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풍경 12

보름달과 고목나무

by 도린

어릴 적 우리 동네엔 600년이 넘은 고목나무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큰 회나무’라 불렀다.


나무 밑동은 깊게 움푹 패여 있어

비 오는 날이면 친구들과 그 속에 몸을 숨겼다.

빗방울 소리와 낄낄대는 웃음이 뒤섞이던

우리만의 아지트가 되어 주던 추억 속의 큰 나무!


그런데,어느 날,

그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철장이 둘러지고 더는 들어갈 수 없게 되자

동네엔 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 나무엔 혼백이 깃들어 귀신이 산다더라.”

특히 우리가 비를 피하던 움푹 팬 자리엔

귀신이 집을 짓고 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날 이후, 아무도 그곳에 가지 않았다. 우리는 더 이상 회나무 속 아지트에서 비를 피하지 않았다.

특히, 밤에는,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동네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하던 중,

계속 술래만 하던 나는

마침내 가위바위보에 이겼다.

숨죽이며 다짐했다.

이번만큼은, 절대 안 잡힌다.


나는 결국 철장을 넘었다.

귀신이 산다는 고목 속,

한때 우리만의 아지트였던 그곳으로.


친구들이 목청껏 나를 불렀지만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다

꼬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번쩍 눈을 떴을 때—

휘영청 보름달이 나무 위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시커먼 줄기마다

온갖 귀신들이 매달려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걸음아, 나 살려라!”


그날 내가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는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날 밤, 나는 축지법보다 더 빠른 날쌘돌이였다.


그 후로 나는

귀신과 함께한 아지트의 영웅담을 들려주는

동네 아이들 사이에

'전설의 뻥쟁이'가 되었다.


지금도,

휘영청 보름달이 떠오르는 밤이면


문득--

궁금해진다.


유년의 치기 어린 영웅이

아직도

큰 회나무 속 비밀 아지트에

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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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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