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진안 용담호
│마음수행과 청정 ㄱㄱ4ㅡㄱ금금강모치 │
모든 자연이 얼어붙고 움츠러드는 겨울, 도보여행의 진수는 겨울이야 라며 겨울의 충청북도와 전라북도의 영동군, 무주군, 진안군 3개 산천을 걷는다.
내가 '걷는' 이유는 명상을 위해서다. 자연미 감상과 건강 역시 중요한 보너스이다.
육신의 3대 본능인 식욕, 성욕, 소유욕보다는 마음의 3대 본능인 정(사랑), 지(진리), 의(위해서 사는 삶)을 성장시키기 위해서이다.
나는 금욕주의자가 아니다. 식욕과 성욕과 소유욕은 생존을 위해 주어진 것들이다. 그러나 그 3대 욕망이 지나치면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물론, 자타의 인생을 파멸로 끝을 내버릴 수 있는 무서운 괴물로 변할 수가 있다.
그래서 적절하게 조절하고 중도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의 노력과 수행이 필요하다.
나는 신을 믿는다. 그리고 카토릭, 개신교뿐만 아니라 유불선, 힌두교 등의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진리가 담겨 있는 타 종교를 존중한다. 싸우지 않고 부닥치지 않으려면 '서로 다름'을 존중하면 된다. 인간 사회생활에서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듯, 정신세계 분야에서도 다름을 존중하는 것이다.
누가 특정 종교에 다니든 혼자 수행과 기도의 생활을 하든 무슨 상관이랴. 그것을 간섭하고 분별하여 적대감을 드러내면 갈등과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 스스로의 영성을 계발해 어제 보다 한 단계 더 자아완성을 위해 사는 것이다.
기도, 묵상, 진리탐구, 선, 명상 등 수행의 다양한 방법 중에서 나는 도보명상을 하기 위해 전국을 걸었다.
이번 도보길도 동호회의 안내에 따랐다.
오전 9시 30분에 충북 영동군 봉소리에 도착하였다. 봉소리는 전라북도 무주군과 경계를 이루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농촌 마을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금강의 맑은 물줄기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그야말로 산천이다. 마을은 한적하고 뜸하다.
봉소리는 과거 전북 무주와 충북 영동을 잇는 중요한 길목이었던 압치(鴨峙)가 위치한 곳으로, 현재는 압치터널이 개통되어 교통이 편리해졌다. 일행은 편리한 신도로 대신 구도로를 걷는다. 도보는 옛날 다니던 길이 훨씬 운치가 있고 정겹다.
봉소리 근처에 금강모치마을이 있다. 맑은 금강 상류에서 서식하는 금강모치를 테마로 하여, 다슬기 잡기, 뗏목 타기, 곶감 깎기 등 계절별로 다양한 농촌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봄가을, 여름철이면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놀러 온다. 금강모치는 오염되지 않은 맑고 차가운 물에서만 서식하는 대표적인 1 급수 어종으로 전 세계에서 한국에서만 산다. 금강산 계곡에서 처음 발견되어 금강모치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주로 산간 계곡의 수온이 낮은 최상류 지역에서 산다. 한강과 금강의 최상류와 강원도, 무주 구천동에서 서식한다.
금강모치는 멸종위기종으로 법적 보호를 받았으나, 지금은 개체수가 어느 정도 해제되어 환경부에서 멸종위기종에서 해제된 상태다. 그러나 금강모치가 가장 싫어하는 수온상승의 기후변화, 1 급수 오염, 무지개송어, 베스 등 외래종 유입으로 언제 또다시 멸종위기종이 될지 알 수 없다. 금강모치가 살고 있다는 것은 해당 하천이 매우 깨끗하고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이다. 나는 지금 청정가치의 희귀 어종 금강모치가 사는 마을을 걷고 있다.
안압재는 압치(鴨峙)라고도 불리는 고개로, 충북 영동군 학산면 봉소리와 전북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를 연결하는 길목이다. 과거 국도 19호선이 지나던 중요한 고개였으나, 바로 옆으로 압치터널이 개통되면서 지금은 한적한 옛 고갯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백두대간의 한 줄기인 백하지맥이 지나가는 능선에 위치하여, 등산객들이 성주산이나 갈기산 등으로 향하는 산행 코스의 일부로 자주 이용한다.
