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포花菖蒲
“어느덧 백화(百花)가 제가끔 아름다움을 겨누던 봄도 가버리고 음습(陰濕)한 장마철에 접어들면 녹음이 우거진 연못가에 꽃창포가 피어 물에 비쳐서 어른거린다. 정녕코 꽃창포는 六월의 상징이며, 또한 동양적인 풍류를 듬뿍 지닌 꽃이라 하겠다.”*
6월 15일 오후에 꽃창포를 찾아서 율동공원으로 향했다. 저녁 무렵부터 장맛비 소식이 있는 날이었다. 페이스북에서 율동공원의 꽃창포가 피었다는 소식을 보자마자, 비가 내리기 전에 가 봐야지 하면서 달려간 것이다. 저수지 북쪽의 습지에 피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갈대와 줄, 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만 보이고 꽃은 보이지 않았다. 번지점프장이 있는 오른쪽으로 돌아볼까 하다가 발길 닿는데로 왼쪽으로 돌기로 했다. 한참 걸어서 저수지 제방 근처까지 가서야 학수고대하던 꽃이 핀 꽃창포 한 촉을 만났다. 그 옆에는 꽃이 지고 있는 꽃창포 한 촉도 있다. 사진으로 담고 나니 마음이 흡족하다.
제방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물 가에 꽃창포 여러 떨기가 보였다. 꽃은 이미 지고 있었다. 꽃창포는 주로 저수지 제방 근처에 있나보다 생각했다. 비가 내릴지도 몰라서 저수지 가로 심어진 큰금계국 꽃이며 훌쩍 자라버린 갈대를 보면서, 이제 꽃창포는 없겠거니 생각하면서 주차장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저수지 북쪽 습지 가까운 곳에 이르렀을 때, 풍성하게 꽃이 핀 꽃창포 한떨기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정말이지 “동양적인 풍류를 듬쁙 지닌” 꽃창포가 저수지 가에 피어서 물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지금껏 몇 차례 꽃창포 꽃을 보았지만, 이렇게나 풍성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처음이었다. 애초에 오른쪽으로 저수지를 돌기 시작했으면 금방 만났을 것인데, 오히려 한 시간 가량 걸어 저수지를 한바퀴 거의 다 돈 후에 만나서 더 아름답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꽃창포 꽃을 제대로 감상했다. 무어라 묘사해야 할 지 몰라서, 원예가 최영전이 꽃창포를 찬미한 글을 인용한다.
“오월의 푸른 하늘 아래 깎은 듯이 날씬한 칼과 같은 잎에 싸여 훈풍에 하느적거리는 창포꽃은 초여름 늪가의 상징으로서 초연한 아름다움이 있다.”**
꽃창포(Iris ensata var. spontanea)는 6~7월에 피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붓꽃과 꽃이다. 단오절에 여인들이 머리를 감는 창포(Acorus calamus L.)는 천남성과에 속하여, 꽃창포와 이름은 비슷하지만 상당히 다른 식물이다. 창포 잎은 긴 칼모양에 중앙맥이 뚜렷하다. 꽃창포는 창포처럼 긴 칼모양 잎에 중앙맥이 발달했다. 노랑꽃창포(Iris pseudacorus L.)도 잎에 중앙맥이 발달했다. 창포류와 꽃창포류는 꽃이 피면 명확히 구별할 수 있으나 꽃이 피기 전에는 쉽지 않다. 그러니까 꽃이 피기 전 뿌리와 잎 모양이 창포속 식물과 유사한 붓꽃류 중 일부에 ‘창포’라는 이름이 사용된 듯하다. 노랑꽃창포 종명의 pseudacorus는 ‘창포(acorus)’와 비슷하다는 의미이니, 유럽에서도 꽃창포 잎이 창포와 비슷하다고 본 듯하다. 6월 초 고성의 석호에서 본 제비붓꽃(Iris laevigata)은 꽃은 꽃창포와 매우 유사하지만 잎이 밋밋하고 중앙맥이 뚜렷하지 않았다.
5~6월에 피는 노랑꽃창포 꽃은 전국 어디에서나 쉽사리 만날 수 있는데 유럽 원산으로 우리나라 자생종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언제 도입되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이나, 1949년 <조선식물명집 I – 초본편>, 1956년 <한국식물도감 – 하> 초본편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일본에도 도입종 붓꽃류 중에 가장 많이 보급되었다고 한다. 일본 도래시기는 메이지 시대 중기인 1900년 즈음이라고 한다.*** 나는 최근까지도 노랑꽃창포를 우리나라 자생종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습지 조경용으로 인기있는 노랑꽃창포가 우리나라에는 언제 도입되었을까? 이창복의 1979년 <대한식물도감>에 수록되어 있다. 이에 앞서 이창복의 1969년 논문 <우리나라 식물자원>에도 노랑꽃창포가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노랑꽃창포는 일제강점기 이후 1960년대 사이의 어느 시기에 우리나라에 도래했을 것인데, 아마도 해방 후인 듯하다. 도입된 지는 그리 오래지 않지만 노랑꽃창포는 전국 곳곳에서 우리들 마음을 맑게 해주는 친근하고 소중한 꽃이다. 꽃창포와 더불어 노랑꽃창포도 언제나 초연한 아름다움으로 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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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예전서, 학원사, 1962, p.241 (정영호, 꽃창포)
**최영전, <백화보>, 1963, 창조사, p.78
*** 石井勇義·穗坂八郎 編, 原色 園芸植物図譜 第1卷, 誠文堂新光社, 昭和33, p.122
**** 이우철, <한국 식물명의 유래>, 2005, p.147. - “노랑꽃창포(李, 1969) (붓꽃과 Iris pseudoacorus) [이명] 노랑장포, [유래] 노란 꽃이 피는 꽃창포. 옥선화(玉蟬花).”로 기재되어 있다. p.12 국명의 출전에는 “李(1969) 이창복, 「우리나라 식물자원」, 『서울대학교 논문집』 (농생계) 20: 89-228.”가 있다.
+표지사진 - 꽃창포 떨기 (2025.6.15 율동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