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살롱에서 만난 삼국유사
한강은 늘 대화를 부른다. 물결 위로 저녁빛이 스며들면, 강은 흐르는 시간처럼 과거와 현재를 조용히 겹쳐 놓는다. 환경을 지키면서 건강한 기업으로 거듭나는 사회적 기업 한강을 만난 지는 7년이 넘는 것 같다. 그곳에서는 늘 인문학이 꽃핀다. 단지 환경운동만이 아니라 늘 문학이 동행한다. 기업의 대표가 문학을 통한 삶의 향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라서 그런 것 같다.
사회적 기업에는 한 달에 한번 한강살롱이 열린다.
지난가을 나는 한강살롱에서 ‘삼국유사를 빅데이터로 읽는 강연’을 했다.
‘살롱(salon)’이라는 말은 본래 집 안의 응접실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역사 속의 살롱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었다. 철학자와 시인, 과학자와 예술가가 모여 서로의 언어를 빌려 생각을 확장하던 자리였다. 정답을 말하는 강단이 아니라, 질문이 자라는 장소. 말이 말 위에 포개지고, 침묵마저 하나의 의견이 되던 열린 장이었다. 그래서 살롱은 늘 다름이 공존하는 형식이었다.
가을 한강살롱에서는 목사, 신부, 환경 전문가, 인문 연구자처럼 서로 다른 ‘사유의 틀’을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앉았다. 신을 말하는 언어, 생태를 말하는 언어, 데이터를 말하는 언어가 한 공간에서 부딪히고 섞인다. 이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 삼국유사 자체가 이미 그러한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불교와 토착신앙, 왕의 역사와 민중의 전설, 신성한 이야기와 생활의 기억이 한 권 안에서 겹쳐진 책. 삼국유사는 처음부터 ‘살롱형 텍스트’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왜 지금, 데이터로 삼국유사를 읽어야 할까. 빅데이터는 차가운 숫자의 언어로 오해되기 쉽다. 하지만 데이터는 사실 질문의 다른 얼굴이다. ‘무엇이 얼마나 반복되는가’, ‘무엇과 함께 등장하는가’, ‘어떤 감정의 결을 띠는가’를 묻는 방식일 뿐이다.
용이라는 존재를 예로 들어보자. 용은 몇 번이나 등장하고, 물·비·왕·희생 같은 단어들과 어떤 관계망을 이루는가. 시대가 바뀌며 용의 이미지는 어떻게 이동하는가. 데이터는 이야기를 해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이야기의 신비한 숲길을 드러낸다.
빅데이터로 읽을 때, 삼국유사는 낡은 고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집단 기억이 된다. 문무왕이 바다의 용이 되는 장면은 정치와 종교의 결합으로 읽히고, 이무기로 남은 존재들은 주변화된 목소리로 떠오른다. 데이터는 ‘해석의 폭’을 넓히는 도구다. 믿음의 언어를 가진 사람은 상징을 새롭게 읽고, 환경의 언어를 가진 사람은 물과 기후의 상상력을 발견하며, 신학과 생태, 인문과 기술은 같은 텍스트 위에서 서로를 비춘다.
한강살롱은 그래서 강연장이 아니라 사유의 부두에 가깝다. 각자의 배가 잠시 닿아,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흘러가는 곳. 삼국유사를 데이터로 읽는 일은, 과거를 계산하는 일이 아니라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다. 기술의 언어로 신화를 다시 읽을 때, 우리는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된다. 오늘의 위기와 공존, 믿음과 돌봄을 이 오래된 이야기를 통해 살펴보게 된다.
가을의 한강처럼, 이 살롱의 대화도 오래 남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물결이 지나간 자리에는 방향이 남는다. 삼국유사를 빅데이터로 읽는 한강살롱의 기억은, 서로 다른 언어들이 만나 더 멀리 흐를 수 있다는 한강의 가능성으로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