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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우 아빠 Oct 27. 2024

명상3 #무교인내가대만에서템플스테이라니

호흡 명상 3편


 2019년 가을 내가 가입한 생활 참선 동호회에서 대만을 다녀왔어. 낯선 외국으로 오로지 명상만을 위한 여행을 떠난거야. 대만에 입국한 날 저녁에 식사를 위해 야시장을 돌아본 것을 제외하면 다른 옵션은 아예 없었어. 앞서도 얘기했지만, 동호회는 친목이나 종교적인 성격을 배제하며 오직 모여서 순수하게 호흡을 통한 명상만을 추구하거든. 우리가 머무는 장소는 절이지만 그 어느 누구도 불교를 강요하지 않았어. 그래서 따라나섰지.


 우리가 찾아간 곳은 대만의 불광산사였어. 불광산사는 가오슝에 위치한 사찰로 1927년에 중국에서 태어난 성운스님이 대만으로 건너와 1967년에 세운 절이야. 이후 이 절은 대만에서 가장 큰 사찰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해(안내자에게서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확실한지는 모르겠어) 불광산사에는 부처 박물관, 불교 대학, 유치원, 호텔, 참선당을 포함하여 수백 명이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 등 규모가 큰 건물이 아주 많아. 그 규모가 우리나라의 절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어마어마 해. 큰 산 몇 개를 끌어안은 넓이로 각종 보살, 부처를 모신 건물과 찻집이 여러 지역에 나눠져 있어. 하루에 다 구경을 하기도 힘들정도야. 대만은 인구의 80%가 불교신자라고 하더라. 그 여력으로 불교가 초대형으로 거듭나며 다양한 구호활동과 함께 현재는 전 세계 불교를 이끈다고 해. 불광산사는 미국과 호주는 물론 중국과 아프리카까지 진출해 전 세계 173개국에서 조직을 운영 중이라고 하니 말 다했지.


 난 한국에서도 참여해보지 않은 템플스테이를 해외에서 처음으로 경험한 거야. 대만에도 다양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있더라구. 내가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최초의 한국인은 아니지만, 아마도 불교신자가 아닌 최초의 참여자가 아닌가 싶어.


 하루 일과는 새벽 5시에 시작해서 밤 10시에 끝났어. 핸드폰을 맡기고 데스크에서 나눠주는 옷을 입으면 본격적으로 일정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묵언의 시작이야. 서로 말을 해서는 안 돼. 옷은 회색으로 우리나라의 스님들 옷과 비슷한 색상인데 하의는 펑퍼짐하고 고무줄로 되어 있고, 상의는 옆 트임을 똑딱이 단추나 매듭으로 묶는 구조인데 앞, 뒤 천이 치마처럼 종아리까지 길게 내려와서 마치 소림사에 온 기분이었어.


 대부분의 일과는 명상으로써의 참선과 포행이라 일컫는 빠른 걷기가 다야. 참선은 오전에 4번, 오후에 5번이며, 앉아 있는 시간은 20분부터 50분까지 다양한데, 하루에 참선은 총 305분이었어. 시간으로 계산하면 5시간 정도지. 참선 자리에는 고동색의 방석이 깔려 있으며, 엉덩이 쪽에 상체를 높여주는 고동색 쿠션이 한 개, 그리고 무릎을 보호하기 위한 비치 타월 크기의 황토색 수건이 오른쪽에 놓여있어. 이곳에서는 습기 때문인지, 아니면 에어컨 냉기 때문인지 참선 때마다 수건으로 하체를 덮어주더라구. 포행은 참선으로 굳은 몸을 풀어주고 활기를 넣어줬는데, 그것도 일종의 명상이 아닌가 싶어. 





 식사는 6시 30분, 11시 30분, 18시에 해. 식당은 참선당에서 200m 정도 떨어져 있는데, 군대의 훈련병처럼 2열 종대로 줄을 맞춰서 걸어 가. 식기는 둥그런 밥그릇 하나, 국그릇 하나, 성인 남자의 손바닥 정도되는 크기의 기다랗고 넓적한 반찬그릇 하나 그리고 젓가락이 전부야. 반찬은 주로 간이 거의 없는 초록색 야채나 버섯 볶음, 양념이 밴 콩고기 혹은 두부 종류가 대부분이고. 밥은 주로 흰밥인데, 아침에는 흰 죽이 나올 때도 있고, 국은 자극적이지 않은 야채국이 대부분이야.


 식사시간에도 소리를 내지 않고 밥을 먹어.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사람들과 스님들 그리고 다른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로 보이는 수백 명이 함께 식사를 하는데 젓가락이 부딪치는 작은 소리만 식당을 채우는데 참 독특한 광경이었어. 밥이나 반찬을 더 먹고 싶으면 그릇을 앞으로 내밀면 되고, 음식의 양은 고갯짓이나 젓가락으로 가리켜서 소통해. 음식을 조금이라도 남기면 다 먹으라고 채근을 당하니 무조건 비워야 해.


