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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Apr 05. 2024

1막 18장. 벌레와 함께 사는 집

아랫채로 쫓겨난 집에서 그마저 오래 살지도 못했다.

같은 동네이지만 맨 꼭대기 다른 행정구역과 경계가 지어지는, 동네 이름도 '산지촌'이란 곳으로 이사를 했다.

도회지에 나가 있는 주인을 대신해 집 관리를 해 주며 얼마 안 되는 월세를 지불하는 조건인 듯했다.

엄마는 시골로 이사한 지 몇 달이 지났어도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일이 도통 적응이 안 되는가보다.

매번 매운 연기에 눈물을 찔끔거리며 쩔쩔매고 있으면 간간이 지나가는 행인이 들어와 불을 지펴주고 가기도 했다.

이사간 집에는 언제부터였는지 우리 보다 먼저 곳  마당을 지키는 노란색 고양이가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었다.

온기 없던 그곳에 우리가 부엌에 불을 지피기 시작하니 이 녀석은 낯가림도 없이 아궁이 앞에 앉은 엄마와 내 옆에 앉아 그르릉댄다.

그리고는 눈을 감은채 우리 다리와 얼굴에 제 얼굴을 비벼대거나 까끌거리는 혀로 볼을 핥아주기도 했다.

때로는 아궁이 앞에 앉아 한참 동안 몸단장을 하거나 가만 웅크려 앉아 꾸벅꾸벅 졸기도 하는 순하고 애교 많은 녀석이었다.

아주 좁은 방 한 칸이 전부인 데다 어른들은 허리를 숙여야만 방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방문에는 뜬금없게도 한가운데 20 ×20센티쯤이나 되는 정사각형의 유리를 가운데 덧대어 놓았다.

어차피 한지를 바른 얇디얇은 문이라 추위를 막는 기능도 방음도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데 굳이 안과 밖에서 서로를 식별할 수 있는 유리를 왜 안방 문 가운데 붙여 놓았는지 어린 나로서도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방 안에 들여온 국솥 안의 국을 퍼 담다 유리문 밖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낮엔 어디서 잠을 자거나 외출했다 돌아온 것인지 하루종일 보이지 않던 고양이가 저녁식사 시간을 귀신같이 알고는 툇마루에 올라앉아 초록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부담스럽도록 우리의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저 유리는 고양이 때문에 만들어 붙였나?? 혼자 생각하고도 피식 웃곤 했다.

지극히 시골스런 식사 시간이 끝나면 이가 나간 사기그릇에다 흰쌀밥에 미역국 등을 말아 처마밑 한편에 내어준다.

그럴 때면 툇마루에 앉았던 고양이가

"야~~ 옹~~" 하며 달려와 허겁지겁 국밥을 먹는다.

어느 날은 날아오르는 까치를 사냥한다며 나무 둥지 위에 앉은 새를 쫓아 날카로운 발톱으로 나무를 찍으며 올라간다. 그러곤 내가 보기엔 귀엽기 그지없는 한쪽 팔을 쭉 뻗어 이리저리 휘둘러대지만 괜한 헛발질이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고양이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발정이 나서 나갔나?

행방을 알 수 없는 고양이 소식에 궁금함과 불안함이 뒤섞여 걱정스러운 마음인데 어느 날 이웃 아저씨가 우리 집 고양이가 도로를 건너다 차에 치이는 것을 보았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우리보다 먼저 이 집을 지켜왔지만 텃세 부리지 않고 예쁜 인연을 이어가던 녀석이었는데 그렇게 불행한 죽음을 맞이했다니....

오랫동안 슬픈 마음추스려지지 않았던 일여러날이었다.


마당 한 편의 텃밭엔 심지도 않은 비름이며 깻잎, 상추가 질서 없이 지천으로 자라고 다른 편 나무 가지에는 솜털 가시가 가득한 두릅이 가득 매달려 있다. 아빠가 면장갑을 끼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그것을 뚝뚝 분질러 내려오면 끓는 물에 데쳐 초장에 찍어 먹는 것도 별미다.

