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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살롱 김은정 Oct 14. 2019

마레에게 일어난 일

손녀와 할머니의 아름다운 이야기

누구나 삶을 다 기억할 순 없다.

기억하는 것 조차 힘에 버거울 때가 많을수록 삶이 지쳤으니 쉬어야 하는 때도 오는 것이겠지.

올 초 70대 여노인의 시간여행을 담은 드라마 <눈이 부시게>가 TV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다음 날 다들 콧끝이 축축해져 오던 때가 있었다. 인생과 시간의 공간을 농축적인 연기와 명대사로 친정엄마를 자꾸 보고싶게 만들었다.


인지증, 치매는 특별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건 아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 고생의 정도, 지적수준 등의 차이에서 생기는 것 보다는 나이듦이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다. 특히 뇌의 인지기능이 하루가 다르게 빨리 노화의 형태로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같은 시간인  24시간을 살아가는 것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더 빠르게 진행되어 점차로 기억을 잃다가 자기가 누구인지 조차 잃게 되는 안타까운 질병이다. 나이드는 것도 서러운데 가족조차 몰라보는 것은 얼마나 서럽고 속이 상할까. 지금도 드라마를 떠올리면 눈물이 나서 돋보기 안경을 벗고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는다.


어린 손녀가 할머니랑 많은 추억을 쌓았다면,

할머니와 손녀가 벚나무에서 달콤한 과자를 먹고 끈적한 손으로 나무를 내려오던 추억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래서 그 순간을 더 이상 간직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그 추억이 많은 만큼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할머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티너 모르티어르 글, 카쳐 페메이르그림 의 <마레에게 일어난 일> 그림책은 치매로 사람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 할머니와 손녀와의 진심어린 소통을 담을 그림책이다.

 마레는 태어나서 처음 한 말이 아빠나 엄마가 아니라 '과자'일 정도로 늘 배가 고팠고 참을성이 없었다. 마레처럼 참을성도 없고 먹성도 좋은 할머니가 마레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손녀와 할머니의 가장 좋은 놀이터는 벚나무에서 노는 것이고 벚나무에서 노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상이었다.


갑자기 할머니가 쓰러져 요양병원에 누워있게 되어 깊은 잠만 잤고 마레와 놀아주지 못했다. 잠에서 깨어난 할머니는 마레와 친한 친구였던 것도 과자를 좋아하는 것도 벚나무에 올라간 것도 모두 기억에서 사라졌다. 할머니가 심심해 할까봐 온통 사방 벽에 그림을 그리는 마레는 엉뚱하다고 혼났지만, 할머니가 아무도 못 듣는 발음으로 첫 단어, 첫 음절만 말만하는데도 정확히 알아듣는 사람은 간호사도 아니고 엄마도 아닌 어린 아이의 마레만이 알아들을 수 있다. 이런 엉뚱한 손녀 마레를 보면 할머니의 오랜 친구이자 단짝 친구인게 확실하다.


짧고 호흡이 갸날픈 말을 쉽게 알아 들을 수 있는 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다. 가령, 가장 어린 갓 태어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주변 사람들은 왜 우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신기하게도 엄마는 울음소리만 들어도 주변 사람은 배가 고파우는지, 졸려서 우는지, 놀아달라고 우는지, 하물며 안아달라고 하는 소리까지도 알아 듣는다. 그만큼 누구를 잘 안다는 말은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마레처럼.


할머니가 치매로 기억이 없어졌다고는 하나 할아버지의 죽음은 할머니의 감정과 연결된 인지까지 앗아가진 못했다. 할머니의 슬픔을 보고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주며 할머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꼬마 손녀는 알아차렸다. 다른 가족들, 주변 간호사들도 듣지 못하는말 '할아버지의 머리카락을 꼭 한 번 어루만지고 싶다'을 들은 마레. 모두가 위험하다고 말리지만 엉뚱이로 생각하는 마레를 말릴 수는 없었다. 마레는 할머니가 탄 휠체어를 밀고 할아버지의 눈을 감은 모습 옆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게 해주었다. 그러고는....

과자
라고 마레를 보며 생긋 웃는 할머니


<눈이 부시게>의 드라마에서 명대사가 많이 나왔다. 그 중 배우 김혜자가 70대 치매노인의 역할을 하면서 하는 말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 만큼 약을 먹는다는 것이다."

"하루가 다른 게 이런거구나. 얼마나 더 나빠지는건가."

만 떠올려도 나이든다는 것이 단순히 숫자로 한정지을 수는 없다. 나이듦을 인정하는 순간, 서글픔이 몰려와 오히려, 어쩌면 그 나이듦의 마음아픔을 잊고자 피매에걸리는 건 아닐까?


아픔을 없앨 수는 없지만 아픔을 덜 수는 있을 것 같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아픔을 견딜 수 있게 "함께 있어주기"와 "함께 머물러 주기"가 있다면 아픔의 순간에서도 미소지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맑은 가을하늘을 우러러 보는 10월 14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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