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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길 1 08화

솔나무의 노래

by 최연수

오늘도 국립현충원 숲길을 거닌다. 직장을 은퇴한 이후 일과가 되었다. 많은 나무가 무성하지만 특히 소나무가 좋다. 이엽 송․삼엽 송․오엽송(잣나무) 가릴 것 없이, 늘 보는 나무지만 그 앞을 지날 때는 발걸음이 저절로 멈춰지고, 한 동안 훑어보게 된다. 옛날엔 흔했던 나무라 별로 관심도 없었는데, 나이가 들면서부터 점점 좋아진 것이다. 눈이 쌓인 푸른 소나무가 좋아, 한 겨울에도 산책을 한다.


아파트와 빌딩 숲 속에서 살다 보니까 수목이 귀하고, 특히 소나무가 우거진 숲 속을 걷다 보면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싱그러운 솔 냄새를 맡으며 솔밭을 거닐면 별세계에 온 기분이다. 소나무에서 풍기는 피톤치드(fitontsid)가 숲 속의 악취를 제거하고 공기를 정화함으로써, 자율신경(自律神經)의 안정에 효과적으로 작용해,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간 기능을 개선하며 쾌적(快適)한 수면을 가져오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부터 중환자들의 요양소가 이런 소나무 숲 속에 자리 잡았지 않았을까?


해방이 되어 애국가를 통해 ‘소나무’라는 표준말을 처음 알았다. 그때까지는 줄곧 전라도 사투리로 ‘솔낭구’라고 했으니까. 솔잎은 어린 시절 소꿉놀이할 때 불쏘시개로, 병원 놀이할 때 주사 바늘로, 솔방울은 전쟁놀이할 때 대포알로, 송진(松津)은 껌으로 씹으면서... 이렇게 솔낭구와는 일찍부터 깊은 인연을 맺었다. 제2차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우리 어린 국민학생들은 관솔을 따러, 혹은 상급생들과 조를 짜서 솔낭구 그루터기 뿌리를 캐러, 책임량을 다 하기 위해 땀 흘리며 산을 오르내리었다. 그리고 어머니를 따라 산에 올라가 갈퀴로 솔잎을 긁어 모으거나, 솔방울을 줍고 솔가지 삭정이를 꺾어와 땔감으로 썼다.


한편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쌀을 공출(供出)하고 배급제가 되었을 때, 허기지면 송기(松肌)라는 속 껍질을 벗겨 먹기도 하고, 솔잎을 맷돌에 갈아 즙을 내어 먹기도 했다. 그야말로 초근목피(草根木皮)를 먹었던 시절, 솔잎 즙을 마실 때의 그 역겨움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요즈음도 솔잎을 곁들인 송편을 먹거나 음료수 ‘솔의 눈’을 마실 때는, 다들 좋다는 그 향기에 얼른 끌리지 않음은 그 역겨움의 추억 때문이다.

일제 때 아버지께서 목공 일을 하면서, 송판과 소나무 각목(角木)으로 여러 가지 가구를 제작했는데, 수입이 신통치 않아 늘 살림에 쪼들렸고, 그 노동에 무척 힘들어하셨다. 해방이 되어 목공일을 치우고, 정치판에 뛰어들어 우리 집 가계는 늘 어려웠다. 근처에 제재소가 있었는데, 달구지에 소나무들이 실려 오면, 우리는 잽싸게 낫을 들고나가 껍데기(樹皮)를 벗기고, 재목으로 켜고 자르고 남은 나무 조각을 주워 와서, 햇볕에 말려 땔감으로 썼다. 농촌의 소가 그렇듯이, 소나무도 이렇게 살아 있을 때나 죽어 있을 때나 버릴 것이 없이 다목적으로 쓰이는 참으로 좋은 나무이다. 우리나라 국토의 65%가 산림이고, 그중 절반이 소나무라고 한다. 송(松) 자가 들어있는 지명이 전국에 681곳이나 된다니, 소나무가 그만큼 많고 좋아한다는 방증이기도 한다.


충북 속리산의 ‘정이품소나무(천연기념물 제103호)’를 비롯해서, 서울 제동 헌법재판소 안의 백송(천연기념물 제8호)․경북 청도 운문사의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제180호)․대한해렵 제주도 등지에서 나는 해송(천연기념물 제 456호) 외에도, 중요문화재에 긴요하게 쓰이므로 정부의 보호로 지정된 삼척과 울진 구룡사의 금강송 등은, 수량이 희소하고 형상이 독특하거나, 혹은 특이하게 얽힌 사연이 있어 천연기념물이 되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해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한 소나무는 얼마나 많은가?


