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가을 한낮 볕이 기울어
따사롭게 쏟아지는 창가에 앉아
하늘만 여러 번씩 쳐다보다가
샛노랗게 물드는 은행나무에
막 비 듣는 것을 본다
청 나비 같은 칡넝쿨 잎사귀에
푸른 물방울이 톡톡 튀어 오른다
너를 기다리던 지난여름이
길고 고단했는데
낙엽이 저마다 그리운 빛깔로 물들고
가을이 세상의 어느 모퉁이를 돌아
담쟁이넝쿨 붉게 물들이고
쓸쓸하니 우두커니 서 있다
낙엽이 저렇게 의연한 모습으로
고요히 사뿐히 떠날 줄 아는 것은
그것이 네가 사는 이유인지 모르겠다
하늘과 바람과 샛노란 은행나무와
낮달을 머리에 이고 나도
황혼의 길을 걷는다
빈 하늘로 새 떼가 날아간다
아무것도 준비한 것 없는데
멀고 아득한 겨울의 벌판을
지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