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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Feb 01. 2023

개인주의의 유형 두 가지 <1>

개방적 개인주의

<주의> 열독에 약간의 인내심을 요하는 분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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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나는 방역 지속 요구의 논거가 집단주의라는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는 개인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한국 사회에서 대체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잘 구분되지 않고 있음을 지적 후 한국인들이 각종 '위기 상황'에 어떤 식으로 대처해 왔는지를 그 특유의 집단주의 성향을 들어 열거했다.


물론 개인주의 위 글의 주요 제재이긴 나, 이는 순전히 개인주의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한국인이 보인 집단주의적 행태'를 꼬집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 측면이 강했다. 즉, 개인주의가 무엇인지를 제시했던 것은 '현재 한국인의 태도는 개인주의에 정면으로 반한다'라는 주제 의식을 던지기 위함이었고, 아무래도 글의 초점이 '방역 대하는 태도'에의 비판에 맞춰져 있다 보니 개인주의 자체를 다루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벌써 반 년이 되어가는 지금, 나는 이 글을 통해 '개인주의'를 다뤄보고자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다만 이 글에도 초점은 있는데, 바로 '개인주의가 표출되는 방식'이다. 자세히 말하면 '개인주의가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구성원의 사고나 행동을 통해 다르게 드러난다'는 전제하에 글을 전개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구분한 개인주의가 바로 소제목에 쓰인 '폐쇄적 개인주의'와 '개방적 개인주의'다.


나는 위에 첨부한 글의 서두에서 '개인주의란 개인을 행동과 사고의 기본 단위로 하는 생활양식 또는 사상을 의미한다. 때문에 개인주의는 개별자의 주체성을 그 무엇보다 강조하며, 이에 따라 상호 불간섭과 불개입을 원칙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개인주의에 대한 매우 원론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서술로, 개인주의의 주된 '키워드'는 상호 무관심이다. 상호 무관심은 다시 말해 '개별성'과 '독자성'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행위자 '갑'의 행동이 행위자 '을'의 행동이나 사고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이 개인주의의 기본 속성이다. 그러므로 '갑'과 '을'은 서로에게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으며, (인간이 감각으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외부 사건이나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모든 상황을 제외하면) 타인에게 어떠한 행동이나 사고를 요구하거나 종용하는 일은 웬만해서는 없거니와 심하면 금기가 되기도 한다. 이는 개인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침해하는 행위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개인주의에 있어 '나'의 판단, '나'의 기준은 중요하며, '나'라는 행위자가 배제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개인주의는 일반적으로 유럽 및 미국적인 요소로 간주되는 반면, 집단주의는 일반적으로 동양(아시아)적 가치로 여겨진다. 이는 곧 '인간/사회관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사회와 문화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는 인식으로 이어지는데, 혹자는 쌀과 밀이란 상이한 주식의 육성 방법의 차이에서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가 기인했다고 보기도 하고, 다른 이는 일찍이 해상을 통한 상업이 발달한 서양의 특성상 개인주의가 문화적 속성으로 자리잡았다고 보기도 한다. 다 일리 있는 설명이지만 무엇이 정답이라 확정하긴 어렵다. 다만 보편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은, 동양과 서양의 사람들이 각자 인간, 사회, 우주를 대하는 방식이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다.

'서구화'가 진행되면서 (특정 국가를 제외하면) 개인주의는 수많은 이들의 삶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이러한 경향은 대개 전제정치의 종결과 민주정치의 시행과 함께 시작됐다. 그러므로 '개인주의의 보급'은 분명 정치적 자유화를 선결 과제로 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데, 비록 군주제 또는 일당 독재 국가라 할지라도 북한이나 투르크메니스탄(해당 국가의 경우 형식상 민주정이나 실제로는 권위주의 독재)과 같은 극단적 사례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경제적 부유함이 일반화된 상황하에서 개인을 본위로 하는 생활 양식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일반적이다.


그러나 지역과 문화의 차이는 같은 개인주의가 상이한 형태로 적용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무엇보다도 한 사회의 자유도에 따라 결정되는데, 자유도의 경우 한 사회의 자유도가 높으면 당연히 권위체나 문화의 압력이 덜하므로 개인주의가 강하게 적용된다는 의미다.

한데 개인주의의 실현 양상은 비단 자유도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이 인식하는 상호성'의 영향을 받는다. 사회 구성원이 인식하는 상호성이란, 한 사회의 서로 다른 구성원이 느끼기에 '나'의 행동이 저 사람에게, 그리고 저 사람의 행동이 '나'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말하는 것으로, 상호성이 높은 사회의 경우 서로 다른 구성원이 주고받는 영향력이 강하고, 상호성이 낮은 사회의 경우 반대로 서로 간의 영향력이 약하다.

