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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May 30. 2022

1 day : 시작이 뭔가 잘못되었다

쉼을 위해 걷습니다

 Walk와 Work의 발음 차이를 배우던 시기가 지나 사회생활을 하며 걷는 것조차 숙제처럼 느껴지던 무렵.

너무 많은 정보와 일들에 치이던 나는 과도한 스트레스와 운동부족으로 인한 건강의 악화를 느꼈다.

8년 동안을 간호사로 일해오며 교대근무와 잦은 회식으로 인해 바이오리듬이 깨지며 생기는 당연한 결과였다.


 건강이 악화되며 자연스럽게 체중은 증가했고, 폭식하거나 폭음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체중 증가로 인한 스트레스는 또다시 폭식을 부르는 악순환이었고, 덩달아 얻게 된 마음의 병으로 인해 약을 복용하며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여성으로서 체중 조절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기 관리를 못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급하게 살을 빼고 또 급하게 요요현상을 반복하며 점차 건강을 잃어갔다.

 수면의 질도 나빠졌고, 정신과 약을 3년 복용하며 불안감이 극에 치닫는 시기가 찾아왔다. 자존감도 많이 낮아졌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점점 힘들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부모님께서는 어렸을 적 중화요리 식당을 하셨고, 나는 맛있고 자극적인 음식에 익숙해졌던 사람이었다.

맛없는 건 먹지 않겠다는 식사 철학과 함께, 음주가무를 즐기는 데에 많은 시간과 돈을 쏟았었다. 

 그러다 문득 '계속 이렇게 지내다간 내가 좋아하는 것들 오랫동안 누리지 못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지금은 30대 초반이기에 어느 정도 체력과 몸상태가 지탱해주고 있지만, 지금의 습관으로는 머지않아 병상에 누워있는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너무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다. 열정과 욕심이 가득해서 하고 싶은 것은 해봐야 하는 성격이었고, 본업 이외의 일들로도 쫓기는 삶을 살고 있었다.
 간호사 이외에도 라디오 플랫폼의 DJ, 일러스트 작가, 성우, 때때로는 유튜브 영상을 편집해 올리는 일들을 하며 흔히 말하는 'N 잡러'인 나였다.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도 하고 싶은걸 해나가냐며 열정적인 내 모습을 박수 쳐주었지만 정작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하나의 몸으로, 주어진 24시간 이내에 떠오르는 아이디어와 일들을 지탱해 나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점점 내 삶이 내게 위협이 되고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모래성 같단 생각이 들 시기에, 정말로 건강이 걱정되었다. 어떻게 하면 건강해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다가 걷는 통로로만 사용했던 집 앞의 산책로가 생각이 났다. 나의 하루의 일정이 끝난 뒤 그곳을 걷기에는 위험하단 생각이 들어서 늘 망설였던 곳이었다.

 사실은 귀찮음과 힘들 것 같다는 지레짐작 때문에 변명을 늘어놓은 것이다. 그래서 단 며칠이라도 아침에 1시간 일찍 일어나 보기로 마음먹었다. 아침엔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고, 날이 밝으니 위험하진 않겠단 생각 때문이었다. 이 전에도 비슷한 결심을 한 적이 있었지만, 쫄쫄 굶어가며 다이어트를 위해 걷기를 실천한 나로서는 그저 힘든 과제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조금 달랐다. 나는 그저 걷고 싶었다. 너무 바쁘고 정신없이 살며 여기저기 신경 쓰는 와중에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걷고 싶었다.

 나는 어떠한 목적도 갖지 않은 채로 '쉼'을 위해 걷기로 했다.


 첫날 아침 6시에 알람이 울렸다. 전날에 바짝 긴장하고 잠들어서 그런지 벌떡 일어나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곤 운동복도 제대로 된 운동화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로 집을 나섰다.

 내 복장은 노란색 후드티에 신축성이 좋은 골지 롱스커트, 그리고 맨발에 크록스였다. 1시간 뒤 집에 도착해서야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일부터는 운동화를 신어야지.', '그리고 추우니까 바지를 입어야지.'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그러나 발바닥의 뻐근함으로 인한 힘듬보다는 시작했다는 뿌듯함과 아침 공기가 주는 상쾌함으로 인해 하루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침의 여유와 활력이었다. 내일은 어떤 복장으로 나와야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걸을 수 있을지만 고민하던 1시간이었다. 복장으로 인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던 첫날의 걷기였지만 나의 만족도는 100%였다. 출근해서는 아침의 산책로의 풍경을 사진 찍어 주변 사람들에게 보내며 나의 도전을 전하기도 했다. 많은 격려와 응원 그리고 며칠 가지 못할 거란 예언(?)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쉼을 위한 걷기'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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