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단상
나무 잎이 물든다
지난밤 창가를 서성이던 바람은
어디론지 떠나가고
부끄러운 내 생애의 창밖에 있는 것들이
문득 가을로 보인다
어스름 저녁 강가에 닿은 세월은
시린 추억의 그림자로 남아
내 마음을 적시고
더욱 엷어지는 내 그림자
성긴 머리칼 위로
눈부신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허공에 발그라니 물든 감홍시 하나 남겨 놓고
새들은 빈 하늘 속으로 멀어져 가고 있다
뚝 뚝 잎새 떨구는 오동나무 아래서
나도 세상의 언어 다 버리고
우두커니 서서
호박덩이 같은 해를 가슴에 안고
풀벌레 울음을 키우는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