자유도와 상호성은 분명 개인주의의 핵심 축이고, 그중에서도 자유도는 개인주의의 필수 요건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 개인주의의 질적 차이를 좌우하는 것은 후자(상호성)다. 왜냐, 일반적으로 자유주의를 정치체로 채택한 사회에서는 개인주의가 일상 전반에 적용되지만, 상호성은 개인주의가 적용되는 수준을 결정적으로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상호성은 이 글에서 논하고자 하는 '개방적 개인주의'와 '폐쇄적 개인주의'를 나누는 기준이 된다.


<개방적 개인주의>

개방적 개인주의가 주류인(보편 가치인) 사회의 구성원은 기본적으로 자기 표현에 거리낌이 없다. 이런 사회에서 기존의(또는 전통적인) 문화적 요소는 개인주의의 후순위에 있다(문화란 기본적으로 보수적 성격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회의 전통 문화적 맥락상 개인이 다량의 장신구를 착용한다거나 문신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가정할 때, 개방적 개인주의가 생활 양식으로 자리잡은 사회에선 이러한 전통 문화는 그저 과거의 유산 취급을 당해 무시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개인을 불필요하게 규제하며 자기 표현을 저해하는 수단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개방적 개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주도권이 철저하게 '자기 자신'에게 부여되어 있는 상태다. 그러므로 이를 방해하는 요소는 배척되기 십상이고, 사회적으로도 이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기에 가정과 같은 작은 영역에서부터 개인의 자결권을 보장하고 중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사회는 나를 드러내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으므로 '나'에 대해 타인에게 설명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즉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특성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관계를 수립하기가 용이하다는 의미인데, 관계는 대화로 시작됨을 고려하면 표현 자체가 일상적인 사회에서는 대화 또한 어렵지 않으므로 서로를 알아가는 것도 상대적으로 쉽다.


개방적 개인주의의 가장 큰 특성은 방어성이나 조심성을 크게 띠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어성이란 타인이 내게 부정적 영향을 끼칠까 하여 수비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것을 말하며, 조심성은 방어성의 반대로 오히려 내가 타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진 않을까 하여 염려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개방적 개인주의 사회의 구성원은 '나'를 드러내고 타인과 교류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타인의 자기 표현이나 상호 작용의 시도에 소극적으로 일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개방적 개인주의를 매우 시끄럽거나 정신 사나운 것으로 묘사 또는 이해하면 곤란하다. 타인의 존재나 그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보니 확실히 활발한 느낌은 강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시선은 일절 고려하지 않고 내 하고픈 대로만 하거나 (흔히 권위주의 사회에서 민주 사회를 일러 지적하는) '무질서함'을 보이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캐나다의 국가 통합 모델로 여겨지는 '샐러드'가 대표적이다. 샐러드의 재료는 각기 다른 채소지만 결국 하나의 요리로 귀결된다는 점이 개방적 개인주의의 특성을 설명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비록 '국가'라는 틀은 존재하지만, 개인의 배경과 성격이 철저히 인정받고 존중되는 사회가 바로 개방적 개인주의 사회인 것이다.


다만 개방적 개인주의에도 선(線)은 있다. 이는 상대방이 민감해할 만한 것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어떤 가시적인 신체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해서 '굳이' 물어보지는 않고, 물어보는 일이 있더라도 매우 조심스럽게 물어보며, 결코 상세한 부분까지 알려 들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본인에게 지병이 있음을 밝혔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이는 무슨 병인지, 어쩌다 그런 병에 걸렸는지 꼬치꼬치 캐물으려 들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에서는 대체로 '그가 본인의 병력을 밝힌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란 판단하에 '그렇군요' 정도로 대응하며 배려하는 수준으로 끝내지 굳이 어떤 병이고(어디에 문제가 있고) 언제부터 그랬는지 알려 하지는 않는다(하지만 유사시에 대처할 목적으로 '어떤 증상'이 있는지를 물어보는 경우는 있다). 관계성이 중심인 사회에서는 이런 면모를 매몰차다거나 냉랭하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나, 개인주의적인 사회의 구성원은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은 평소 마주치는 상황/장소에서의 대화로도 충분하므로 굳이 처음부터 '호구 조사'하듯 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반면, 개방적 개인주의와 대치되는 개념으로 '폐쇄적 개인주의'가 있다. 폐쇄적 개인주의는 기본적으로는 개인주의적 속성을 지니기에 집단주의와는 다르다. 하지만 그 폐쇄성으로 인해 개방적 개인주의와 구분되는 명확한 특성이 있다. 이제 이에 대해 논해 보고자 한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참고할 만한 글 & 영상>

: 통제사회의 핵심

: 일본 사회가 개인주의적이란 착각

: 이제는 일상적 통제 지속이 기본값

: 한국에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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