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시대라지만, 혼자 밥 먹는 게 아직 익숙하지가 않다. 그런 차에 오늘의 내 점심시간이야말로 혼밥 시간이 되고 말았다. 출근해서 이런 상황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라서 어리둥절했지만, 점심 메뉴를 누구와 타협하거나 눈치 볼 일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즐거워졌다. 그야말로 식욕이 이끄는 대로 지근(至近) 거리의 중화반점으로 발을 들였다. 내 나이에 혼자인 게 역시 이상한지, 주인아주머니가 내 뒤에 좀 더 눈길을 두다가 거두어들인다. '짬뽕이요' 시켜놓고 보니, 음식이 나올 때까지 나는 누구와 대화할 사람이 없어 어색했다. 나와 달리 옆 테이블은 떠들썩하다. 바로 옆 테이블이었기 때문에 중년의 남자 셋이 떠드는 말이 또렷하게 귓속으로 떨어졌다. 아니면 그들이 곁에 누가 있든 개의치 않는 것일 수도 있었겠다. 나는 음식이 나올 때까지 휴대폰에서 무슨 중요한 메시지라도 검색하는 양 화면을 위아래로 쓸어 올렸다 내렸다 했지만, 실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내맡기고 있었다.
“그래도 너희 늙으신 어머니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인생이 아니겠냐?”
한 사내가 타이른다.
“난, 그냥 내 인생을 살 거야. 어머니는, 어머니 인생이야.”
듣고 있던 중년의 사내가 대꾸하고는 술잔을 소리 나게 들이켠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건너편의 다른 남자가 끼어든다.
“네 어머니가 널 키우면서 고생한 걸 모른단 말이냐, 넌? 네 어머니가 널 보고 싶어 하는 걸 모른단 말이냐, 넌?"
하며 묵직한 목소리로 거듭 몰아붙인다. 같은 또래가 할 말이 아니란 생각에 그가 궁금해졌다. 짬뽕 면을 볼이 불룩하게 후루룩 빨아들인 뒤 고개를 쳐드는 척 곁눈으로 보니, 그는 확실히 다른 둘보다는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장년쯤의 얼굴이다. 짬뽕 그릇을 들고 국물을 마시는데 갑자기 그쪽 테이블 의자가 밀리는 소릴 낸다. 테이블이 다 비었나 싶었지만 한 사내는 남아 있었고, 둘만 일어서서 식당 밖으로 나가는 중이었다. 나간 건 묵직한 목소리의 장년과 엄마 인생이 아닌 자기 인생을 살겠다는 그 사내다. 아마도 둘은 아직 담배를 끊지 못한 모양이다. 홀로 남은 사내 쪽에서 음성이 들려왔고,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목소리로 대화하다 보니, 전화기 저쪽은 그의 어린 딸 쯤인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쁠까? 딸에게 갖은 애교를 다 부린다. 짬뽕 한 그릇을 다 비우기 전에 담배를 피우러 나갔던 사내 둘이 다시 출입문을 밀고 들어왔다.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찬 바람과 함께 새 화제를 테이블 위에 부려 놓았다.
“그렇대, 경철이는 오만 원짜리 돈은 절대로 쓰지 않는 대잖아. 돈 쌓이는 걸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는 거야.”
“그게 뭐가 부럽냐? 돈 쓸 줄도 모르고 모으기만 하는 게 인생이야?”
딸과의 전화를 끊은 사내가 곧바로 뛰어들자, 이번에도 나이 든 사내가 또 묵직한 목소리로 나섰다.
“그게 뭐가 됐든, 인생이 즐거우면 되는 거 아니냐? 넌 어떤 인생을 살고 있니?
“난 애들 크는 거 보는 낙에 살아. 아들이 중3인데, 이제 이렇게 죽어라 일할 날들이 애들이 큰 만큼 줄었구나 생각되어서 즐거워. 아들도 이쁘고 딸도 이뻐. 그 재미야, 난”
“난 돈 생각 안 하고 산다.”
