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와 책임감
저녁 메뉴는 아내가 가끔 해주던 카레로 정했다.
늘 담백하게 끓여주던 그 카레.
이번엔 내가 해보기로 했다.
레시피는 블로그에서 꼼꼼히 확인하고 준비물도 빠짐없이 챙겼다.
감자 두 개, 당근 한 개, 양파 한 개, 양배추 적당량, 그리고 기름기 없는 돼지 안심살 200g.
무엇보다 중요한 건, 순한 맛 카레 한 봉지.
우리 가족은 매운 걸 잘 못 먹는다.
욕심이 앞섰다.
쌀을 씻으며 나온 쌀뜨물을 찜솥에 붓고, 멸치와 다시마를 넣어 육수를 냈다.
다시마를 건져내고 있으니 아내가 한마디 건넨다.
“빨리 익는 건 나중에 넣어야 해.”
고기와 감자, 당근을 깍둑썰기해서 넣고 먼저 익혔다.
뒤이어 양파와 양배추도 같은 크기로 썰어 넣었다.
그런데 찜솥이 가득 찼다. 이렇게 많을 줄이야.
레시피는 분명 4인분인데, 솥이 작아서일까.
야들야들해진 양배추 사이로 국물이 보이기 시작하자,
카레 가루를 그대로 넣었다.
멀찍이서 지켜보던 아내가 말했다.
“물에 먼저 풀어야 엉기지 않는데…”
이미 넣어버린 걸 어쩌랴.
나무 주걱 두 개로 정신없이 저었다.
카레가 넘칠까 봐 조심조심.
“처음엔 센 불로, 나중엔 약불에서 뭉근하게 졸여.”
아내의 조언을 되새기며 계속 저었다.
엉긴 가루는 없었다.
하지만 바닥이 자꾸 들러붙는 느낌.
“여보, 카레 바닥이 타는 것 같아.”
“그럼 뚜껑 덮고 약불로 그냥 둬.”
그래도 불안해서 1분 간격으로 계속 저었다.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30분쯤 지나자 양파와 양배추는 자취를 감췄고,
적당히 걸쭉한 국물 사이로 알맞게 익은 건더기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사 먹는 카레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진하고 깊었다.
내심 뿌듯했다. 처음치곤 괜찮았다.
밥은 갓 지은 걸로, 먹고 싶은 만큼 자율 배식.
“식당보다 낫다”며 아내와 딸의 칭찬이 쏟아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4인분이라더니 셋이 먹고도 반 넘게 남았다.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고로.
다음날 아침, 카레를 내놓긴 뭣해 점심을 기다렸다.
다시 끓이고, 이번엔 라면 사리를 삶아 카레 파스타를 만들었다.
기똥찼다.
하지만 딸은 조금 먹다 말고 “아빠, 라면 하나만 끓여줘.”
그 말을 들으며 남은 카레파스타는 내가 처리했다.
그런데도 또 남았다.
다시 냉장고.
그다음 날에도,
다시 꺼내 데우고, 식탁에 김치와 함께 올렸다.
딸은 말했다.
“아빠, 오늘 카레 안 먹으면 안 돼?”
결국 딸은 냉면을 시켜 먹고, 아내와 나는 또 카레.
그리고 또 남았다.
나는 다짐했다.
다음부터는, 한 끼만 먹을 만큼만 만들자.
그렇게 나는 5일 동안 책임감 있게 카레를 다 먹었다.
카레는 맛있었다.
다만…5일 동안 먹었을 뿐.
이제 된장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