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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Apr 12. 2024

1막 19장. 산골짜기 소녀

같은 면단위라지만 늦여름께 우리 집은 또 이사를 간다.

그나마 아침나절 내내 걸어야만 던 등하교 길이 삼사분 거리인 데다 하루에 두세 대 들어오는 버스 정류장이 바로 앞이라 그야말로 역세권이다.

오랜 세월 이 마을을 지켜온 큰 정자나무 옆엔 구판장도 있고, 이제 막 피아노 학원도 생겼다.

같은 반 친구들이 피아노 학원에 가는 것을 보고 나도 여느 아이들처럼 학원에 보내달라 졸라대자 엄마가 어렵사리 학원에 보내주었는데 뭐든 익히는 일이 빠르던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한 달 늦게 배웠어도 그들보다 언제나 진도가 앞서 나가 바이엘 하권 끝부분에 다다른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안 되어 갈 수 없다.

형편도 안되거니와 그곳에 산지 몇 달도 안된 것 같은데 또 이사를 간다니 정신적인 피로감이 말이 아니다.

이번엔 아주 산속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는데 에 길을 내고 산 꼭대기를 깎아 소를 키우는 우사와 두어 채의 집이 전부인 곳이었다.

누가 그 산 꼭대기를 부러 찾아오는 이도 없고, 온 산과 들이 마당이며 집 앞과 뒷마당 밭엔 켜켜이 쌓인 소똥이 천지 가득이다.

그러나 소똥 무더기를 뚫고 나온 갖가지 푸르름은 넘치는 생명력을 자랑하며 꿋꿋하게 뻗어 나 이름 모를 작은 꽃을 피워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그 깊은 산속에도 옆집엔 전화기도, 칼라 텔레비전도 있지만 우리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인 지직대는 흑백텔레비전을 아직도 이사 때마다 가보처럼 끌고 다녔다.

옆집에서 들리는 만화 주제곡 소리에 어떻게든 텔레비전이 보고 싶어 안테나를 이리저리 움직여보아도 어름거리는 화면으로 공영방송의 뉴스나 간신히 나올 뿐이다.

라디오도, 신문도, 전화기도, 텔레비전도 심지어 이웃도 없는 이런 데서 어찌 사나 싶어도 십사 년간 섬마을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는 새아빠와 다른 이들과 소통하는 것이 서툴어 보이는 엄마, 내가 보기엔 사회부적응자나 마찬가지인 두 사람에겐 일부러 찾아 들어오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류하는 일가친척도, 형제도 없으니 누구네 경조사에 따라 가 본 기억도 없고 이웃과 싸우는 것만 보고 혼자 자라온 나로서는 사회성은 거의 독학으로 배워야 하는 처지나 마찬가지다.

그나마 외딴데서 살다 아빠에게 맞아 죽을 것이 겁나는 엄마가 안 가겠다고 버티면 다시는 손찌검을 하지 않겠다며 굳은 약속을 하지만 자신도 자신을 어찌할 수 없는 일인지 일이 끝나면 매일 술을 마시고, 취하면 쳇바퀴 굴러가듯 또 그렇게 맞고 때리고 산다.

소똥으로 진창이 된 장화를 신은채 방으로 들어와 누워있는 엄마의 얼굴을 짓이기는 일도 종종 있었다.

이렇게는 못살겠다며 한 손엔 짐가방을 다른 한 손은 내 손을 잡고 칠흑같이 어두운 산길을 걸어내려가면 빠른 남자의 걸음으로 어느새 우릴 따라붙은 새아빠는 지천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큰 돌을 쳐들고 쥐도 새도 모르게 둘 다 때려죽여 낭떠러지로 굴려버리겠다는 협박에 하는 수 없이 도로 집에 끌려 들어가는 일도 있었다.


다행히 옆집엔 나보다 두 살 많은 윤숙이 언니와 그보다 두 살 어린 언니의 남동생, 그리고 아직 다섯 살 된 어린 동생이 있어 친구가 되어주니 그리 적적하지는 않았다.

바로 앞산에 올라가 굵은 나무 끝을 뾰족하게 깎은 뒤 네 기둥으로 말뚝을 박고, 비닐로 방막을 친다. 그리고 안에 자리를 깔고 들어가 이불까지 덮고 누우면 어린 우리들의 숨결에 비닐 벽엔 어느새 이슬이 맺혀 물기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따뜻하고 비밀스러운 아지트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더운 공기가 갑갑해지면 바로 옆에 만들어둔 비닐 해먹에 누워 쉴 수도 있다.

주위엔 칡덩굴이 지천이라 대충 껍질을 벗겨낸 줄기를 잘근잘근 씹으면 쓴 맛에 얼굴이 찡그려지는 듯해도 요즘 인공 감미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은은한 단맛이 기분을 좋게 한다.

마치 우리네 인생처럼....