마당 밖에도 작은 밭이 있어 아빠는 이웃에게 소를 빌려와 쟁기를 걸어 밭을 갈고 그곳에 감자며 수박과 토마토 따위를 심기도 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엔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흙돌길 위에도 밖에 난 수돗가에도 신작로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미꾸라지가 이리저리 꿈틀거린다.

나는 미꾸라지를 밟지 않기 위해 다리를 쩍쩍 벌려가며 피해 가곤 했는데 아빠는 꿈틀거리는 미꾸라지를 말그대로 그저 주워 담아 엄마에게 건네면 가마솥에서 군침 도는 추어탕을 펄펄 끓여내기도 한다.


전에 살던 집은 울룩불룩 들뜨기는 했어도 흙벽 위에 벽지라도 붙여놓았는데 이 집은 누런벽 위에 회백색으로 회칠을 한 게 전부 다였다. 

그러니 주먹으로 조금만 세게 벽을 쳐도 흙가루가 후두둑 쏟아질 지경이다.

그런데다 뒷마당은 담장이 따로 없이 산으로 이어져 있어 각종 이름 모를 벌레가 천지다.

우리 집 방안의 흙벽엔 1~2미리쯤 될까 말까 한 점처럼 작은 구멍이 여기저기 수도 없이 뚫려 있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각종 벌레들의 집이었다.

아침이 되어 문이 열리면 그들도 어디론가 나갔다가 해가 지면 문이 열릴 때마다 함께 들어와 그 작고 많은 구멍들 중 희한하게도 제 집을 찾아 날개를 쏙쏙 접고 안으로 들어간다. 

이름도 알 수 없고, 모양도 다 다른 날벌레들이 우리 방을 안식처로 삼아 눈과 비를 피하고, 나와 함께 잠을 자며 작은 구멍을 매일 드나드는 것이 징그럽다기보다 신기함을 넘어 신비롭기까지 해서 그 모양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것도 심심찮은 일이었다.

 

외딴집이나 다를 바 없는 이곳에서 친구가 없어도 외롭지 않다.

아직은 살얼음이 낀 냇가 가장자리에는 귀여운 재색 털망울이 다닥다닥 붙은 버들가지가 움터있다. 여린 가지를 잘라 도루코 칼로 살짝 금을 그어 껍데기만 쏙 벗겨 피리를 만들어 불기도 하고, 이른 봄에 일찍 찾아온 냉이며 쑥이며 벌금자리등을 캐러 다니는 것도 재미진 일이다.

조금 더 날씨가 따뜻해지면 아직 모내기가 시작되지 않은 논둑에 아무렇게나 자라 있는 풀을 뽑아 풀피리를 불면 되고, 여름이면 마을 아래에 사는 동네 아이들과 기찻길 아래 냇가에서 물장구를 치며 노는 것도, 산에 올라 뽕이며 고엽이며 따 먹는 것도 재미있는 놀이가 된다.

 동네에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줄에 매인 황소를 보고도 겁에 질려 옆을 지나지 못해 엉엉 울며 집으로 돌아갔는데 이젠 제법 시골아이 티가 역력하다.

 

가뭄에 콩 나듯 술이 깨어 있는 새아빠와도 가끔은 즐거운 추억이 있다.

맨 꼭대기 우리 집에서 동네 반대 방향으로 걸어내려가면 행정구역이 바뀌고, '개태사'라는 절이 있다.

그 아래로 더 걸어가면 개태사역이라는 간이역이 있고, 철길옆엔 제법 폭이 넓고 큰 냇가에 다다른다.

냇가 옆으론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듯한 길쭉한 미나리가 물속에 뿌리를 내리고 물살을 따라 춤을 추듯 흔들흔들한다.  

