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 하고 열리자마자 남편의 귀빠진 날과 아버님의 기일이 있고, 양가 어머님들이 행여나 같은 주말에 김장을 하실까 봐 눈치를 봐야 하는 김장투어에도 참여해야 하며, 언니 생일에 이어 친정엄마의 생신이 있고, 긴장으로 맞이해야 할 수능이 있고,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에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는 장례식과 한 참 전부터 기별이 온 결혼식까지 챙기다 보면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는데 올해는 그 모든 일들에 상병이 된 아들의 첫 외박이 있어 주말 새벽에 룰루랄라 철원에 가게 되었다.
아들이 군에 간지 세 번의 계절이 바뀌었다.
흰 눈이 폴폴 날리던 그날. 훈련소 입구에 드라이브 스루로 내려놓고 오던 일이 어제 같은데 또다시 흰 눈이 내릴 준비를 하고 11월 중순쯤엔 지나간 군 복무 기간이 남겨진 복무일보다 더 많아지는 시점도 있었다. 훈련소에 들어가자마자 확진자 밀촉접촉자여서 격리되고, 급성 맹장염으로 국군 병원에서 국군 병원으로 응급 이송되어 수술을 했고, 퇴원하고 자대 배치를 받자마자 휴가 다녀온 내무반 선임병으로부터 하사(?) 받은 코로나로 확진에 또 격리. 그 녀석도 한 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 꽤나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래도 저녁마다 지급받는 휴대폰 덕분에 노심초사 전전긍긍 근심하던 어미의 마음은 안도감을 얻었고 이따금씩 전화하여 하루하루를 보람차게 보내려고 한다는 말에 마음도 놓였지만 다시금 맞이한 겨울이란 계절 앞에 매일 같이 기록을 세우며 뚝뚝 떨어지는 철원의 기온을 눈으로 확인하며 내 마음도 뚝뚝 떨어지는데 아무래도 아들은 국내가 아닌 국외 극지방에 있는 것만 같다.
7월 초의 산정호수
7월 초. 아들의 첫 휴가 복귀하던 날 부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산정호수'라는 곳이 있어 들렀었다. 그때 철원에 비가 왕창 왔던 직후에 미련 남은 부슬비가 내리고 있던 탓에 호수에는 믹스 커피색을 띤 물이 가득 차 있었는데 11월에 다시 만난 호수는 가슴까지 시원한 파란 물을 머금고 있었다.
여름엔 호수만 둘러보고 다시 시내로 나갔는데 이번엔 호수 안쪽 깊은 곳에 유원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산보 삼아 걸어갔다.
산정호수 유원지는 예전 수원 원천동에 있다 지금은 광교신도시에 묻혀 버린 '원천유원지'를 떠오르게 하는 추억의 놀이동산과 닮아 있었다. 파란 하늘을 가르며 날아갈 듯이 떠오르는 바이킹을 보며 입이 쩍 벌어졌고 둥둥 떠 있는 오리배에 아장아장 걷던 아들을 태우고 아빠는 열심히 패달을 밟아 오리배를 운전하던 아주 오래 전의 추억도 떠오르게 했는데 무엇보다도 새로웠던 것은 유원지 주변에 모여 있는 향토 음식점 앞엔 강원도의 산세를 보여 주 듯 각종 야채와 담금주, 버섯들, 건나물, 뿌리채소들을 팔고 있었고 그 뿌리채소를 열심히 손질하고 계신 할머니들도 만나게 되었다.
할머이 몰래 찍어 죄송해요
공원 길 입구에 들어서자 바람을 따라온 익숙한 더덕 냄새가 먼저 반겨주었고 나뭇가지들 사이로 간신히 들어오는 겨울 햇살을 빵모자 정수리에 담아 삼삼오오 모여 더덕을 까고 계신 할머니들 모습이 크게 들어왔다. 수북하게 쌓인 더덕 껍질들을 보면서 얼마나 오랜 시간 앉아 계셨을는지 짐작이 갔고 잔뜩 구부러진 할머니 허리와 무릎 사이로 잠수해 버릴 것 같이 숙여진 할머니 고개를 보면서 어린날부터 내가 크던 그 긴긴 시간 동안 늘 마당 한구석 고정석에 앉아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시던 우리 할머니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코끝이 시큰해졌다.
"할머이 뭐해?"
"싱겁긴. 보믄 모르나 더덕 까지"
"아니 왜 갑자기 더덕을 까냐고오"
"왜긴 낼 장 이래서 갖다 팔고 느 애비하고 늬들 반찬 해줄라 그라지"
"그라믄 나도 까줄까?"
"깔 재주 있음 해보래이"
할머니가 나를 똥 손으로 몰아가는 바람에 나는 오기가 생겼다.
하아... 그런데 더덕은 도라지랑 다르다. 도라지 껍질은 뱅글뱅글 잘 벗겨지는데 더덕은 끈적끈적한 것이 손에 묻고 할머니 손에 있는 더덕처럼 하얗고 통통해야 하는데 내 손에 더덕은 만지면 만질수록 시커메지고 살점이 뜯기더니 내 양손은 늪에 빠진 것처럼 엉망이 되어버렸다.
"할머이 이거 왜 이래?"
"왜 그라긴 더덕진 때매 그라지. 이게 좋은 기여"
나는 할머니를 더 돕지 못하고 수돗가에서 한참 동안 손을 씻었다.
더덕을 다 손질하신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더덕을 탕탕탕탕 맴매를 하셔서 납작하게 만들어 주셨고 나도 해보겠다며 할머니를 졸라 더덕 맴매를 열심히 했다. 그 덕분에 그날 저녁 우리가족은 엄마가 맛있게 양념해준 더덕을 화롯불 석쇠에 올려놓고 구워 맛있는 저녁밥을 먹었다.
엄마가 싸주신 더덕더덕들
지난 친정행에 엄마는 밭에서 캔 더덕을 손수 다 껍질까지 벗기셔서 한봉 다리 싸 주셨다. 향긋하다 못해 강력한 더덕 냄새를 맡으며 이 많은 더덕을 까려고 얼마나 긴 시간을 애쓰셨을까 생각하니 죄송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묘한 감정이 교차해서 괜히 엄마에게 성질을 부렸다.
"난 담부터 더덕 안 먹으니깐 내 건 싸지마"
"이잉 안 먹긴. 누가 니 먹으래. 이 서방하고 애들 멕이라주지"
"그라믄 담부턴 껍데기 까지 말고 걍 줘"
나도 참 바보다. "감사합니다" 하고 가지고 오면 될 것을 꼭 이렇게 미안함을 심통으로 부리고 온다.
지글 보글 더덕구이
집으로 모셔 온 더덕.
물론 이론상으론 할머니처럼 엄마처럼 탕탕 친 뒤 양념을 해서 팬에 구워 먹으면 맛있겠지만 나는 층간소음을 고려해 탕탕 작업은 건너뛰기로 했다.(사실 장거리 운행에 귀찮기도^^;)
들기름을 두른 팬에 양념을 한 더덕을 넣고 구우니 남편도 작은 아이도 맛있게 먹고 나는 더덕을기어이 철원까지 가져가 아들에게 구워 멕이고 왔다.(이 뿌듯한지고)
더덕 한입에 할머니와의 추억이 떠오르고,
더덕 한입에 엄마의 수고가 느껴지고,
더덕 한입에 익숙한 향과 맛에 행복해 짐을 느낀다.
어린 시절 너무도 당연하다고 느꼈던 가족들의 수고와 애씀이 이제야 그립고 그리우니 나는 이제야 철이 들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