쓰디쓴 고난 끝에 간간이 찾아와 주는 인생의 단맛에 그나마  숨 쉬고 살 수 있는 것처럼....

칡덩굴의 쓴 맛 뒤엔 묘한 단맛이 슴슴하게 배어 나온다.


지금이라면 돈 주고 가라 해도 무서워서 못 갈 것 같은 산길을 열 살 여자 아이 혼자 등하교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집과 가까운 산꼭대기 길 옆은 낭떠러지여서 정신을 놓치면 곧 죽음이다.

갑자기 푸드덕 날아오르는 꿩 때문에 깜짝 놀라기도 하고, 어디선가 들리는 멧돼지 소리와 곳곳에 보이는 제법 큰 뱀굴에 긴장을 늦추지 않지만 그 험하고도 신비로운 산길은 나에게 생각과 쉼을 주는 치유의 길이기도 했다.


산길이 완만해지는 한낮의 무덤 옆에 허리를 낮게 구부린 할미꽃이 신비롭다.

꽃을 꺾어 집으로 가져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 내밀었던 손길을 아쉽게 거두어들인다.

'내일 와서 또 보면 되지 뭐....'

역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집으로 가져가 컵 속에 꽂아두었다면 금방 시들고 말았을 것을 감질나기는 해도 학교를 오가며 자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길을 가로지르는 좁은 실개천에 몸을 낮게 숙여 두 손으로 물을 떠 마시거나 반대편으로 팔짝 뛰어넘어 학교를 오간다.

때로는 날이 궂어 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길이 불편하고, 안개가 자욱할 때는 낮이라도 섬뜩할 만큼 음산하지만 학교가 가까워지는 동네 어귀엔 주홍빛 홍시가 대롱대롱 매달린 나무의 모양새가 정겹기만 하다.

여러 모양으로 지저귀는 산새 소리와 수천 마리의 개구리 떼 소리도 좋은 음향 효과다.

가을이 깊어지며 홍시가 더욱 붉어지면 보기에도 아까울 만큼 반질반질 윤이 나는 그것을  큰 스텐 다라에 켜켜이 쌓아 신문지를 덮은 채 길 옆에 줄줄이 놓아둔다.

아마도 주인은 장날에 그것을 싣고 나가 값을 치를 모양인가 보다.


윤숙 언니 남매와 학교를 마치고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무슨 생각이었는지 언니의 남동생은 길가에 줄줄이 늘어서 있는 대야의 신문지를 슬쩍 젖혀 본다.

그러자 군침이 돌만큼 빛깔 고운 홍시가 봉긋 솟아 오른 모습을 보니 도저히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던 까닭인지 결국 맨 위에 올려진 감을 들어 올려 곧바로 입에 갖다 댄다.

껍질이 터지며 혀에 닿는 홍시의 달짝지근하고 부드러운 속살을 온전히 느껴보려는 것인지 두 눈까지 감은채 깊이 음미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찰나...

동생이 남의 홍시를 들어 올릴 때부터 윤숙이 언니는 곧바로 소리쳤다.


"너 그거 당장 내려놔, 남의 거잖아"


"싫어!!! 나 이거 다 먹을 거야!!!"


"야!! 빨리 안 내려놔!!!... 어떻게 하지? 하... 하나님, 내 동생이 이걸 내려놓게 해 주세요... 아 어떻게 해....."


"와,,, 너무 맛있어...!!!"


"아니 이 새끼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윤숙 언니는 손바닥을 쭉 펴더니 동생의 뒤통수를 '퍽!' 소리가 나도록 세게 때리니 홍시가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그러자 여린 홍시가 완전히 속살을 드러내며 땅바닥은 이내 주황빛으로 가득하다.

홍시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매력을 숨기지 않고 한껏 뽐내겠다는 듯, 달콤하면서도 진한 향이 우리를 가득 에워싼다.

그러나 국민학교 2학년  남동생은 지지 않고 소리쳤다.


"왜 못 먹게 해!!!"


"야!!! 남의 거라고!!! 도둑질이라고!!!"


나는 혹시라도 주인이 소리를 듣고 어디선가 나타나지나 않을까 심장이 두근대는데 동생은 아랑곳 않고, 홍시와 침이 범벅이 되어 질질 흘러내리는 입을 크게 벌려 엉엉 울어댄다.


평소에는 자기 큰아버지가 우사의 사장이고 대전에서 공업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자기 아빠는 이곳에서 큰아버지의 월급을 받긴 하지만 부사장이나 마찬가지라며 별반치도 않아 보이는 것을 매일같이 엄청 뻐겨대서 꼴사나웠는데 믿지도 않는 하나님까지 찾아가며 누나 노릇을 톡톡히 해내는 의외의 모습에 적잖이 놀란 날이기도 했다.


날마다 오가는 산길이지만 매일이 새로운 신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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