살며 느끼는 낯섦과 어려움을 잊게 만드는, 일종의 작은 위로라고 해야 하나? 태권도를 배우며 듣게 된 헝가리 관장님의 한국말이 아이에겐 작은 위로로 다가갔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