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한 데 모여 있다. 이들을 뭐라고 부르면 될까?"
정답은 '모른다'입니다. 이들이 어떤 모양새로 모였는지에 따라 다양하게 불릴 수 있기 때문이죠. 집단, 단체, 조직, 공동체 등등... 2인 이상의 사람들이 모였을 때 이를 지칭하는 단어는 많습니다. 그 모임의 특성에 따라 달리 불릴 수 있는데요.
그럼 기업은 어떤 것으로 불릴까요? 주로 '조직'으로 불립니다. 조직문화, 조직 구조, 조직 구성원 등등... 기업과 관련된 것들은 주로 조직으로 칭해지죠. 조직이라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조직과 조직 아닌 것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이와 관련해 먼저 질문드립니다. 다음 중 하나는 조직에 해당하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조직일까요?
- 폭력배
- 같은 열차 칸에 탄 사람들
전자는 조직이고, 후자는 조직이 아닙니다. 무슨 차이일까요? 이들을 가르는 것은 바로 '목적'의 유무입니다. 붕어빵에 팥이 있어야 하듯, 조직에는 당연스럽게도 목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조직이론의 아버지로 불리는 체스터 버나드도 조직의 성립 조건으로 '목적'을 꼽았습니다. 또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구성원들의 협력 의지와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고 했죠. 구성원들이 목적을 향해 함께 나아갈 때 비로소 그것을 조직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폭력배는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고 이를 위해 협력합니다. 그들이 선한 목적으로 모였든 아니든 조직으로 볼 수 있는 거죠. 조직의 또 다른 대표적 예로 신체의 장기를 들 수 있는데요. 심장, 폐, 간 등의 신체 조직들은 특정한 기능을 하기 위해 모인 세포 조직이죠. 조직의 기능을 이해하는 친숙한 예입니다. 반면 지하철에 모인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우연히 모였다가 흩어지는 존재일 뿐입니다. 함께 달성해야 할 목적이 부재한 집단인 것이죠.
조직 보다 더 목적과 이념에 강하게 똘똘하게 뭉친 모임이 바로 '공동체'입니다. 가정은 주로 '가정 공동체'로 불립니다. '가정 집단'이나 '가정 조직'이라고는 잘 불리지 않죠. 집단이나 단체가 개개인의 특징이나 의견 보다는 힘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데 반해, 공동체에서는 구성원 개개인이 중요하고 목적과 이념으로 강하게 묶여 있다는 데 차이가 있습니다.
목적과 관련된 베스트셀러인데요. <목적이 이끄는 삶>은 종교 서적 임에도 4000만부 이상 팔린 세계적 베스트셀러입니다. 그만큼 목적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는 의미겠지요. 이 책에 따르면 '참된 삶'과 '그저 그런 삶'을 나누는 기준이 바로 '목적'입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직 다운 조직'과 '조직 답지 못한 조직'을 나누는 기준도 바로 '목적'입니다. 삶의 경영에 무엇보다 목적이 중요하듯, 기업의 경영에도 무엇보다 목적이 바로 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저 원론적이고 당위론적 차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로 목적을 중심으로 경영하는 기업들은 여러 면에서 더 높은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 연구에서는 전통적인 전략 경영을 하는 기업의 연간 자기자본이익률(ROE) 성장률이 4.12%인데 비해, 목적 중심의 경영을 하는 기업은 13.7%의 성장률을 보였습니다. 이는 재무적으로 굉장히 유효한 차이입니다. 또 목적 중심의 경영은 재무적 성과 뿐 아니라 인재 경영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맥킨지 조사에 따르면 일반 기업에 비해 목적 중심의 경영을 하는 기업에서 구성원의 몰입도는 4배 이상 높고, 이에 반해 이직률은 절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왜 목적에 충실하면 성과가 좋은 걸까요?
첫째, 바로 목적이 구심점이 되어 결집된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목적이 제대로 서지 않은 기업은 매번 일회적인 돌파구를 찾느라 방향을 잃고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죠. 반면 목적에 충실한 기업은 목적이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어 일관성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목적을 중심으로 제품, 서비스, 광고, 조직문화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조직 전체가 같은 방향으로 협력하게 됩니다. 특히 지금과 같은 VUCA(변동적이고, 불확실하며, 복잡하고, 모호한) 시대에 목적은 나침반과 앵커 역할을 해줍니다.
둘째, 조직의 목적은 구성원에게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일께워 줍니다. 그래서 구성원들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참여자가 되어 열정을 바칠 수 있게 합니다. 더 나아가 조직의 목적과 구성원의 목적이 교집합을 가지고 연계될 때 강력한 에너지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셋째, 기업은 목적을 통해 소비자의 공감과 지지, 나아가 충성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소비자는 심지어 그 기업의 강렬한 팬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의미를 중시하는 '가치 소비'가 떠오르면서 목적 중심 경영은 더 힘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MZ세대 6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MZ세대의 71%는 가격과 조건이 같다면 친환경활동 기업의 제품을 고르겠다고 답변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진행한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60%는 자신의 소비 가치관에 부합한다면 심지어 가격이 높아도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얼마 전 기업의 목적에 지각변동이 생겼습니다. 미국 200대 대기업 협의체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이 기업의 목적을 변경했다고 발표한 것인데요. 무려 4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경영계에는 떠들석했습니다. 그 전까지 기업의 존재 목적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윤의 극대화'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목적을 실현함으로써 이윤은 따라오게 한다.' 애플의 팀 국,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GM의 메리 배라 등 181명의 CEO가 이 새로운 목적에 서명했죠.
이는 기업들의 비즈니스 근본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간 기업의 존재 목적은 소위 '있어보이는 원대하고 거창한 것'으로서 홈페이지에나 존재하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존재 목적이 실제로 비즈니스의 중심으로 들어와야 됨을 의미합니다. 목적이 조직 전반에 녹아들어져 가치 사슬 전반에 걸쳐 운영되어야 하는 것이죠.
미래의 기업은 점점 더 조직을 넘어 목적과 이념을 중심으로 강하게 묶인 공동체화 될 것입니다. 기업이 숭고한 목적, 사회적 가치를 제시하면 이를 공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공동체와 같은 조직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비록 미래의 조직이 물리적으로는 느슨하게 묶이는 형태가 될 수 있어도, 이념적으로는 강하게 공감하는 집단이 될 것입니다.
조직의 목적은 조직 뿐 아니라 그 개개인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조직원들의 행복과도 깊숙히 연관이 되죠.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2가지 종류로 구분했는데요. '순간적 쾌락' 중심의 '헤도니아(Hedonia)'와 '목적, 의미' 중심의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입니다. 물론 그가 말한 진정한 행복은 후자죠. 이는 개개인의 독특한 재능, 즉 탁월성(Arete)를 발휘하며 목적에 점점 가까워질 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목적 중심의 기업에서는 구성원이 각자의 재능을 발현하며 조금씩 목적에 가까워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조직이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또 구성원이 일체감을 가지고 이를 추구할 때, 그 조직은 에우다이모니아 넘치는 곳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최고의 행복, 에우다이모니아.
목적이 이끄는 기업은 이를 가능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