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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u Ming Dec 04. 2024

호갱노노를 비웃는 비버로 태어나련다.

*본 글은 브런치북으로 본래 발행하고자 하였으나, 실수가 있어 재발행하니 양해 부탁 드립니다.


기회가 되면 호갱노노를 비웃는 비버로 태어나겠습니다.


나는 집 짓기의 달인, 비버로 태어날 계획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다시는 부동산 가격을 확인하는 '호갱노노' 따위는 쳐다보 않아도 될 것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우리 집은 얼마인지, 또 내가 당근 중고 거래를 했던 어제 그 집은 얼마였는지, 그리고 내가 이사 가고 싶은 집의 시세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 꼭 알아야 하지만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정보들로부터 해방 수 있을 것입니다.


'호갱노노'가 나쁜가요?

아니요, 그럴 리가요.

개인적으로 호갱노노의 가장 큰 단점을 굳이 꼽자면 과하게 친절하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도 모든 것을 비교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호갱노노는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친절함으로 모든 집을 숫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성적표처럼 온천하에 공개하고 있죠.


저는 꼴등도 아니지만 상위권등도 아닌 우리 집의 성적표를 바라보며 안도해야 할지 아니면 조급해져야 할지, 그것도 아니면 남들에게 조금은 부자연스러워 보일지라도 무관심한 미소로 일관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우리 집의 추억그리고 우리 가족들의 노력은

가격으로 매겨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이 친절함은 그만 멈춰줘!"

라고 외치고 싶지만, 이는 어설픈 변명으로 들리겠죠...


물론 저도 평소에는 집 값이 오르든 말든 굳이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다만 이사를 고민하는 시기에는, 개인적으로 비교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고 또 처절하게 모든 것들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습다. 이럴 때면 밀려오는 허탈함과 조급함은, 검은 그림자가 되어 나와 사랑하는 아내의 머리를 지끈지끈하게 만곤 합니다.


이런 것 들! 지긋지긋합니다.

나는 비버로 다시 태어나기로 결정했습니다.


비버가 되면 행복한 일들만 가득할 겁니다.

이런 불필요한 일들에 나의 소중한 시간을 쓰거나 감정을 허비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우리 가족이 살 집 정도는

나의 손으로 '직접 뚝딱' 지으면 될 테니까요.



비버로 태어나길 잘했습니다.


설치류는 처음이라 어색할 것 같았지만, 나의 생김새가 꽤나 마음에 듭니다. 비버인 나의 가 만든 우리 집에 비록 거울은 없지만 물가에 비친 내 모습이 꽤나 귀여워서 혼자 있을 때면 여러 가지 표정을 지어보고 있습니다.



하나 더 마음에 드는 , 누구든 우리 집에 들어오려면 수영을 할 줄 알아야 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나는 인간일 때도 수영을 참 좋아했기에, 언제든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건 나에게 큰 행운입니다. 또, 우리 가족만 알고 있는 비밀 통로는 비록 비좁고 찾기 어렵지만, 우리가 한 가족, 한 팀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만듭니다. 밤이 되면 칠흑같이 어두워져서, 비록 앞은 잘 보이지 않지만 우리 비버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서 털을 맞닿아 엎드려 누우면, 우리 집은 금세 세계 최고의 따뜻한 보금자리 변합니다.




아빠 비버가 자꾸 집 짓는 일을 도우라고 합니다.


누가 우리 아빠 좀 말려주세요.

아빠 비버는 우리 집을 더 크고 단단하게 지어야 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내가 살 집은 스스로 지어야 한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강합니다. 털 정리도 해야 하고 형제들과 수영 시합도 하며 신나게 놀고 싶지만, 아빠 비버는 집 보수를 도울 수 있을 정도로 커버린 우리를 가만 둘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빠는 리가 말을 듣건 말건, 쉬지 않고 성실하게 나뭇가지를 우리 집 위에 스스로 올려 두며 집을 보수한 다는 점입니다. 이미 우리 집은 집체만 한 곰이 그 를 지나가도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크고 단단해졌는데... 아빠가 생각하는 비버 집은 아무래도 베르사유 궁전이나 만리장성인 것 같습니다.


나도 설마 아빠처럼 되진 않겠죠?

그건 너무 끔찍합니다. '나는 호갱노노가 싫어서 비버를 선택한 거라고요.'라고 생각하며, 아빠를 바라보니 아빠의 등에 진흙이 잔뜩 묻어 있습니다. 비버로 태어나면 더 이상 집에 얽매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비버의 삶도 집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아빠는 집이 아무리 단단해도 멈추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집이 커지고 단단해질수록, 우리 가족의 삶도 그만큼 안정될 거라는 믿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본능이 소리칩니다. "집을 지어, 더 크게!"


"우두득우두득"

어느새 아빠 비버가 된 나는 당당히 뻗은 앞니로 커다란 나무를 갉아내고 잔가지들을 모아 집을 키워 나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면, 나는 신이 나고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는 아빠를 닮았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난다고 했던 인간의 속담이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도 같습니다.

 

사람들은 'Busy as a beaver' 라며 나의 성실함을 인정하더군요.

사람들이 나의 집을 보며 꽤나 부러운 듯 고개를 흔드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말이지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들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나와 같이 스스로 이렇게 멋진 집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의 하루는 정신없이 바쁩니다.

커다라 나무를 쓰러뜨리기 위해 이로 갉아내야 하고, 또 잔가지나 인간들이 숲에 버린 쓰레기를 보면  바쁘게 우리 집에 물어서 가져다 놔야 합니다.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아빠 비버들이 우리 집보다 훌륭한 집을 지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에 멈출 수가 없습니다. 조급한 마음에 놀고 있는 자식들에게 도와달라고도 말해봤지만, 이 녀석들은 털을 정리하거나 수영 시합을 하느라 정신이 없, 집에는 조금의 관심 없어 보입니다.


"쯧쯧... 이 최고인걸, 저런 철없는 녀석들"


나는 스스로 한 말에 깜짝 놀라고는 맙니다.

집에 목매는 것이 싫어서 비버가 되고자 했던 것인데, 왜 인간일 때 보다 더 집에 집착하고 있을까본능에 따랐을 뿐인데 그 본능이 집 대한 집착이었다니... 너무 어리석었군요.



이왕 이렇게 된 것, 우리 집도 호갱노노에 올려보고 싶습니다.


우리 집을 호갱노노에 올려 공정히 평가받아보고 싶습니다.
인간들이 힘을 합쳐 간신히 지은 바보 같은 모양로 네모나게 생긴 은 집과, 나의 예술작품을 경쟁시켜보고 싶습니다. 물론 결과는 자명하겠죠. 인간일 때는 인정받지 못지만, 우리 집은 강남 아파트로 인정받을 것이라 니다.


나는 호갱노노를 비웃는 비버가 되고 싶어 비버로 다시 태어났지만, 비버의 삶은 왠지 사람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인간의 삶처럼 다른 사람과 스스로를 비교하지도 혹은 남들에게 비교의 대상이 된 것도 아니었으니 절반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의 삶도 비버의 삶도 집 때문에 적지 않게 고생을 하고 보니, 이제야 집보다 더 귀한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소중한 집 안에 살고 있는 더욱 소중한 나의 가족들입니다. 


강가 건너 편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물속에서 서로 장난을 치고, 아내는 밝은 웃음으로 나를 부르고 있습니다.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집이 아니라, 이 순간의 웃음과 따뜻함이야말로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작은 집에서라도

서로의 살을 맞대고 우리 가족을 마음껏 사랑해야겠습니다.


여러분의 진짜 보금자리는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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