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없는 손가락
매년 추운 겨울이 되면,
왼손 새끼손가락이 시린다.
이 통증은 나에게 아주 익숙하다.
왼손잡이인 내가 왼손의 손가락이 아픈데도
이제는 별 일 아닌 듯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살짝 저릿하다가도 괜찮아지고, 불편한 듯 느껴지다가도 금방 괜찮아지길 반복한다.
지금은 그냥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사고로 인해 이 아픔을 얻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1994년, 내가 2살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 평일 오후였다.
부모님께서는 일하러 나가셨고, 세 살 터울의 누나는 아기스포츠단에 수영을 배우러 갔고,
나는 할머니와 함께 집에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할머니는 주로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고, 나는 거실에서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의 햇살에 몸이 노곤노곤 해지신 할머니는 깜빡 잠이 드셨고, 혼자 있던 나는 거실에서 주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순간 호기심에 부엌 식탁 위에 있는 반짝이는 유리컵을 바라보게 되었다.
예뻐 보이는 유리를 만져보고 싶었던 걸까? 식탁의 다리를 잡고 흔들어대다 끝내 유리컵을 떨어뜨렸다.
"투둑, 쨍그랑!"
유리가 깨지는 소리에, 할머니가 일어나셨다. 상황을 보고 유리를 치우려 일어나셨는데,
그 순간! 내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내가 깨진 유리 조각 위로 손을 뻗은 후였다.
할머니는 이때 너무 안타깝고 미안하고 많이 놀라셨다고 했다.
할머니는 흐르는 피를 닦고, 우는 나를 달래며
가까운 병원에 가서 내 왼손에 박힌 유리조각을 빼내주셨다.
할머니는 기억하지 못하시지만, 내 손에 있는 흉터를 봐서는 몇 바늘 꿰매었던 것 같다.
당연히 이 소식을 듣고 부모님은 엄청 놀라셨다고 한다.
며칠 뒤, 주말이 되어 여느 때처럼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엄마가 나의 다친 왼손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나의 왼손 새끼손가락은 움직이질 않고 있었다.
장난감을 집을 때도, 주먹을 쥘 때도 새끼손가락만 꼿꼿이 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바로 응급실로 달려갔다.
당시 서울 구로동에 살고 있었는데,
자세히 알아보고자 하여, 혜화동의 서울대학교병원까지 가서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검사 결과, 나의 왼손 새끼손가락으로 이어지는 왼손의 힘줄이 끊어져 있었다.
이 힘줄을 다시 이어 붙이려면, 대수술을 해야 하는데
지금 나는 2살도 안 된 너무 어린 나이라서, 좀 더 크면 오라고 했다.
의사가 정해준 나이는 10살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아픈 손가락 이야기를 10살이 되어 처음 들었다.
이야기를 듣고 이 손가락에 더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수술'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나는 엄마에게 수술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씀드렸고, 수술하지 않게 되었다.
사고 당시였던 93년도에는 이 수술이 대수술이었고, 내가 10살이던 2000년대 초에는 이미 의료기술이 발전해서 큰 위험이 없는 수술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수술' 그 자체가 두려워서 하지 않았다.
이 결정으로 인해,
나의 삶은 이 아픈 왼손 새끼손가락과 함께하게 되었다.
매년 겨울마다 간지러운 듯... 시린 듯... 이 저리는 건 기본이고,
식사 자리에서나 공적인 자리에서 물건을 집을 때마다 꼿꼿이 선 새끼손가락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기술을 익혔다. 바로 네 번째 손가락으로 새끼손가락을 감아서 주먹을 쥐는 방법이다.
이 작은 기술 덕분에 주먹을 꽉 쥐고 태권도도 배울 수 있었고, 평소에 티 나지 않게 생활이 가능해졌다.
내 왼손 새끼손가락에는 아직도 주름이 없다.
스스로 접었다 폈다 운동을 하지 못하니까 흔적이 없는 것이다.
옆에 있는 네 번째 손가락의 도움으로 접고 펴기를 반복할 수 있지만,
스스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름이 없는 것이다.
주름이 없다는 건, 아직도 아기 손가락처럼 작고 여리다는 것이다.
나는 이 주름을 보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도와주는 삶, 다른 사람이 바라는 삶이 아니라,
나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삶을 걸어가리라 다짐한다.
어려움과 인내와 고난의 시간을 겪으면서 쌓이는 삶의 주름이,
나를 더 솔직하고 지혜롭게 성장케 하는 방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각자의 삶에 주름이 있다.
노력의 주름, 실패의 주름, 성장의 주름, 익숙함의 주름, 걱정의 주름, 기쁨의 주름 등등.
주름은 외모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성장의 길을 보여주는 소중한 기억의 외모임을 믿는다.
오늘날 나에게 왼손 새끼손가락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다.
구부러지지 않는다는 것도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아픈 손가락을 안고 사는 나.
이런 나의 모습이 '나'이고, 이런 유니크한 모습이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준다.
앞으로 내 앞에 펼쳐질 수많은 일들이
어떤 주름으로 내 마음에 새겨질지 기대된다.
새끼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을 때,
나 스스로 구부릴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 것처럼,
주어진 상황 속에서 방법은 늘 존재하기 마련인 것이다.
지난 3월,
아직 겨울의 한기가 가득한 새벽에
마틸다와 새벽 미사를 보러 성당에 갔었다.
파란 하늘에 새벽 공기는 찼고, 기다란 성당 창문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아름다웠다.
차가운 공기와 새끼손가락이 맞닿으며,
손가락이 다시 시렸다.
손가락을 보니 여전히 주름은 없었다.
나는 하느님께 기도드렸다.
"제가 당신의 뜻에 따라 살 수 있게 이끌어달라"라고.
"그렇게 살 수 있는 힘과 지혜로움도 달라"라고 청했다.
아내인 마틸다는 내 왼손을 꽉 쥐었다.
함께 기도한다고.
마틸다는 집에서 물을 마실 때,
물 잔을 왼손으로 들고 새끼손가락을 세우며
씩 웃는다.
그러면 나도 덩달아 씩 웃는다.
요즘엔
내 상처를 통해서
소소한 웃음을 본다.
상처는 아픔으로만 남지 않는 것에 희망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