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좋지만 좋지 않아.
24.06.21(금)
오늘은 오랜만에 친구 집에서 술을 한 잔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술의 부어마셨다 아주 오랜만에. 언제나 부르면 나와주는 친구였지만 오늘은 아이를 봐야 하기에 집에서 먹어야 한다며 집으로 초대한 친구. 그렇게 우리는 집에서 아이를 놀아주고 재우고 나서야 술을 마실 수 있었다. 평소에 8시가 넘어야 잔다고 했지만 오늘은 7시가 조금 넘었는데 잠자리로 들어간 아가는 최고의 효녀였다. 아주 칭찬해>_<
술을 마시며 다음 날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딱 4병만 마시기로 했다. 술은 술술 들어갔다. 안주가 좋아서였을까 둘이 나누는 대화가 죽이 잘 맞았던 걸까. 아마 둘다였지 않았을까.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꽤 생산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오랜만에 나의 비밀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친구들에게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는 게 쉽지 않았다. 친구들에게만은 비밀이 없는, 정말 시시콜콜한 것부터 이것까지 말해도 괜찮을까 싶었던 이야기까지 참 잘 말했던 나인데 돌이켜보면 참 속없었던 시절 같네... 뭐 그게 친구들이 날 좋아했던 이유였을지도 모르지만. 비밀 이야기를 하고 나니 조금 머쓱한 기분이었다. 괜히 말한 건가 싶었지만 친구의 반응은 내 생각이 무색할 정도로 크게 놀라지도 그렇다고 나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냥 나를 나로 바라봤다. 넌 늘 나에게 그런 존재였었지. 잊혔던 기억이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비밀 이야기는 세상 무엇보다 맛있는 안주였다. 어느덧 술이 사라졌고 이제 슬슬 자리를 정리하려고 일어나 신발을 신고 있었다.
"갈 거야? 진짜 갈 거야? 아직 두 병 더 있는데?"
친구가 꼬시기 시작했다. 하지 마라고 갈 거라고 말했지만 속에서는 나 역시 같은 마음이었겠지. 두 번째였을까, 세 번째였을까 못 이기는 척 신발을 벗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망했다. 내일 또 하루 종일 시체로 누워있겠지. 이제는 고삐 풀린 망아지들처럼 우릴 말릴 수 없었고 술을 마시는 속도는 한층 더 빨라졌다. 그러다 친구 와이프가 집에 오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제 정말 가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 다른 분위기였다. 셋이 먹으면 된다고 자고 가라는 당황스러운 상황이 연출됐다. 그저 웃었다.
준비된 소주는 이제 없다. 소주 6병. 이제 정말 집을 가야 하지만 분위기는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다음 종목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우리에게는 양주, 와이프에게는 와인이 눈앞에 나타났다. 저것까지 다 먹으면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앞에서 티기타가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술잔을 안 들 수가 없었다. 그래, 마시자 에라.
얼마나 더 마셨을까. 친구는 어느덧 바닥에 누워 자고 있었다. 와이프랑 둘이 남은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지만 어떤 대화였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기억나는 건 자고 가라는 말과 너와 내가 오래 알고는 지냈지만 서로 친분은 참 없었다는 얘기뿐. 같은 중,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둘의 접점이 참 없었다. 뭐 덕분에 이렇게 편하게 함께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말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자고 갈 것 같았다. 칫솔에 입을 옷까지 내 앞에 놔뒀으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겠다 다짐했고 새벽 3시가 돼서야 자리에서 나올 수 있었다.
오랜만에 정말 진탕 술을 마셨던 하루. 다음 날 죽어있을 모습이 그려졌지만 뭔지 모를 편안한 마음이었다. 너희와 함께 했던 이 시간을 기록으로 남겨 놓는 이 순간도 너무 특별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곳은 다르지만 늘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네가 있기에 오늘도 큰 힘을 받은 것 같다.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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