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귀신 맞이 비용 20만원
아내라는 검열을 통과하고 오픈 시간이 되자 문득 호기심이 동했다. 내가 귀신들렸다면 무슨 신기 같은 게 내게 생긴 것은 아닐까? 나는 한 번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오늘 매출은 어떨까?”
아내에게 물었다. 우리 가게의 징크스 중의 하나는 예약이 있는 날이면 그날 장사가 꽤 괜찮은 편이었고, 예약이 없는 날이면 대개 공치는 날이기 십상이라는 것이었다. 아내는 걱정스레 말했다.
“오늘 예약이 없어! 손님이 없을 것 같아. 날도 꾸물꾸물하고.”
“아냐! 오늘 꽤 괜찮을 것 같은데. 내 기분이 그래. 한 번 믿어봐!”
나는 아내 몰래 나만의 신기를 맘껏 뽐내며 말했다.
“그래?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당신 말을 한 번 믿어봐?”
아내는 희미하게 웃었다.
하지만 나의 신기는 ‘꽝’이었다. 신기는커녕 그에 따른 요행 따위도 없었다. 그날 낮 장사는 형편없었다. 또 아니나 다를까 아내로부터 타박도 당했다.
“괜히 아침부터 설레발쳐가지고는! 오하루 말을 믿은 내가 등신이지. 믿을 사람 말을 들어야지!”
“난들 어디 안 되기를 바랐나. 잘됐으면 좋겠다 하는 심정으로 그런 거지.”
나는 보이지 않는 앉아 씨에게 다시 한 번 부아가 치밀었다.
마술 램프의 요정이라면 로또 1등 당첨 소원이라도 빌어보지. 이건 뭐 구닥다리 성질 사나운 귀신이 나타났고, 그것도 모자라 자기를 대신해 복수까지 해 달라고 하지를 않나. 사전 서비스로 하루치 낮 장사라도 어떻게 좀 해주면서 사정해도 시원찮은 판에.
2시쯤 되자 낮 장사는 완전히 끝이 났다. 특별히 할 일이 없자 아내의 심기를 살피며 틈틈이 인터넷을 뒤졌다. ‘귀신 쫓는 법’을 찾아봤다. 특별한 도구나 재료들을 이용한 ‘부정풀이’ 같은 게 대부분이었다. 하려고 들면 못할 것도 없는 방법들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아내 말처럼 괜히 쓸데없는 일만 만드는 게 아닐까? 내일 새벽에 의자를 다시 갖다 버리는 게 최선이 아닐까?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4시가 다 될 쯤 지하실로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아내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당근에서 누가 그 의자를 사겠대!”
“뭐? 정말 당근에 올렸어? 그러지 말자고 했잖아?”
“왜? 당장 1, 2만원이 아쉬운 데. 2개에 30만원으로 올렸더니, 5만원 디스카운트 안 되겠냐고 해서 그러겠다고 했어.”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었다.
차라리 잘 된 걸까? 어차피 갖다 버릴 거면......
그래도 뭔가 찜찜했다. 이대로 이런 식으로 인연을 정리하기에는 아쉬움 혹은 미련 같은 게 남았다. 판타지는 힘이 셌다.
“내가 돈 줄게. 팔지 마!”
“니가 돈이 어디 있는데? 나 몰래 또 삥땅친 거야?”
“아냐. 내 비상금이야.”
“그 비상금이 다 내 돈이지. 안 그래? 이거 완전 공금횡령인데.”
“아이 어쨌든. 그렇게 해.”
“좋아. 대신 30만원! 콜?”
“아이 안 돼. 20만원. 콜?”
“노우!”
“그 사람한테는 5만원 깎아준다며 나한테는 안 깎아줘?”
“좋아. 그럼 25만원!”
“25만원에서 5만원을 깎아줘야지. 20만원밖에 없어.”
“좋아. 봐줬다. 20만원!”
나는 이렇게 피 같은 비상금 20만원, 축구용 레인 재킷이랑 축구화를 사려고 아내 몰래 비밀작전처럼 모은 돈 20만원을 눈물을 머금고 갖다 바쳤다. 내 안에 귀신을 받아들이는 값, 20만원! 다시 한 번 앉아 씨에게 부아가 치밀었다. 화도 나고 짜증도 났다.
