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고추 포트하고 바빠지믄 해주고 싶어도 못해. 엄마가 시간 나서 밑반찬이랑 니 좋아하는 식혜 보냈으니 이 서방하고 맛있게 먹어"
"응 엄마. 택배 받고 전화드릴게요"
통화를 끝낸 것을 본 남편이 묻는다.
"장모님 또 택배 보내셨다나?"
"응. 얘기만 들어도 밤을 새워 뭘 맹그신 듯"
"아이고야 늙어가는 딸네미 버릇만 나빠지게 아픈 손으로 또 부득부득 일을 벌이셨구만"
"그러게 말이야. 이제 내가 엄마한테 역으로 반찬을 해서 보내도 시원찮을 텐데"
"아마 장모님이 그러실걸. 맛대가리 읍어서 안 먹어"
"당신은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 이제 그만 없어져 줘야겠다."
내가 남편을 향해 대검을 휘두르는 시늉을 하자 남편이
"응 그러는 아니야"
안방으로 후다닥 도망을 갔다.
다음날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는 소녀처럼 엄마의 택배를 기다리며 퇴근을 했고 엘리베이터가 열리자익숙한엄마의 필체로 큰 아이 이름 두자가 적힌 커다란 아이스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택배박스를 들고 집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순간내 힘으론 바로 들고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다행히 현관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먼저 귀가한 작은 아이가 마중을 나왔다.
"체육소녀 이것 좀 들어주라"
"엄마 왜 갑자기 약한 척이야?"
작은아이가 택배 박스를 들어 올리려다 처음엔 실패를 하더니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끄응 소리를 내며 들어 올려 종종걸음으로 들고 가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엄마 진짜 무겁긴 무겁다. 할머니는 뭘 보내신 거야?"
"할머니의 사랑?"
"응 그래서 어마무시 무거웠구나"
택배상자를 열어보니 울컥 눈물이 났다.
메밀전병 한 보따리에 두부, 식혜, 코다리 조림, 양념게장, 양념닭발, 복분자 즙, 쥐포 무침, 오렌지 몇 알과 사과 한 봉다리까지 담겨 있으니 무겁지 않을 수가. 그리고 무게만큼 놀라운 것은 이 어마무시한 양을 사 남매 집에 모두 보내셨다면 도대체 엄마는 며칠을 준비하셔서 이만큼의 택배를 보내신 건지? 내 짐작대로라면 아마 밤을 새워서 부치셨을 것이고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맘에 울컥하는데 정리하며 손가락으로 집어 먹은 음식들, 눈치 없이 왜 이렇게 맛들은 좋은 것인지...
"똑똑 똑똑 똑똑 똑똑 다다다닥"
점심을 먹은 뒤 엄마는 작년 겨울 땅속에 묻어둔 김치를 한 다라 꺼내서 열심히 다지고 계신다. 땅에 묻어 두었던 김장독 안에 있던 김치는 깊어지는 봄에 보글보글 발효가 되며 신신신 김치가 되어가고 있고 엄마는 너무 신 김치는 물에 헹궈 볶아 주시거나 김칫국을,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김치적을 해 주시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치가 너무 많이 남는다 싶을 땐 잘게 다지고 당면을 삶아썰어 넣고 맛있게 버무린 빨간속에 메밀가루를 풀고 동그랗게 지단을 부쳐 돌돌 말은 메밀전병을 만들어 주셨는데만두를 만드는 날 보다는 훨씬 재밌고 맛 좋은 날이었다.
올해 아홉 살이 된 조카에게까지도 놀림받는 '맵찔'인 나는 그 당시에도 매운 것은 먹지 못했는데 전병의 퉁퉁한 가운데 부분은 아예 먹지 못했고 날씬하고 얇은 끝부분만 겨우 떼어먹었었는데 엄마가 그런 나를 위해 배려를 해 주신 것일까? 이번엔 간이 세지 않아 단숨에 몇 줄을 먹어 버렸다.
"할머이 손 안뜨구와?"
아까부터 계속 동그랗게 메밀 전을 부쳐 그 속에 빨간 김치 속을 넣고 메밀전병을 맨손으로 훌떡훌떡 뒤집고 계신 할머니를 쪼그려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뜨겁긴 뭐가 뜨거"
"손으로 계속 요래 오래 만지니 뜨겁지"
"할미 손은 억세서 갠자네. 잘 봐뒀다가 낭중에 시집가믄 이래 해서 식구들 멕이래이"
"히히 시집을 갈지 말지 어떻게 알아"
"이잉 안 가긴. 즈 성 보다 먼저 간다 하지나 말그래이"
"나 같은 선머슴아를 누가 좋아하겠어"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소 눈 같이 큰 눈을 좋아하는 손녀사위가 생기겠지. 낭중에 내가 손녀사위를 보고 죽을라나"
할머니는 손으론 계속 메밀전병을 부쳐 채반에 꺼내 담고 눈은 나를 보고말씀 하셨다.
"근데 할머이 나는 빨간 거 넣지 말고 그냥 부치기만 주믄 안 돼"
"이잉 속맛으로 먹는 기지 뭔 맛이 있겠나?"
"나는 맛있게 먹을 수 있어"
"생기다 뭐가 들 맹그러졌는지, 우째 그리도 못 먹는지"
할머니는 나를 가여우면서도 조금 모자란 듯한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시며 커다란 대보름 달을 부쳐 주셨다.
김칫국 김칫국 김칫국~
도랑가에 서 있는 버들강아지에 하얗게 솜털 살이 오르고 구들장 아랫목에 촉을 틔울 고추씨가 자리를 잡으면 산골 마을에도 봄이 오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면 땅속에 묻어 두고 꺼내 먹었던 무꾸도 싹이 나고, 내 손아귀에서 살아남은 감자랑 고구마도 싹이 나기 시작했는데 여름에 캐는 감자는 숭덩숭덩 잘라져 밭으로 파종을, 가을에 캐는 고구마는 보라색 싹을 길게 길게 자랑하다 심겼다.
그리고 봄맞이 과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김장김치였다. 아무리 김치광에 묻어둔 장독이라도 봄햇살을 이기지 못했고, 그때는 김치 냉장고도 없었고 겨울에는 냉장고도 싹 비우고 커버를 씌워 쓰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할머니와 엄마는 메밀전병과 만두로, 김치를 물에 헹궈 김칫국이나 들기름과 설탕을 넣은 김치볶음을 해 주셨었는데 김치를 씻어낸 양념물은 엄마소가 먹었으니 김칫독은 정말 알뜰하게 비워져 다시 장독대로 돌아왔다.
지금은 일 년 내내 냉장고와 김치 냉장고, 냉동고까지 돌아가고, 김장김치를 쟁여 놓고 먹고사는 나는 가끔씩 씻겨져 버리는 양념의 아까움을 무릅쓰고 남편도 좋아하는 두부를 넣은 김칫국을 끓여 먹는데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엄마랑 같은 김치, 고춧가루, 기름, 고추장, 된장을 쓰는데 왜 나의 결과물은 다른 맛이 나는 걸까? 것 참 고약하기도.
오늘도 엄마가 보내주신 메밀전병을 데워 먹으며 할머니와 꽁냥꽁냥하던 어린 날의 나를 떠올리곤 피식 웃어본다. 다행인 것은 시집도 못 갈 줄 알았던 나였는데 할머니는 손녀사위도 증손주들도 만나고 헤어지셨다.
올해도 할머니 산소엔 할미꽃이랑 산수유랑 제비꽃에 매화꽃까지 피어 눈부신 봄이 오고 있을 텐데 감자 파종하기 전에 꼭 한 번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