 식사를 마치면 1시간 정도의 휴식 시간이 주어져. 그 시간에는 씻거나 빨래를 하거나 낮잠을 청하지. 8시 10분과 15시 10분에는 차 시간인데 주로 오룡차나 보이차류를 마셔. 140명 정도 되는 인원이 다 함께 차를 마시는데, 여러 번 참선에 참여한 선배들이 담당자가 되어 찻잔을 나눠주고 차를 따라 준다고 해. 차도 컵을 앞으로 내밀면 더 따라주고 다 마시면 안쪽으로 당겨 놓으면 돼. 개인적으로 차를 좋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마셨어. 그 시간이 난 가장 즐거웠어. 차 시간에는 주로 스님들의 법문이 이어지는데. 한국에서 간 일행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으니 그때도 명상 시간이나 다름없었지. 그 외의 일과로는 울력이라고 부르는 봉사활동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청소가 많고, 참여한 횟수에 따라서 전문적인 다른 일이 주어진다고 해.





 템플스테이가 전부 끝나고 느낀 점은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한다는 수신(修身)에 대한 관점의 변화였어. 그전까지 호흡 명상을 하면서 명상은 가부좌를 하면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그 생각이 대만의 템플스테이 참가로 완전히 깨졌어. 140여 명이 넘는 사람 중에서 안정된 자세가 돋보였던 중년의 여성 한 명 때문이었지.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횟수가 많았는지, 내공이 높았는지, 다른 사람이 포행과 휴식시간을 가질 때도 그녀는 반듯하게 앉은 가부좌 자세를 풀지 않았어. 누구보다 오래 명상에 빠져 있었지. 참선을 할 때 다른 사람과 똑같이 허리를 펴고 턱을 당긴 자세였지만 그분이 가진 몸의 선은 아주 달랐어. 나중에 얘기해 보니 나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같이 참여한 일행은 모두 그분의 자세에 감동했더라구. 세상에나 앉아있는 자세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니.


 그런데 내 관점이 크게 요동친 순간은 첫 감동의 시간 그 이후였어. 그 여성 분이 참선을 하지 않았을 때의 태도가 내 인식을 크게 흔들었어. 모든 일정이 끝나는 마지막은  방석 없이 딱딱한 바닥에 앉아 주지 스님으로부터 질의응답을 듣는 시간이었어. 많은 사람들이 한숨을 돌리며 느긋하게 등이 곡선으로 바뀌며 쉬는 시간에도 그녀의 몸은 꼿꼿했고 다리는 점잖게 발의 앞부분부터 모아져 있었으며 두 손은 얌전하고 가지런했지. 40여분 정도 진행된 주지스님과의 질의응답 시간에 나는 딱딱한 바닥이 불편해서 5분에 한 번씩 자세를 바꾸며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그녀는 한 치의 미동도 없는 완벽한 가부좌 자세를 유지하더라구. 내 시선은 수시로 그녀의 오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녀가 잠시라도 움직이는 순간을 잡아내지 못했어. 난 그녀를 보면서 3일 동안의 참선 시간에는 얻지 못했던 수련에 대한 진실과 마주쳤지.


 그녀로 인해 난 작은 깨달음을 얻었어. 내 옆으로 계단을 빨리 오르면서도 전혀 발자국 소리가 안 나던 작은 스님이 생각났어. 포행을 할 때, 꽤 빠른 속도로 걸으면서도 발꿈치가 닿는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았던 모든 스님들의 발걸음이 떠올랐어. 걸을 때마다 그들처럼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해 봤지만 쉽게 되는 게 아니더라구. 왜 스님들이 식당에서 의자를 빼거나 넣을 때도 소리가 안 나도록 조심스럽게 행동을 했는지, 왜 비슷한 양의 밥인데 먹는 속도가 빨랐는지 알게 되었지.


 '진정한 수신은 정해진 때가 없는 것이구나. 바른 행실과 마음은 늘 깨어 있어야 하는구나.' 마찬가지로  명상도 정해 놓고 하는 게 아니었던 거지. 옳은 일을 택하고, 마음을 닦는 일은 발심이나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이 중요한 게 아니었어. 평상시에 사소한 것 하나부터 조심하는 습관이 바로 명상이고, 수신임을 배우게 된 거야. 나의 가장 작은 행위조차 신경 쓰지 못하는 명상과 수신은 헛수고가 아닌가 생각됐어.


 명상의 경지란 일상의 매 순간을 고요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태도의 실천 같아. 그게 바로 현재에 산다는 얘기가 아닐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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