아빠는 한쪽은 입구가 넓고 다른 한쪽은 입구가 좁은 유리 어항에 된장 한 숟가락을 넣고 바닥까지 다 보일만큼 투명한 물속에 잠시 넣어둔다. 한쪽에선 엄마가 샴푸로 내 머리를 감기면 나는 물속에 들어가 자맥질을 한다.

그때 그 시절은 환경오염이고 뭐고 굳이 생각하지 않는 무지한 시절이기도 했다.

때로는 돌팍에 붙은 통통한 다슬기를 뜯어내어 바구니에 담기도 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물속에 넣어둔 어항을 들어올리면 피라미, 붕어, 모래무지 따위의 물고기가 된장 냄새를 따라 들어갔다 미처 출구를 찾지 못해 어항 속에 갇혀있다.

아빠는 칼로 물고기의 배를 딴 후, 비늘을 긁어내고 나는 그 옆에서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부레를 터뜨리며 장난을 친다.

엄마는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둔 물이 부글부글 끓으면 손질한 물고기를 넣고는 한소끔 끓어오르도록 또 한 번 기다린다.

그러고는 바로 옆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미나리를 뜯어 손으로 뚜둑 뚜둑 잘라 냄비 안에 넣는다.

치대어 놓은 밀가루 반죽을 뚝뚝 어 수제비를 만들어 먹는 것도, 국수를 끓여 먹는 것도 별미가 된다.

가난해도 좋으니 그냥 이렇게 오손도손 살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날은 엄마가 나를 데리고 읍내에 있는 목욕탕에 갔다 저녁쯤 집에 왔는데 왜 이리 늦게 왔느냐며 죽일 듯 욕을 하던 새아빠는 어디서 그런 신기한 것을 찾아내었는지 도깨비방망이처럼 뾰족한 못이 밖으로 여기저기 튀어나온 각목을 들고 다 죽여버리겠다며 휘둘러댔다.

나는 기겁을 하며 대문을 열고 그 길로 동네 아래로 도망을 치는 수 밖에 없었다.

캄캄한 시골동네를 여기저기 쏘다니다 늦게서야 집에 돌아가니 다행히 싸움은 끝나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도 새아빠는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기러기를 잡아와 털을 다 뽑고 툇마루 처마 아래에 거꾸로 걸어둔다. 얇은 모가지가 덜렁덜렁한 털 벗은 기러기가 주둥이는 삐죽하고 눈을 번히 뜨고 죽어 있는 모양새가 너무도 가엾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해서 공포에 질려 울부짖자 욕을 하며 다시 뒷마당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는다.

오랜 시간이 지나 뒷마당에 버려진 기러기 사체에는 말벌이 집을 지어 살고 있었다.


엄마와 양철 대문 앞에 나가 서 있던 어느 날이었다.

신작로 옆에 빽빽이 키가 솟은 알차게 영근 옥수수를 보니 군침이 돈다.


"나도 옥수수 먹고 싶다"


그러자 엄마는 양옆을 재빠르게 살피더니 밭으로 들어가 다른 집 옥수수를 마구 꺾어댔다.

나는 그저 옥수수가 먹고 싶다는 것이지 도둑질을 해 달라는 뜻은 터럭만큼도 없었던지라 너무도 당황스럽다.


"엄마, 왜 그래? 그건 도둑질이잖아!!! 내가 언제 훔친 옥수수 먹고 싶다고 했어!?"


"야 이년아, 니가 옥수수 쳐묵고 싶다 안 했나!!!"


"먹고 싶을 수도 있지!! 그치만 내가 훔친거 먹고 싶대?!!"


우리 엄마는 매사 왜 그럴까?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내가 어려서 몰랐던 걸까... 아빠와 함께 살며 사람이 변한 걸까.. 아니면 둘 다 일까?

그게 나를 위한 사랑이었을까?

별안간 버럭 화를 내며 내 뜻과는 영 다른 해석을 내놓으니 나는 내 마음을 말할 사람이 아주 없다.


마음속 상처가 아물 틈 없이 매일 덧대어지기만 하니 그 상처가 크고 깊어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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