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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u Ming Nov 20. 2024

판다로 태어나련다.

기회가 된다면 용인에 있는 에버랜드의 판다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아마도 온 국민이 나의 탄생에 환호하며 기뻐할 겁니다.

그리고 나는 그저 배가 고파서 대나무를 먹는 것뿐인데 사람들은 나를 향해 귀엽다며 연신 카메라를 눌러댈 겁니다. 사람들은 내가 느릿느릿 움직이는 모습조차 귀엽다며 웃겠지만, 정작 나는 '먹고 자는 게 일이야!'라고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렇게 무책임하게 귀여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자부심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내가 할 일은 먹는 것, 자는 것뿐이지만 사람들은 올해도 나에게 최고의 동물 상을 줄 것이 분명합니다.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자고 싶은 만큼 잘 겁니다.

내가 판다가 된다면, 오늘과 내일의 경계 따위는 사라질 겁니다. 대나무만 있으면 하루는 충분히 행복하니까요. 더 이상 지금처럼 칼로리 걱정에 많이 먹지 못하고, 출근 걱정에 새벽 6시에 버스를 향해 전력질주하는 일과는 이별입니다. 


더 이상 낮과 밤을 구분하지 않아도 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도 됩니다. 내가 자고 있지 않으면 어쩌면 편안한 노래와 더불어 푹신한 보금자리를 사육사들이 만들어줄 겁니다. 나는 손도 까딱하지 않고 먹고 자면 되는 겁니다. 


나는 신선한 대나무를 입 안에 넣으면 ‘아삭’ 하는 소리와 함께 달콤 쌉싸름한 맛을 즐길 것입니다. 햇볕이 내 등을 따뜻하게 데우면 졸음이 스르르 몰려올 것이고,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은 마치 부드러운 손길처럼 나를 쓰다듬어주겠죠. 


기회가 된다면 중국의 판다 친구들에게도 방문할 겁니다. 

나와 똑같은 마음 편한 판다들과 울창한 대나무 숲에 앉아 하루 종일 대나무만 먹을 생각입니다. 눈앞엔 오직 울창한 녹색 대나무와 검은색, 흰색의 친구들로 가득 차 있을 겁니다. 대나무는 충분할 것이고 우리는 배부르면 잠 들뿐, 서로를 미워할 일은 상상할 수 없을 겁니다. 아마 우린 서로에게 관심조차 없을지도 몰라요. 서로가 서로를 헤친다는 것은 더욱 상상할 수 없는 일일 겁니다. 



나는 나를 더욱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내 까만 눈과 인형처럼 붙어 있는 두 개의 까만 귀일 겁니다. 나 스스로도 내가 너무 귀여워서 아마 거울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될 것이에요. 지금은 판다를 만져볼 기회가 없지만, 판다가 되면 내 눈과 귀가 정말 인형처럼 생겼는지 직접 확인해 볼 생각입니다.


아마도 나무 위에 축 늘어져 몇 달이고 잠에 들다 보면, 아마도 지금의 걱정들은 기억도 나지 않을 겁니다. 

가끔은 내 더러운 엉덩이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창피하겠지만, 몇 달 동안 걱정 없이 잠만 자고 난 후에는 어쩌면 그런 것들은 개의치도 않을지 모릅니다. 나는 대나무를 껌처럼 되새기며, 내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진짜 판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나는 대나무를 씹으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진짜 행복이란 뭘까? 그냥 먹고 자는 건가, 아니면 지금처럼 치열하게 살아가는 건가?’ 그러나 다시 대나무 한 입을 베어 물고 나면, 그런 고민은 사라질 것입니다. 아마도 내가 판다로서 완벽하게 적응했다는 증거겠죠.


기회가 된다면 용인에 있는 에버랜드의 판다로 다시 태어나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과감히 제 귀를 만져보세요.


당신은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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