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예보대로 종일 비가 내렸다.
새 아침을 맞아 올려다본 하늘은
구름이 서서히 걷혀가는 모습이다.
저만치 '빼꼼' 파란 하늘이
한 뼘만큼 열린다.
그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 한줄기가 반갑다.
"비 그치면 무조건 걸어야지"하고 문 밖을 나선다. 늘 화창한 날씨는 당연한 듯이 누리지만,
비 온 뒤 잠시 게이는 가을날은
계 탄 듯 반갑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계절마다 다르게 찾아오는
자연의 넉넉함만은 거저 누리는 것들이다.
여름 내내 비가 없어 바짝 말랐던 대지가
며칠간의 잦은 비로 해갈이 되었다.
동네 곳곳을 둘러싸고 흐르는
자그만 계곡물이 불어났다.
요맘 때면 산란을 위해 물을
거스르는 연어를 간간히 만날 수 있다.
이 도시 속의 이색적인 풍경이다.
야채 가게를 들린다.
10월을 앞둔 청과물들이 가득하다.
가을의 제철 과일로 으뜸인 사과가
종류마다 놓였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단호박이 풍성하다.
지금이 제일 맛있고 값도 싸다.
형형색색의 모양과 색감이
할로윈 장식을 기다리며 집집마다 팔려갈 테다.
어릴 적 한국에서는 단단하고 큼직한
늙은 호박이 호박죽의 주재료였다.
그 맛에 비기진 못해도
우리 식구 모두에게 환대받는 음식이다.
푹 익혀 호박죽을 만들고 일부를 잘라
컨테이너에 쟁여둔다.
루이는 눈도 어두워지고 귀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코의 예민한 감각은 여전해
어느새 옆에 와 있다.
"나 불렀지?" 하는 눈망울이다.
최애 간식이 성게알이나 캐비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요즘의 '허걱' 하는 물가에
값싸고 맛있는 음식이 제철을 맞아 반갑다.
고된 월요일이 끝난 느긋한 다음날 아침은
이렇게 흐른다.
드립 커피와 도서관에서 빌려온 조경란 작가의
글을 읽는다. 썸네일만으로도 나른하고
평온한 재즈음악... 그리고 달콤하고 포슬한
단호박 한 조각.
돈 들이지 않고 꽉 채운 가성비의 한나절이
음악처럼 흘러간다.
야채가게로 걸어가는 7분여 거리의 풍경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