'압치(鴨峙)'라는 이름은 고개의 모양이 '오리 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유래했다.
안압재(압치) 정상에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정자와 넓은 주차 공간이 보인다. 일행은 이곳에서 잠시 간식을 먹으며 휴식했다. 이곳에서 영동군과 무주군이 한눈에 들어온다. 편리성과 산업화를 위한 뻥 뚫린 터널이 아닌, 구불구불한 옛 고갯길을 따라 걸을 수 있어 길꾼들에게는 오히려 정겨운 길이다.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에 속한 내도리(內島里)는 이름 그대로 금강 상류가 마을을 휘감아 돌아 마치 섬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물돌이 마을'이다. 강물이 마을의 3면을 U자 형태로 감싸고 흐르는 독특한 지형 덕분에 예부터 경치가 빼어나기로 이름난 곳이다.
금강상류는 예로부터 사행천(蛇行川)으로 뱀처럼 고불고불한 형태를 띤다. 자연히 길꾼들에게 묘미를 선사한다.
오늘 도보는 오랜 한반도 전통의 옛길, 옛강, 옛산을 맛보며 걸을 수 있는 그야말로 3종선물세트 길이다.
마을 앞으로는 맑은 금강이 흐르고, 뒤로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풍수의 기본을 갖추었다. 또한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농촌의 정취 보며 걷는 길이다. 마을의 지형이 '물 위에 뜬 연꽃'을 닮았다 하여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명당으로 불린다. 이는 풍수지리적으로 자손이 번창하고 부귀영화를 누릴 길지(吉地)로 여겨지는 지형을 의미하며, 마을 사람들이 수백 년 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이곳은 이러한 지형적 특성 때문에 래프팅 명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내도리의 가장 큰 볼거리는 단연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금강의 서정적인 풍경이다. 강변을 따라 천천히 산책하며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케어'다. 특히 늦가을부터 초봄까지는 강을 가로질러 놓이는 섶다리가 있다. 섶다리는 통나무, 소나무 가지, 흙 등으로 만드는 임시 다리로, 현대적인 다리와는 다른 옛 정취를 느끼게 해주는 특별한 볼거리이다. 오염되지 않은 금강모치와 반딧불이의 금강 산천의 겨울을 우리는 걸으며, 느끼며, 만끽하고 있다.
무주읍이 보인다. 무주읍(茂朱邑)은 무주군의 행정, 교통, 문화의 중심지이다. 남대천이 읍의 중심을 가로질러 흐르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 잡아 아늑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주군은 깨끗한 자연환경 덕분에 반딧불이 서식지로 유명하며, 무주읍은 이러한 청정 자연을 기반으로 한 관광의 시작점이 되는 곳이다.
무주읍으로 가는 길목에서 적상산(赤裳山)이 보인다. 적상산은 고려 말 최영 장군이 이곳을 지나다 산의 험준함에 놀라 "이 산은 천혜의 요새이니, 훗날兵亂(병란)이 있을 때 이곳에 성을 쌓고 사료를 비축하면 나라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사고(史庫)가 이곳에 지어졌다. 또한, 가을이 되면 산 전체가 붉은 단풍으로 물들어 마치 여인의 붉은 치마(赤裳)와 같다고 하여 적상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근처 설천면에는 반디랜드가 있다.
서울 강남 4구에서 반딧불을 볼 수 있을까? 문명의 이기와 물질문명의 첨단에서 살고 있으나 쌀을 쌀나무라고 하기도 하는 도시의 아이들이 어쩐지 짠하다. 반디랜드에는 반딧불이를 테마로 한 전시와 살아있는 곤충들을 직접 볼 수 있어 아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객이 몰린다. 지금도 이곳 무주에는 반딧불이가 산다.
무주읍의 중심을 흐르는 남대천이 맑다. 강변을 따라 산책로나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다. 무주의 전통시장 이름이 '반딧불시장'이다. 무주에서 나는 신선한 산나물, 버섯, 약재 등 지역 특산물을 구경하고 구매할 수 있다. 무주 전통 반딧불시장 이름만 들어도 정겹다. 시골 장터의 정겨움을 놓아두고 길꾼들은 천천히 걷는다.
