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흔들리지만 나는 나를 끊임없이 발견한다
3월부터 시작한 6개월 간의 주 3회 수영 강습이 끝났다.
스코어: 참석 - 53회 불참 - 28회
지각 - 셀 수 없음, 어릴 때부터 10분~20분 늦던 습관을 빌어먹게도 고치지 못함
진도: 자유형, 배영, 평형, 접영이라 부를 수 없는 접영 매우 기초
레인: 6개월 간 초보 레인에만 있었음. 배영까지 '잘' 해서 윗 레인으로 보내야 본인도 욕먹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무언의 압박에 더 이상 윗레인으로 언제 올라갈 수 있냐는 엄살을 부릴 수 없게 되었다. 운동이라면 배움이 특히 느린 나니까.. 마지막 두달은 중급반으로 올라가야 했으나 여름 시즌이 되어 등록회원이 많아지며 기존 회원들의 레인 체계가 유지되었다. 결국 난 수영을 배우는 내내 초급 레인에만 머물러 있게 된 역사적인 학생이 되었다.
얻은 것: 1. 호텔 수영(=평영) 가능. 이제 호캉스만 가면 된다 이거야 2. 놀랍게도 일이 바빠 수업을 많이 빠진 결과, 나와 진도가 똑같은 언니가 있어 6개월 간 함께 했다. 이렇게 친해진 2명의 회원과 함께하는 주류타임. 10시부터 자리를 시작하다 보니 조금 수다를 떨다보면 새벽 2시가 되어 있었다. 그럼 약간 알딸딸해진 나는 따릉이를 타고 집에 돌아가곤 했는데, 조금 과도한 용기가 생긴 어느 날 항상 지나치는 공원에서 농구연습을 하던 한 남자분에게 농구를 가르쳐달라는 괴상한 부탁을 했다. 대화를 나누고보니 놀랍게도 그는 나와 같은대학 같은학부 사람이었고, 중국어를 가장 편하게 하는 그에게 '너 잘한다'의 중국어를 배우고 카톡을 교환한 끝에 1시간 배움을 마쳤다. 물론 이후 그와 연락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깨달은 것:
1. 수영장의 물 온도는 생각보다 차가우며 이는 내 몸에 좋지 않았다.
2. 수영만 한다고 수영을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선생님이 내게 코어가 없어 자유형할 때 몸이 휙휙 돌아가고 팔 힘이 없어 물을 잘 못 민다고 했는데, 수영을 계속한다고 그 힘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차라리 그 부분의 근력을 키워줄 수 있는 다른 운동(ex.헬스)을 한 후 다시 돌아오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리하여 9월부로 나는 강좌 이름만 봐도 코어 근력을 기를 수 있을 것만 같은 <매트필라&바디코어>를 신청하게 되었다. 늦게 일어나는 백수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아침 7시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
3. 늦은 운동은 수면에 좋지 않다. 저녁 10시에 수영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눈이 말똥말똥해져 새벽 5시에 잠이 겨우 드는 날이 생각보다 꽤 있었다. 다음 날까지 아주 악영향이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보면 난 수영을 6개월간 다니며 남들보다 진도는 느리지만 접영을 제외한 모든 영법을 배웠고, 자유형과 배영은 아직도 숨이 헉헉대지만 요상하게도 평형은 반에서 제일 잘했다. 잘하고 못함을 떠나 6개월 간의 좌충우돌한 꾸준함이 있었다. 그리고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바디코어를 배워 키읔의 한 획조차 찾아볼 수 없는 코어가 조금 생기게 되면, 수영을 더 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느리지만 나아가는 사람이다. 느리지만 배움이 있는 사람이다.
옛날 불어 과외를 할 때의 기억이다. 어느 수업시간, 선생님은 갑자기 하루만에 실력이 어디서 늘어온 것이냐며 놀라하셨다. 그리고는 수업이 끝나고 엄마에게 사실은 내가 4명의 인원 중 가장 걱정되었다고 하셨다. 이유는 (비록 매우 돌려서 말씀하셨지만) 내가 가장 불성실하고 배움이 더뎠는데, 갑자기 전반적인 실력이 확 늘었다며 언어에 대한 감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갑자기 읽기도 잘 되고, 전반적인 이해도가 높아졌었다. 비동의하는 바는, 나는 내 스스로에 대해 걱정한 적이 없었다는 거였다. 나를 걱정한 건 그 선생님 뿐만이 아니었지만, 나는 그들이 나에 대해 걱정하는 것만큼 내 스스로에 대해 걱정한 적이 없었다. 그건 무책임한 게으름이라기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기반한 것이었다. 나는 내가 처음엔 조용해보이지만 시간만 확보되면 내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엔 느리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시간이 조금 지나 어느 순간이 되면 갑자기 폭발적인 무언가를 보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 변한 것은 내가 나에 대해 내리는 평가와 가지고 있는 확신이 미지근해졌다는 것 뿐인데, 카페를 가던 어느 날 신호등을 기다리며 그것이 나비효과가 되어 태풍을 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태풍의 씨앗이 내겐 보였다. 이 미지근함이 결국엔 나를 죽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미 서서히 죽어왔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런 나를 수영은 옛날의 나로 조금 데려가 주었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나 다시 돌아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