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가네
은행나무 노란 그늘 아래 서면
마음마저 물들어
눈물도 없는 그리움으로
쓰인 시는 은행잎처럼 떨어져
발아래 쌓인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깊이 묻어둔 부끄러운 기억들
떨어지는 잎새들이 죄다 들으라고
마음속에 한마디까지 다 비우고
나무처럼 앙상하게 남아 알몸으로
가을 문턱에 선다.
저문다는 것은 가벼워지는 것
노을이 지는 허공을 사선
또는 곡선의 몸짓으로
고요히 가볍게 잎새들이 진다.
아, 어지러운 가을의 빈 하늘
높고 시린 하늘로 새 떼들이
멀어져 간다.
눈도 가슴도 훤하다.
성큼성큼 가을이 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