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립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가는 빗방울이 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시며 땅으로 스며듭니다. 하늘은 흐리지만 나지막이 속삭이듯 내리는 이슬비와 함께 세상이 깨어나는 듯합니다.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고 있으니 커피를 한잔하고 싶어 집니다. 마른 커피 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으니 뽀얀 김과 함께 커피 향이 올라옵니다. 거름종이 아래로 진한 갈색의 커피가 흘러내립니다. 쌉쌀하면서도 단맛이 느껴지는 커피가 오늘따라 삶의 맛을 닮은 듯한 느낌입니다.
세상은 조용하고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따끈한 커피는 맛있습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0번 2악장 로맨스를 들어봅니다. 맑고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가 고요한 어느 봄날 아침을 잔잔하게 흔들어 놓는군요. 얼마 전에 부풀어 오르던 매화 꽃봉오리가 봄비에 피어나고 있을 듯한 생각이 드는군요. 혹시 봄비를 맞고 있는 매화를 볼 수 있을 듯해서 산책에 나서 보기로 합니다.
부드러운 비가 내리는 봄날 아침은 생명의 호흡이 가득합니다. 촉촉이 젖은 대지는 조용하게 숨을 쉬며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듯합니다. 어디에선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봄은 이렇게 다정하게 속삭이듯 다가오는군요.
아, 매화가 피었습니다. 활짝 핀 하얀 꽃잎 안에 노란 꽃술이 가득합니다. 작은 빗방울이 달린 꽃잎이 더욱 싱그런 느낌입니다. 빗방울이 얼굴을 간지럽히는 듯한데 그녀는 즐거운 듯 활짝 웃는군요. 둥글게 부푼 맑은 꽃봉오리에도 물방울이 담겨있군요. 활짝 피어나는 매화도 이제 피어나려는 꽃봉오리도 다들 이리 봐도 예쁘고 저리 봐도 우아합니다. 그렇게 봄비를 맞으며 피어나는 그녀들에게서는 비에 젖은 매화 향기가 날아옵니다.
산수유의 노란 꽃도 비를 맞으며 활짝 피어납니다. 아주 작은 꽃잎에도 빗방울이 담겨있네요. 빗방울을 담고 있는 노란 꽃들이 나지막이 노래를 부르는 듯한데 떨어지는 빗방울에 노랫소리는 점점 커져갑니다. 비에 젖어 더욱 생기가 넘치는 꽃들의 힘찬 환호성을 느껴봅니다.
물이 오르며 초록으로 변하고 있는 단풍나무의 가는 가지에 빗방울이 줄을 지어 달려있습니다. 빗물이 모였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모습에서 봄비의 리듬감을 느껴봅니다. 길게 늘어진 가지 끝의 붉은빛이 감도는 새순에도 맑은 물방울이 달려있습니다. 새순과 빗물이 마치 하나의 꽃처럼 반짝이네요.
진한 갈색의 껍질이 빗물에 반짝이는 커다란 매화나무에도 매화가 피어납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담담하게 비를 맞으며 고즈넉한 자태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길게 늘어진 가지에 피어있는 매화는 우아하고도 산뜻한 미소를 보여줍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이제 봄이에요'라고 속삭여 주네요.
드디어 봄이네요. 이제 봄비를 맞으려 활짝 피어나는 매화를 보니 봄이 온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 꽃들이 가까이 있음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 것일까요? 비록 건조한 도시에서 피어나지만 매화는 그래서 더욱 반갑고 고마운 이웃입니다. 생각해보니 그녀들이 있어 봄을 알게 되고 또 그녀들의 미소가 가득 해지는 봄날이 즐거워집니다.
봄은 어느 날 문득 이렇게 터지며 다가오는 듯합니다. 꽃들은 이 순간을 위하여 그 추운 겨울 동안에도 조금씩 조금씩 에너지를 축적해왔겠지요. 지난겨울에 눈을 맞고 있던 작은 매화꽃봉오리와 조금씩 벌어지려던 산수유의 꽃봉오리를 떠올려봅니다.
빗물의 리듬과 함께 하얀 매화와 노란 산수유의 상쾌한 호흡을 느껴봅니다. 이제 연두색으로 돋아나는 작은 잎들도 같이 호흡하며 새로운 계절의 노랫소리는 점점 커져가겠지요. 두꺼운 겨울 외투를 벗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봄을 맞이해야겠습니다. 꽃이 피는 봄은 언제나처럼 기쁘게 다가오고 있으니까요. 두 팔을 벌리며 가슴을 활짝 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