어렸을 적에는 크지도 곧지도 못하고 구부러진 솔나무가, 재목감으로 별로 이용 가치가 없게 보였다. 그런데 요즈음은 소나무가 구부러져야 운치(韻致)가 있고, 더구나 용 비늘 같은 수피를 입은 채 구부러진 소나무를 보면, 용틀임하며 하늘로 올라간 듯한 어떤 위엄도 있어 보인다. 소나무만을 주제로 한 사진작가 배병우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 어떤 장엄함을 느낀다. 한편 조선일보사 미술관에서 열린(2011.5.25) 장국현의 ‘울진 금강송’ 사진전을 둘러보았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록을 위해 열었노라고 했다. 기다리던 참이라 개관하자마자 첫 손님으로 들어갔다. 작품 하나 하나 앞에서 걸음을 떼지 못한 채 석고상이 돼버렸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과 같이, 작가는 자칭 살아있는 소나무에 미친 인생이라 했지만, 잠시나마 나는 소나무 사진에 미쳐버렸다. 소나무는 흔한 것만큼 그 종류가 많기도 한데, 어느 것을 보아도 우아함과 기품(氣稟)이 있어, 관상수(觀賞樹)․정원수로서는 일품인 것 같다. 특히 흑송(黑松)은 일본의 무인을 연상하는데, 적송(赤松)은 한국의 문인을 연상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적송을 보면 고매(高邁)한 옛 선비를 대한 것 같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하는 애국가 가사나, ‘백설이 만건곤(滿乾坤)할 제, 독야청청(獨也靑靑)하리라’는 시조(時調)와 같이, 소나무는 대나무와 같이 절개를 상징하는 나무다. 그러나 대나무처럼 올곧지 못한 채 구부러져 있어, 평가절하(平價切下)하는 사람도 있지만, 구부러질지언정 꺾이지 않은 절개를 오히려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바닷가 높은 벼랑 끝에 홀로 서있는 소나무를 보면, 수 백 년 해풍과 육풍을 번갈아 맞기도 하고, 눈 서리에 시달리면서도 까딱 하지 않은 그 절개가 대견스럽다.


그러나 소나무 아래에는 아무 초목도 자라지 못하므로, 그 옹졸함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촘촘하게 덮여있는 바늘 잎 낙엽 때문에, 공기와 햇빛의 통과를 차단, 경쟁자의 등장을 원천적으로 막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이 못 마땅하다는 것이다. 하기야 소나무만 그럴까? 큰 나무 아래 그늘에서는 작은 나무들이 모두 자라지 못하지. 비유(比喩)하느라고 그렇지 설마 소나무 자체가 싫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렸을 적에는 소나무 위에서 너울거리는 학이나 왜가리가 장관(壯觀)을 이루었다. 동령수고송(冬嶺秀孤松)이란 시에서 본 바와 같이, 삭풍이 휘몰아치는 산야에서 한설(寒雪)을 소담스럽게 이고 있는 모습은, 그런 송학(松鶴)을 본 듯 대표적인 겨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지난 겨울 강원도 영동지방의 폭설은 100년 만이라고 하여 그 피해가 엄청났다. 아마 소나무들도, 촘촘한 솔잎에 쌓인 눈의 무게에 이기지 못하여, 가지들이 적지 않게 꺾이고 부러졌을 것이다. 그 꼿꼿한 절개를 지키려면 그만한 대가가 따르는 것이겠지. 그래서 소나무는 우리의 영혼을 하늘에 올리는 나무라고 한 것이다.


문인․화가․사진작가들에 의해서 회자(膾炙)된 소나무들이 각지에 흩어져 있다. 그렇게 유명해진 소나무들을 가보지 못하였으나, 내 발이 쉽게 닿는 곳에 이름 없이 서있는 소나무를 보아도, 옛 고향 죽마고우(竹馬故友)를 만난 듯 정다운 것은, 나도 이제 노송(老松)이 된 탓일 것이다. 인수백년(人壽百年) 송수천년(松壽千年) 학수만년(鶴壽萬年)이라 했으니, 노송인 나도 천년수를 기대해볼만하다.


그런데 2004년 제주도에서 처음 발견된 재선충(材線蟲)은 꾸준히 북상하여 전국에 비상이 걸렸다. 소나무의 에이즈라는 이 해충은 1mm도 채 안 되는 작은 해충인데, 번식력이 강하여 솔수염하늘소를 통해 삽시간에 송림을 벌겋게 초토화한다는 것이다. 물샐 틈 없는 방재를 통해 그 고사(枯死)를 사전에 예방해야 할 것이다. 지구 온난화로 언제인가 소나무도 사라질 것이라 하니 지급부터 쓸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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