덕유산 국립공원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덕유산국립공원은 무주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소이다. 웅장한 산세와 아름다운 자연경관, 무주구천동 계곡의 33경!
길꾼들은 이 역시 놓아두고 산, 강둑길을 돌아간다.
용포리(龍浦里)는 무주읍에 속한 마을이다. 남대천과 금강 본류가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 잡아 아름다운 강변 옆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이곳을 지난다. 비행기소리, 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용포리라는 이름에는 용(龍)과 관련된 전설이 깃들어 있다.
먼 옛날, 마을 앞을 흐르는 금강의 깊은 소(沼)에 용이 될 날만 기다리는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마침내 천 년의 기다림 끝에 이무기가 용으로 변해 하늘로 승천하려 하는데, 근처를 지나던 한 아낙이 그 광경을 보고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이 때문에 승천하던 용이 부정을 타서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그대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후 사람들은 '용이 살던 개(浦)' 또는 '용이 떨어진 개'라 하여 이곳을 용포(龍浦)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설천면 굴암리(雪川面 窟岩里)에 나제통문이 있다. 석굴처럼 생긴 이 통문(通門)을 경계로 동쪽은 신라, 서쪽은 백제의 땅이었다.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600년 이상 된 국경이어서 이 문을 경계로 전라도와 경상도 양쪽 지역의 사투리와 풍습에 큰 차이가 지금도 남아 있다. 문 동쪽(신라 땅, 현 무풍면)에서는 말끝에 '~했니껴?' 와 같은 경상도 방언의 흔적이, 문 서쪽(백제 땅, 현 설천면)에서는 '~했어유?' 같은 충청도 및 전라도 방언의 흔적이 섞여 나타난다. 무주구천동은 나제통문(제1경)을 시작으로 덕유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약 28km의 장대한 계곡이다. 맑은 계곡물과 기암괴석,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사시사철 절경을 이룬다.
일행은 나제통문과 무주구천동이 멀지 않은 둘레길을 걷는다. 물길과 청정한 산과 계곡이 좋아 무주구천동의 33경을 보지 않아도 상큼하다.
굴암리에서 용담호(龍潭湖)까지는 서울까지 돌아가는 스케줄상 전세버스로 간다.
전라북도 진안군에 위치한 용담호(龍潭湖)는 금강 상류에 용담댐이 건설되면서 생긴 거대한 인공 호수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물이 가득 차, 마치 여러 개의 섬이 떠 있는 바다처럼 느껴진다 하여 '내륙의 바다'로 불린다. 아침이면 피어오르는 물안개로 유명하다.
용담(龍潭)이라는 지명은 '용이 사는 깊은 못'이라는 뜻으로, 댐이 생기기 전 이곳에 원래 깊은 소(沼)가 있었다. 이 소의 전설 - 먼 옛날, 이 깊은 못에는 용이 되기를 꿈꾸는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이무기가 용으로 승천하기 위해서는 지나가는 사람 1,000명의 그림자를 봐야만 했다. 999명의 그림자를 보고 마지막 한 명만 기다리던 그때, 마침 근처 정자에서 쉬고 있던 한 선비가 잠에서 깨 기지개를 켜다가 이무기와 눈이 마주쳤다.
사람과 직접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부정을 탄 이무기는 결국 용이 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굳어 바위가 되었다.
용담호는 1개 읍, 5개 면, 68개 마을이 물에 잠기면서 고향을 떠나야 했던 실향민들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호수 바닥에는 지금도 옛 마을 터와 학교, 추억이 깃든 길이 그대로 잠겨 있다.
용담호가 생기고 나서 환경부가 국가수도정비계획에 진안군에 대한 용담댐 물 공급량 확대를 반영하기로 함에 따라, 댐 건설 20년 만에 2만 5천 진안 군민이 용담댐 물을 마시게 됐다.
용담호는 거대한 바다 같다. 환생한 이무기가 이곳에서 다시 용 되어 하늘을 오르는 꿈을 꿀 것이다.
그 바다를 배경으로 일행은 버스에 올라 서울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