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밥 짓는 남자의 고민(2)

퇴임과 함께 받은 아내의 선물

by 허정호

퇴임과 함께 받은 아내의 선물


나는 퇴임식에서 아내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직장에서 받은 수많은 표창장이나 공로장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종이 한 장.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친구 같은 옆지기 아내의 감사장 (2019년 7월)”

위 사람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내리쬐는 햇살도 아랑곳 않고

묵묵히 32년간 성실히 근무하여

영광스러운 퇴임까지 무탈하게 잘 와 주어

이에 이 감사장을 전달합니다.

내보다 더 내편씨~~

그 언젠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날까지 두 손 꼭 잡고 하고 싶은 일들 하며

알콩달콩 라온부부로 더 많이 사랑하며 살아요~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아들이 준비한 영상이 상영되었다.

내가 살아온 60년을 담은 사진과 영상들.

한 장 한 장, 한 컷 한 컷이 내 삶을 되짚어 주었다.

'그래도 내가 잘 살아왔구나.'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이 들며

찡한 마음이 온몸을 타고 올라왔고,

곁에 있는 아내와 아들, 딸,

소중한 가족들이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영상에서

아내는 나에게 프라이팬을 선물했다.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그건 퇴임 기념이자 선언이었다.

“이제 주방은 당신 차지예요.”

나는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그 프라이팬을 받았다.

하루가 텅 비어 있는 시간들.

넘쳐흐르는 시간들.

삼시 세끼를 책임지는 일,

그게 나의 새로운 도전이 되었다.

처음엔 쉽게 생각했다.

“뭐 별거 있겠나. 그냥 해 보지 뭐.”

처음 며칠은 오히려 재미있었다.

시간도 잘 가고,

어디선가 봤던 레시피를 흉내 내며 요리하는 것도 꽤 그럴싸했다.

하지만 곧, 현실이 따라왔다.

밥 먹고 돌아서면 또 밥 할 시간.

하루 세 끼는 끝이 없었다.

무엇을 해 먹어야 하나 고민이 생겼고,

어떤 날은 ‘내가 왜 프라이팬을 그렇게 쉽게 받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신경질이 날 때도 있었다.

아내는 주방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내가 해주는 대로 잘 먹었다.

간혹 칭찬도 한다. “오늘은 괜찮네~”라는 말로.

그런데 그런 단순한 반응조차도

어느새 나를 조금씩 부드럽게 만들었다.

나도 점차 익숙해졌다.

장도 혼자 보고, 레시피도 찾아보고,

때로는 한 끼는 밖에서 먹자며 아내를 유도하기도 했다.

나의 삼시세끼,

이제는 내 하루의 리듬이 되었다.

아내로부터 받은 감사장 한 장과 프라이팬 하나.

그 두 가지는 퇴임 이후 내 인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쉬는 삶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새로운 ‘근무 시간표’를 가진 삶으로.

그렇다고 싫은가?

아니.

조금 힘들고, 가끔 짜증도 나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다.

내 편이 여전히 곁에 있으니까.

프라이팬을 쥐고도,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옆지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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