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오히려 그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의 기쁨을 방해하는 가장 위험한 적이다.
누가 그러라 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원한적도 없는데 너무나도 적극적으로 기쁨을 내놓은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과연 무엇 때문일까. 머리털 나고선 들판에서 뛰노는 것이 좋았고 또래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하며 뒹구는 것이 좋았다. 유치원에 가서 선생님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흥얼거리는 재미가 있었고, 친구들과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꺄르르 웃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두 다리로 서서 사람 구실이란 걸 하게 되는 순간부터 약속이라도 한듯 때묻은 컨베이터 벨트 위로 올라간다. 옆 집 아줌마네 딸래미가 영어 학원을 다닌다 카더라, 성적이 20%나 올랐다더라, 엘리트 반에 들어가 장학금을 받는다더라 하는 쓸데없는 소문에 휘말려서는. 벨트 위로 올라가길 원치 않았는데도, 등 떠밀려 억지로 올라가야 했고 내 맘이 가는 곳으로 갈 수도 없었다. 그저 위에서 하라는대로 있을 뿐이었다. 서 있으라면 서 있고, 앉아 있으라면 앉아있고, 누우라면 눕고. 생김새만 다른 복제로봇이 따로 없다. 하루종일 굴러가기만 하는 컨베이어 벨트 위의 지겹고도 분주한 삶을 살아가느라 지쳐버렸다. 이 라인에서 벗어나는 순간, 나사 하나 빠져버린 미완성품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점프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비슷한 구석 투성이인 옆 사람들과 말섞고 싶지 않다. 왠지 이 사람말이 저사람 말일 것 같고 예상 꽤나 가는 레파토리로 본인의 이야기 술술하는 꼴일것 같기에.
캐캐한 냄새가 나는 이 곳에서 쳇바퀴 구르듯 반복되는 삶, 하지만 손쉽게 놔버리기엔 불안한 삶. 현타가 씨게 온다. 다른 길로도 가보고 싶고, 새로운 만남도 갖고 싶고, 내 맘에 쏙 드는것도 골라보고 싶은데 그럴수가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 기쁨인데, 진짜.
첫 문장 출처: 삶을 견디는 기쁨 / 헤르만 헤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