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사계절은 그 계절만의 색깔이 있습니다. 봄은 매화의 하얀 꽃으로 피어나며 말간 새순이 돋아나는 연두색으로 시작되는 듯합니다. 그리고 여러 꽃들의 빨간색, 노란색, 분홍색, 보라색 등 다양한 색깔이 이어지고요. 여름은 커다랗게 자란 잎들의 짙은 초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역시 여러 색깔의 꽃들이 피어나기도 합니다.
가을은 노랗고 붉은 잎들과 열매들이 울긋불긋 어우러지는 다양한 색깔의 계절입니다. 그런데 겨울의 색깔은 마른 갈색의 느낌이네요. 눈이 내린다면 하얀색이라 할 수 있지만요. 계속해서 순환되는 계절이지만 왠지 꽃들이 피어나고 새순이 돋는 봄이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동네의 어느 정자 앞에 서있는데 어디선가 비둘기들이 바쁜 걸음으로 다가옵니다. 마른나무 아래 마른땅을 헤치며 무언가 먹을거리를 찾는 듯합니다. 생각해 보니 새들에게는 먹거리가 많지 않은 계절이네요. 아직 열매가 남아있는 아그배나무 밑에도 많이 모여있습니다. 아마도 몸집이 커서 나무에 달린 열매에는 다가가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마른 잎들을 헤치며 열심히 무언가를 찾는군요. 어느 녀석은 땅에 떨어진 열매를 찾은 듯하네요. 아마도 그들 덕분에 아그배의 씨앗은 멀리 가게 될 듯합니다.
가까이 다가가도 위협을 느끼지 않는지 정신없이 땅을 쪼으고 있습니다. 아마도 비둘기들은 사람이 익숙하기도 하고 먹이가 더 중요한 듯도 합니다. 다들 날카로운 눈으로 두리번거립니다. 부지런히 움직이며 열심히 찾아야 먹이를 얻을 수 있겠지요.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삶인 듯합니다. 스스로 에너지를 만드는 식물과 달리 동물들은 외부로부터 영양분을 섭취해야 합니다. 동물들은 그것이 식물이건 또 다른 동물이건 무언가 먹어야 하는 것이네요. 뭔가 조금 슬픈 운명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면 슬프다거나 기쁘다거나를 판단할 것은 아닌 듯도 합니다만. 그리고 이왕 먹으려면 맛있는 것을 먹어야 하겠지요?
조금 더 가까이 가자 비둘기들이 푸드덕 거리며 날아갑니다. 또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떠나는 것이겠죠. 새해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그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라보며, 나나 무스쿠리의 목소리로 '비둘기(La Paloma)'를 들어봅니다. 모처럼 듣는 목소리가 여전히 멋집니다. 물론 노래도 좋고요.
비둘기들이 날아간 곳에 서있는 아그배나무를 바라봅니다. 이제는 많이 쭈글쭈글해졌지만 아그배들이 꿋꿋하게 달려있네요. 비록 황량한 겨울 풍경이지만 붉게 남아있는 열매들을 보니 뭔가 따뜻한 느낌도 듭니다. 이제 보니 겨울의 색은 갈색만이 아니네요.
마른 가지에 마른 열매들이 이렇게 늦은 계절까지 남아 한 겨울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뭔가 놓치기 싫은 붉은 색깔도 보여주면서요. 가는 가지에서 길게 뻗어 나온 모습에서는 어떤 활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주름진 저 열매 안에는 잘 익은 생명의 씨앗이 들어있기 때문일까요?
굵은 줄기에서 뻗어 나온 작은 가지에도 주름진 열매가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반쪽만 남아있는 열매도 있습니다. 아마도 직박구리가 잠시 다녀갔나 보네요. 작은 아그배들이 한 겨울까지 남아 고즈넉한 겨울 풍경이 되는군요. 비록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하늘거리고 있지만 왠지 그녀들의 마음을 알 듯도 합니다.
이제 봄이 되면 새로운 잎이 돋아나고 새로운 꽃이 피어나겠지요. 그리고 꽃은 열매가 되어 익어갈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보게 될 것은 작년의 그 꽃과 열매가 아니고 새롭게 시작하는 생명일 듯하네요. 계절의 순환에 따라 새롭게 태어나고 또 어디론가 퍼져나가는 것. 그것이 자연의 법칙인 듯합니다.
뭔가 황량해 보이는 겨울날에 붉은 아그배나무가 남아있어 왠지 따뜻한 풍경입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바흐의 미뉴엣을 쳄발로 연주로 들어봅니다. 겨울은 쓸쓸하지 않고 왠지 어떤 희망을 품고 새로운 계절을 기다리는 시간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