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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몽당연필 Oct 27. 2022

28화. 술병 대신 연필을 잡다

중독 치료는 현재 진행 중

 금단 증상

 탄산수를 한 박스 주문했다. 내가 부탁해도 절대 술 심부름을 하지 말아 달라고 남편에게 신신당부했다.

 소주 대신 초록병에 담긴 탄산수를 마시며 뇌를 속였다. 하루 이틀은 비교적 수월했는데 사흘 뒤부터 '키친 드링커'는 온몸으로 금주 행위에 저항했다.


 두피와 팔다리가 가려웠다.

 단 걸 즐기지 않던 내가 젤리와 초콜릿이 가득 든 아이의 간식 통에 자꾸 손을 댔다.

 알코올을 갈망하는 뇌가 각성 상태가 되어 늦은 밤이 되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애쓰고, 참고, 견디는 것뿐이었다.


 곽혜정은 <알코올 생존자>라는 책에서 '인간이 죽음을 거역할 수 없듯이 인간의 몸과 마음은 알코올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알코올과 대결하여 인간이 이길 수 있는 확률은 0%'라고 말한다.


 내가 더 이상 술병에 빠져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때, 사실 단칼에 알코올을 끊고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나약함에 수없이 좌절하고 피눈물 흘리며 인내해야 하리라는 걸 예상했다.


 변화

 보름 정도 지나자 몸의 부기가 빠지고 허리가 잘록해지고 피부에 윤이 났다(정기 모임에서 나를 한 번에 못 알아본 사람도 있었다!).

 초록빛으로 탱탱해진 나뭇잎, 반짝이는 실개천, 산책로에 달라붙은 개똥과 귀를 찢는 매미 울음까지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 가슴 벅찬 기쁨을 느꼈다.


 한 달 뒤, 수면의 질이 좋아지고, 한 번 차오른 활력과 에너지는 예전처럼 금방 방전되지 않았다. 어두운 터널을 통과한 자신에게 조금 더 친절해졌고, 남편과 아들에게도 너그러워졌다(나만의 생각일지도..).


알코올 중독 치유는 현재 진행형

 그래서, 술을 끊었냐고?

 브런치 프로필 사진처럼 정말 술을 끊고 글을 쓰냐고?


 아니다.

 꼭 그렇게 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사진에 박아놓은 것이다.


 다만, 이전처럼 혼술을 하거나 숨어서 마시지 않는다.

 한 캔을 두 캔으로 늘리지 않는다.

 오늘 마셨으면 내일은 쉰다.

 술김에 자주 식탁에 올리던 햇반과 인스턴트 막창 대신 도시락 김에 계란 프라이뿐인 반찬이라도 고슬고슬하게 갓 지은 냄비밥과 함께 먹는다.


 불안과 우울이 불쑥 솟을 때가 가장 큰 위기의 순간인데, 그때마다 술병에 손을 뻗지 않도록 의식해서 억누르고 참고, 또 참아낸다.


 의지만으로 절제가 불가능했던 시절과 비교하면(키친 드링 이전 글들을 보시라!) 눈부신 성장이다.


 음주도 반복하면 주량이 늘듯, 인내도 반복하면 참을 수 있는 한계가 더 커지리라 믿는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알코올 중독' 완치자가 아니다. 애초에 '중독'과 '완치'라는 두 단어는 어울리지가 않는다. 30년 넘게 피우던 담배를 끊으신 시아버지도 '끊은 게 아니라 그저 매일 참는 것'이라고 하셨다. (금연 10년 차 아버님, 존경합니다.)


 단주에 성공하지 못한 현재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걸 보면 나는 아직 갈 길이 멀었구나...


 치유와 변화의 일등공신, '공개 글쓰기'

 내게 있어 중독 치유에 가장 큰 효력을 발휘했던 건 '공개 글쓰기'였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나'를 주인공으로 한 글을 쓰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발가벗고 집 밖으로 나가는 기분이었지만, 그만큼 간절히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글을 씀으로써 나의 중독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변하기 위해 분투할 수 있었다.

 꽁꽁 숨겨왔던 나의 내밀한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놓은 '용기'가 치유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박미소 작가의 <취한 날도 이유는 있어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내가 (알코올) 중독에서 빠져나오게 해 준 가장 강한 동력은 다름 아닌 글쓰기였다. 이 병이 무엇으로부터 연유했는지 총체적, 다각적으로 사유하고 탐구하는 과정에서 나는 이것을 진정 나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수면 위로 끄집어내어 햇빛 아래 명명백백히 원인과 결과를 드러냄으로써 이 병은 더 이상 모호하게 은폐된 비밀이나 막연한 외부의 그 무언가가 아닌, 내 안에 도사린 또렷한 실체로 인식됐다.
정체를 파악한 것은 더 이상 내게 두려움을 주지 못할뿐더러 나로부터 오롯이 분리시킬 수 있는 대상이 된다. 그런 '인지'의 방식으로 나는 중독을 이겨냈다.




 나는 지금도 글을 쓰고, 산책을 하고,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찾으면서 내면을 풍요롭게 채워 나가고 있다. 이 모든 행동이 불안과 중독을 주체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훈련이다.


 다시는 알코올에 내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술병 대신 연필을 잡고 오늘도 쓰고, 또 쓴다.


'금주 성공기'를 연재하게 될 그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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