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킁킁총총 Jun 26. 2024

그때 빌렸던 돈 말이에요...

오늘도 변해가는 내 모습

24.06.21(금)

불편했던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매번 삼켰지만 오늘은 입 밖으로 꺼내기로 마음먹었고 나는 결국 그 말을 꺼냈다.


“형 그때 빌렸던 돈 말이에요...“


오랜만에 친한 형과 술자리를 가졌다. 요즘 많은 일이 있었는지 연락 오는 빈도수가 늘었고 오는 연락마다 할 말이 많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마침 면접을 위한 복장을 챙겨야 하기에 평택을 방문 할 겸 약속을 잡았다. 못 본 지 몇 달이 지났을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그 사이 형에게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최근에 있었던 일을 말 하면서 나와 함께 했던 시절의 그리움을 토해내고 있었다. 얘기를 들으면서 머릿속에서는 다른 생각이 밀려들어왔다. 자연스럽게 말을 꺼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바로 지금이다. 그렇게 나는 돈 이야기를 꺼냈다.


어느덧 4-5년 정도가 됐다. 많다면 많을지도 적다면 적을지도 모르는 금액, 180만 원이었다. 처음에는 언제까지 주겠다고 말했고 기한은 점점 늦춰졌다. 준다는 말에 받으면 어떻게 써야지 생각했지만 들어오지 않는 돈을 기다리며 나의 계획도 무기한 연장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이제는 기한조차 말하지 않는 형의 모습에 많이 힘들겠다고 애써 위로하고 돈에 대해 잊자고 생각했다.

지인에게 돈을 빌려주면 돈도 잃고 사람도 잃는다는 말을 종종 들어봤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올 것만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뜸해지고 연락도 잘 받지 않는 모습이 보이며 나는 조금씩 체념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형에게 연락이 종종 오기 시작했다. 같이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때로는 술도 마시는 사이로 회복됐다. 하지만 돈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형의 상황을 알고 있으니 돈 이야기를 먼저 입 밖으로 꺼내기는 더욱 쉽지 않았다. 그냥 없는 돈이라고 생각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도 틈틈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만남도 가질 수 있는 사이가 됐다. 여전히 돈 이야기는 없지만 그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지 계산을 도맡아 하려는 형의 모습에 자꾸 마음이 쓰였다. 형도 나도 말하지는 않지만 이 미묘한 불편함은 암묵적인 룰처럼 우리 사이에 존재했다.


그렇게 오늘 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기회. 상대방이 기분이 상하지 않게 최대한 서로의 입장을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로 만들어 보려고 노력했고 다행히 그런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형과 만나는 순간마다 느껴지는 불편함을 없애고 싶었다. 돈을 달라는 의도가 아니라 저도 때로는 술값도 내고 커피도 사고 돈은 언제든 여유가 있을 때 줘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서로 속으로만 인정된 무기한의 채무관계가 대화로 서로 용인된 무기한 채무관계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사실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애써 말했지만 형은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이자까지 꼭 주겠다고 말하는 대화, 형이 편한 데로 해달라고 말하며 우리의 암묵적인 룰이 깨졌다.


이런 이야기를 주변에 하면 참 바보 소리를 많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바보 같은 모습이다. 그 이후로는 이런 채무관계를 만들지 않게 된 결정적인 내 인생의 사건이었기에 나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홀가분해진 마음. 이제는 좀 더 편하게 마주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나에겐 꽤 큰 수확이었다. 비록 돈은 아직이지만, 나에겐 형이 더 소중한 사람이다.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이전 21화 운명론자가 되어가는 걸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