내가 지금 뭔 짓을 하고 있는 걸까?
4시가 좀 넘어 지하실로 향했다. 장사가 안 돼서 속상했고, 돈도 뜯겨서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
말 그대로 의자 귀신을 상대로 푸닥거리를 할까?
하지만 이게 다 내가 자초한 일이지 않은가. 이제 의자를 갖다버리는 것은 선택지에서 아예 사라졌다. 그건 나만 손해 보는 일이니까. 그렇다면 남는 것은 어쨌든 의자 귀신이랑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다.
혹시나 모르잖아? 의자 귀신이 사실은 요정일 수도 있으니까.
혹시나 모르잖아? 요정이 “주인님! 소원을 말해보세요!”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나는 결코 판타지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 가느다란 끈을 잡으러 나는 지하실의 계단을 힘겹게 밟고 내려갔다. 지하실은 죽으나 사나, 좋으나 싫으나 어쨌든 나만의 공간이었다. 이 집에서 거의 유일하게 나 혼자만의 여유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 여유와 자유에 판타지가 깃들기를 염원하며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하지만 이때는 몰랐다. 모든 것으로부터 상관없어 자유로운 곳, 모든 것이 다 포기가 되는 곳, 의지나 희망을 애써 만들지 않아도 되는 곳, 내일이 없이 이대로 지속되어도 좋은 곳, 그런 곳으로서 자리매김 되고 있던 지하 망명정부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어머니의 TV 귀신을 나는 믿지 않았지만, 나의 의자 귀신은 등장하자마자 나의 지하실을 지배하고 있었다.
지하실의 풍경은 새삼 어색했다.
젠장,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 없이 편하기만 했었는데.
나는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앉아 씨를 마주하고 앉았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당신 얘기를 들어봅시다. 그보다 처음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우선 뭐 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 같은 건 없어요? 빨간 색깔과 허공을 보며 말하기가 영 어색해서. 둔갑술 같은 건 못해요?”
앉아 씨는 말이 없었다.
삐졌나? 이젠 귀신을 달래기까지 해야 돼?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착각의 와중에 수증기인지 안개인지 무언가가 의자에게서 피어나더니 사람의 형태가 실루엣처럼 생겨났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귀여운 타입의 여자의 모습이었다.
요술 램프의 요정이 이러려나! 나의 판타지가 다시 한 번 꿈틀댔다.
“오호! 이러니 한결 낫네요. 그나저나 여성분이었어요?”
나의 말이 한결 누그러졌다.
“우리는 키퍼Keeper에 따라 달라져요. 아버지가 정년퇴직 하고 나서 오랫동안 쓰던 것을 딸이 물려받았으니, 남자였다가 여자가 됐다고 해야 할까요?”
의외로 앉아 씨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아내와 왔을 때의 그 앙칼진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나 역시 조금씩 저절로 부드러워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도 동시에 생겨났다.
이제 내가 의자의 새로운 키퍼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러면 이 눈앞의 요정이 남자 요정으로 바뀐다? 나를 닮은 남자 요정? 그건 엽기 귀신이지 요정이야? 이 귀신인지 요정인지 하고는 영 맞는 게 하나도 없어!
“앉아 씨 목소리를 사람들이 들을 수 없는 것처럼 이런 모습 역시 사람들 눈에는 안 보이나요?”
“그래요. 당신처럼 사물들의 정령의 목소리와 모습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그런 능력이 복이나 행운인가요, 아니면 일종의 저주나 착란 같은 건가요?”
“글쎄요. 그건 저로서는 알 수 없어요.”
“모든 사물에 정령이 있어요?”
“아뇨. 저같은 경우도 사실 흔치 않아요. 제 짝인 저 의자에는 정령이 없어요. 그래서 외로울 때도 많았어요.”
나와 앉아 씨의 대화가 처음으로 조금씩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것 같았다.
“좋아요. 궁금한 게 많지만 언제 아내가 호출할지 모르니 일단 앉아 씨 얘기부터 듣죠. 뭐가 분하고 억울하죠? 복수해달라는 것은 또 무슨 뜻인가요?”
과연 어떤 대답이 나올까 하는 마음에 저절로 땀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