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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희 Feb 28. 2024

버리고 얻은 풍경

조급해하지 않으니 삶이 담백해졌다.

연장된 자아


10년 전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힘든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뭔가에 기대고 싶은 마음에 아는 분 소개로 처음으로 철학관을 갔다. 철학관 선생님은 집에 오래된 물건이 많아 물건이 주인 행세를 하니 주인이 힘든 거란 말을 했다. 좀 이상하다 싶었지만 속는 셈 치고 며칠에 걸쳐 오래된 물건을 버리고 집 안 청소를 했다. 정리를 하고 나니 훨씬 기분이 상쾌해졌다. 나를 붙잡고 있는 무언가로부터 해방되어 한껏 자유로워진 기분이 들었다. 풍수지리에서도 물건을 많이 들이면 복이 들어올 길이 없다고 한다. 많이 가지고 사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우리는 왜 물건을 소유하려고 하는 걸까? 사람은 물건의 소유를 통해서 자아를 인식한다고 한다. 뭔가를 소유하면서 그걸 내 연장된 자아처럼 느낀다는 거다. 오래전에 명품 가방이 가지고 싶어서 친구와 매월 적금을 들어 모은 돈으로 가방을 산 적이 있다. 원하던 가방을 들고 다니니 왠지 나의 품격이 한층 올라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소유물이 나 자신은 아니지만, 마치 나 자신의 연장된 존재로 인식했는데 문제는 소유하더라고 행복한 건 아주 잠깐 또 다른 가방이 사고 싶어졌다. 소유는 아주 일시적 만족만 줄 뿐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의 크기만 키울 뿐이었다.



무지개 감정


미니멀리스트가 되려는 이유 중 하나는 거추장스러운 것을 버리고 내면의 삶에 집중하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야 내면에 집중하는 건가? 외면의 실체는 나의 몸일 터인데 그럼 내면은 무엇일까? 늘 이에 대한 궁금증에 목이 말랐었다. 정혜신 정신과 의사는 내면의 실체는 '감정'이라고 말했다. 내면의 집중하는 삶은 감정에 귀 기울이며 사는 거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감정은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상을 가지고 시시각각 변한다. 변화하는 감정에는 이유가 있는데 살피지 않았다. 화가 나도 꾹꾹 참다 엉뚱한 곳에 터뜨리기도 하고 두려운 감정은 애써 잊으려 했다. 바쁜 세상에서 감정은 사치라 여겨 풀어진 나사를 조이듯 감정을 조정하고 통제하며 살아왔다. 어떤 날은 힘이 빠져 자신을 돌보는 일조차 힘겨운 상태가 되는 날도 많았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알아주지 않고 자신을 미워하거나 멀리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자신과 멀어지는 삶의 끝에는 심각한 공황장애나 우울증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어려서는 부모님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커서는 선생님이나 직장 상사, 주변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타인의 가치관이 내 가치관인 줄 알고 살았다. 그럼 내 감정에 솔직하고 내 가치관대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게 뭔가? 의외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기가 쉽지 않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이 일이 맞는 일인가? 매번 고민하며 살았다. 그래서 일단 마음이 가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 보고 있다. 작게 쪼개서 해보고 그 안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식으로 접근해 보고 있다.



새로운 풍경


직장을 그만둔 것은 나의 선택과 의지였다. 인생의 여정에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을 내려놓고 나서는 훨씬 삶이 단순해졌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작은 일들을 하면서 인생의 새로운 풍경들을 만났다. 2월 초부터 살롱 드 까뮤에서 그림을 통해 글을 쓰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즐겁게 소통하고 글을 쓰고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며 성장하는 모임이다. 제 속에 갇혀 홀로 꿈꾸어 왔던 이야기들을 글로 풀어내는 일은 찌는듯한 더운 여름날 시원한 강물에 뛰어드는 일만큼 신나고 즐겁다. 아침이면 인사 건네주고 좋은 정보가 있으면 나눠주고 늦은 밤까지 글을 쓰고 다독이는 그녀들이 사랑스럽다. 같이 글을 쓰는 일이 즐겁고 소통하는 일이 신이 난다.  


뭘 좋아하는지 모르고 열심히 잘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살다 좋아하는 걸 찾아 하나하나 해 보니 내 안에 가득 차오름이 느껴진다. 하나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에는 신중해야 하지만 필요할 때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진짜로 좋아하는 게 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을 거치고야 새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내 감정까지 속이며 좋은 사람인 척하지 않고 산다. 좋은 사람이라는 건 타인의 가치관에 맞혀 사는 삶이다. 타인의 가치관에 맞춰 좋은 사람인척하기보다는 나에게 좋은 사람으로 살려고 한다. 조급하지 않고 관심을 구걸하지도 않으니, 삶이 담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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