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년."
엄마와 나의 전쟁을 알리는 첫 대사는 늘 이런 식이었다. 엄마가 내게 독한 년이라고 부르는 순간은 단순했다. 말문이 막힐 때, 또는 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말임을 알기 때문이다. 저 한마디의 단어로 우리의 싸움은 종결되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학교 가방을 챙기고, 엄마의 아침상을 거부한 채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왔다.
오전 7시, 빽빽한 도로 위의 자동차들, 분주히 이동하는 사람들, 그리고 아침의 시작을 알리는 새들의 지저귐으로 세상은 이미 정신없는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서울로 상경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내게 이 모든 광경은 여전히 낯설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집에서 나온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빠르게 걷는 사람들의 어깨에 치여 벌써부터 어깨뼈가 아파오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늘 같은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회색 통 넓은 긴 바지에 마치 형의 옷을 물려받은 것처럼 커 보이는 흰색 하복 반팔 와이셔츠를 입은 그의 모습이었다. 그 순간 반대편 차로에서 76번 버스가 가까워지고 그는 그렇게 사라졌다. 76번…
전학 온 지 이틀 차, 나는 단지 이란성쌍둥이라는 이유로 온 전교생들의 관심사였다. 내 이름은 최다지. 사실 그들이 관심이 있는 건, 내가 아닌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듯한 나의 이란성 쌍둥이자, 나의 언니인 최다혜였다. 우린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달랐다. 생김새부터, 성격, 음식, 노래, 옷의 취향, 그리고 성적 마저도. 모든 것이 완벽해 접근하기 어려워 보이는 언니에 비해, 친숙해 보이는 나에게 사람들은 언니와 나의 관계에 대해, 더 나아가 언니에게 관심 있는 남학생들은 노골적으로 언니의 사생활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너네 진짜 쌍둥이 맞아?”
“응.”
그러자 똑 잘린 단발머리에 꼬리 빚으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앞머리를 정리하며 한 여학생이 불쑥 나타나,
“너는 다혜한테 자격지심 가져본 적 없어?”라는 무례한 질문을 했다.
“응. 없어.”
나는 결코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을 것이다.
버스정류장에서 보았던 남학생과는 다르게 딱 달라붙는 바지를 입은 남학생들은 호들갑을 떨며 언니에 대한 질문을 시작했다.
“다지야! 다혜 남자 친구는 있어?” 또는 “너 혹시 다혜 이상형이 어떤 남자인지 알아?”
똑같다. 그들은 다혜와 내가 쌍둥이라는 사실을 안 이후로 남학생들에게 수천번은 받았던 진부한 질문들을 던져대기 시작했다.
교실문이 드르륵 열리고, 때마침 나의 구세주이자 학생들이 짝퉁 조용필이라고 줄여서 ‘짝조’라고 불리는 담임선생님이 들어왔다. 내 주위에 몰려있었던 학생들은 각자의 자리로 뿔뿔이 흩어지고, 그렇게 나는 이 교실 안에서 늘 그렇듯 최다지가 아닌 최다혜의 동생 최다지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언니는 내게 학교 생활이 어떻냐고 물었다. 서울 가시나들 온실 속의 화초같이 자란 것 같다며, 높은 빌딩과 자동차 매연으로 가득한 도시보다는 논과 밭 그리고 할머니가 있는 고향이 그립다며 시무룩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서울 와서 한 가지 좋은 점은 엄마 아빠와 같이 살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언니야 말로 엄마 아빠의 온실 속의 화초다. 서울 가시나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말이다. 언니의 투정을 들어주다 보니 도착한 곳은 그가 늘 탔던 버스 정류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