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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킁킁총총 Jun 27. 2024

술이 술을 부른다.

술은 좋지만 좋지 않아.

24.06.21(금)

오늘은 오랜만에 친구 집에서 술을 한 잔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술의 부어마셨다 아주 오랜만에. 언제나 부르면 나와주는 친구였지만 오늘은 아이를 봐야 하기에 집에서 먹어야 한다며 집으로 초대한 친구. 그렇게 우리는 집에서 아이를 놀아주고 재우고 나서야 술을 마실 수 있었다. 평소에 8시가 넘어야 잔다고 했지만 오늘은 7시가 조금 넘었는데 잠자리로 들어간 아가는 최고의 효녀였다. 아주 칭찬해>_<


술을 마시며 다음 날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딱 4병만 마시기로 했다. 술은 술술 들어갔다. 안주가 좋아서였을까 둘이 나누는 대화가 죽이 잘 맞았던 걸까. 아마 둘다였지 않았을까.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꽤 생산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오랜만에 나의 비밀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친구들에게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는 게 쉽지 않았다. 친구들에게만은 비밀이 없는, 정말 시시콜콜한 것부터 이것까지 말해도 괜찮을까 싶었던 이야기까지 참 잘 말했던 나인데 돌이켜보면 참 속없었던 시절 같네... 뭐 그게 친구들이 날 좋아했던 이유였을지도 모르지만. 비밀 이야기를 하고 나니 조금 머쓱한 기분이었다. 괜히 말한 건가 싶었지만 친구의 반응은 생각이 무색할 정도로 크게 놀라지도 그렇다고 나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냥 나를 나로 바라봤다. 나에게 그런 존재였었지. 잊혔던 기억이 다시 곁으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비밀 이야기는 세상 무엇보다 맛있는 안주였다. 어느덧 술이 사라졌고 이제 슬슬 자리를 정리하려고 일어나 신발을 신고 있었다.


"갈 거야? 진짜 갈 거야? 아직 두 병 더 있는데?"


친구가 꼬시기 시작했다. 하지 마라고 갈 거라고 말했지만 속에서는 나 역시 같은 마음이었겠지. 두 번째였을까, 세 번째였을까 못 이기는 척 신발을 벗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망했다. 내일 또 하루 종일 시체로 누워있겠지. 이제는 고삐 풀린 망아지들처럼 우릴 말릴 수 없었고 술을 마시는 속도는 한층 더 빨라졌다. 그러다 친구 와이프가 집에 오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제 정말 가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 다른 분위기였다. 셋이 먹으면 된다고 자고 가라는 당황스러운 상황이 연출됐다. 그저 웃었다.


준비된 소주는 이제 없다. 소주 6병. 이제 정말 집을 가야 하지만 분위기는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다음 종목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우리에게는 양주, 와이프에게는 와인이 눈앞에 나타났다. 저것까지 다 먹으면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앞에서 티기타가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술잔을 안 들 수가 없었다. 그래, 마시자 에라.


얼마나 더 마셨을까. 친구는 어느덧 바닥에 누워 자고 있었다. 와이프랑 둘이 남은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지만 어떤 대화였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기억나는 건 자고 가라는 말과 너와 내가 오래 알고는 지냈지만 서로 친분은 참 없었다는 얘기뿐. 같은 중,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둘의 접점이 참 없었다. 뭐 덕분에 이렇게 편하게 함께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말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자고 갈 것 같았다. 칫솔에 입을 옷까지 내 앞에 놔뒀으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겠다 다짐했고 새벽 3시가 돼서야 자리에서 나올 수 있었다.


오랜만에 정말 진탕 술을 마셨던 하루. 다음 날 죽어있을 모습이 그려졌지만 뭔지 모를 편안한 마음이었다. 너희와 함께 했던 이 시간을 기록으로 남겨 놓는 이 순간도 너무 특별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곳은 다르지만 늘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네가 있기에 오늘도 큰 힘을 받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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