나이 든 사내의 말이다.
“돈이 주머니에 있는지 없는지 생각하지 않고 살지만, 크게 낭비하지 않으니 꼭 돈이 필요할 때, 돈 없어 본 적은 없어.”
아들딸 크는 재미에 산다는 사내가 다시 대답했다.
“난 지금까지 나를 위해서 쓴 돈이라고는 dvd 플레이어 한 대하고, dvd 몇 장 밖에 없어. 그것도 가장 최근에 산 게 두 달쯤 되네. 나는 나를 위해서는 돈 쓸 일이 거의 없어. 애들 키우는 데 쓰는 거지.”
갑자기 자기 인생을 살겠다는 사내가 키득키득 웃어제꼈다. 그러더니 묵직한 목소리의 나이 든 사내를 향해 말을 건넸다.
“형. 형은 그만 땅속에 들어가고 싶다더니, 지금도 그래?”
나이 든 사내가 대답이 없다. 그러자 그 사내, 웃음의 볼륨을 더 높인다.
“아냐? 이젠 땅속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여전히 웃음 부스러기를 흘린 채 묻는다.
“그래. 안 죽고 싶다.”
“그래? 뭐 그렇게 자주 바뀌어, 며칠 만에. 또 바꿀 거야?”
“그래. 난 살고 싶을 때도 있고, 죽고 싶을 때도 있다.”
나는 짬뽕 한 그릇 비우는 걸 더 늦추지는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셈을 하고 문을 나선다. 출입문이 닫히자 그들의 웃음소리가 가게 안에 갇히고 만다.
TV나 영화 볼 때를 빼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고스란히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경험은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점심시간이었고, 차림새로 보아도 약간은 거친 일을 하는 사람들 같았다. 그들은 혹한의 2월에 언 몸을 녹이려고 짬뽕 국물에 탕수육 하나를 놓고, 소주로 몸을 데우던 중이었으리라. 어쩌면 저들은 내 근무처 옆 건물 4층을 올리는 인부 들일지도 모른다. 근무처로 돌아오는 5분여 거리였지만, 그들의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내 마음속에 흥건히 고여 따뜻하다.
그들은 서로 다르게 살면서도 아무도 잘못 살고 있지 않다. 온기가 있으면서도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고, 조금은 야박하지만 그렇다고 인생의 무게에 눌려만 있지 않은, 삶을 참 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아닌가. TV 강좌 프로그램이나 명강(名講) 다시 보기, 혹은 지위 높은 사람들의 강의에나 내주었던 내 귀였지 싶다.
짬뽕 한 그릇 먹는 동안 열린 귀로, 고스란히 세 현자(賢者)의 삶의 철학을 도둑 청강한, 공부가 컸던 혼밥 시간이었다. 짬뽕값과 함께 저들이 강의료를 내라고 해도 아깝지 않은 강의였지만, 공짜 좋아하는 나는 그들에게 좋은 강의 잘 들었다는 인사치레도 생략했다.
나무들의 득도
나무들도 처음엔
한 줄기 생각으로 시작했을 것이지만
한 줄기 생각만으로
줄기찰 순 없었을 것이다
생각을 버리고
연민을 지워야 하건만
생각이 근심을 낳고
생각이 가지를 치고
생각이 생각을 낳아
마침내 나무는
사방으로 뻗은 가지마다
생각에 시달리는 존재로
흔들렸을 것이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나이 먹을수록
걱정만 는다는 말처럼
나무는 번잡한 생각의 가지로
점점 더 높아만 갔을 것이다.
'이래선 안 되지'
벌써 수십 번째
동안거(冬安居)에 들어
생각을 다 버려보았으나
결코 지울 수 없는
생각의 알맹이들이
가지 끝마다 멍울져
또 가렵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봄은 찾아오곤 했을 것이다
'그래, 삶이 본시 번뇌라지?'
흔쾌히 부처를 인정하자마자
오만 생각이
한꺼번에
가지 끝마다 꼬물거렸을 것이다
드디어
버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