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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빅 딜로 헤쳐모여

by 우분투

얼마전 PF 모집을 완료한 서울 서초구 서리풀 개발사업에는 주요 시중은행이 대거 참여하였다. 서울 주요지역, 특히 오피스 공급과잉 이슈에서 다소 벗어난 강남권의 대규모 복합개발사업인데다, 사업시행자도 국내 굴지의 개발전문사인 엠디엠 그룹인 점이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통상적인 PF에 비해 은형별 대출참여 금액이 매우 컸는데, 주관사인 신한은행이 2조원 취급을 승인한 것 외에도 KB은행이 7천억원(KB손보 3천억원 별도), 우리은행이 5천억원을 취급하였다.


KB금융, 5.35조 모집 서리풀업무복합개발사업에 1조원 베팅(딜북뉴스, 2025.6.11)

엠디엠, 서리풀 개발 본PF 실행…시중은행 대거 참여(딜사이트, 2025.7.2)


최근 시중은행이 우량 개발/매입 건에 대규모 여신을 취급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서리풀 외에도, 지난 해 국민연금이 투자한 마곡 원그로브 오피스에 담보대출 1조원을 승인(취급액은 6600억원)하였고 맥쿼리가 매입한 하남 데이터센터에도 2천억원의 대출을 취급하였다. KB은행도 그룹 계열사와 함께 8천억원에 이르는 서울 북부역세권 브릿지론을 소화하였다. 우리은행은 판교테크원 오피스 담보대출 1.1조원을 인수 확약한 바 있고, 하나금융은 청라 신세계 스타필드 개발사업에 5천억원의 여신을 취급하였다.


신한銀, 1.9조 모집 마곡 원그로브 '준공 담보대출'에 1조 참여(딜북뉴스, 2025.1.2)

이지스 하남데이터센터, 4000억 '준공 후 담보대출' 약정(딜북뉴스, 2024.2.26)

한화, 서울역북부역세권개발 2조 본PF 조달 시동(딜북뉴스, 2024.8.7)

판교 테크원 1.1조 담보대출 윤곽...우리銀 총액인수 속 '새금고·농협' 앵커로 참여(딜북뉴스, 2025.8.20)

‘6000억 규모’ 스타필드 청라, 신세계프라퍼티-하나금융 막판 뒷심 눈길(파이낸셜뉴스, 2025.8.17)


대규모 여신 취급 건이 늘어난 것은, 사업성이 양호한 '빅 딜'에 여신을 집중시키는 쪽으로 은행권의 부동산금융 포트폴리오 전략이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 부동산 시장은 지역/유형/참여자에 따라 자금조달 환경이 차별화되고 있다. 지방 주택사업, 비주거 사업, 중소 규모 사업 등은 리스크 확대로 자금조달이 부진한 반면, 서울권 오피스 투자 및 복합개발사업, 수도권 공동주택사업, 광역시 대형 건설사 참여사업은 사업 추진이 비교적 수월한 상황이다. 중소형 여신으로 자산을 분산시키기보다, 우량자산에 대규모로 여신을 취급하는 것이 자산증대와 리스크 관리 양 측면에서 보다 유리한 환경인 셈이다.


실제, '빅 딜' 위주의 영업 전략은 은행뿐 아니라 여러 부동산 업권에서 나타나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중소 건설업체들이 유동성과 실적 위기를 겪고 있는 반면, 상위 건설사들이 정비사업, 서울권 오피스/복합개발, 수도권 데이터센터 개발사업 등을 대상으로 수주를 늘려나가고 있다. 투자 시장에서도 기관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오피스, 호텔, 데이터센터 등으로 투자재원을 집중하고 있고, 부동산 여신 쪽에서는 은행과 대형 증권사가 주도하는 대형 딜로 자금이 몰리고 있다.


건설경기 부진에도 10대 건설사 상반기 수주액 작년 한해치 육박(연합뉴스, 2025.6.24)

코람코 “국내 상업용 부동산 자산별 양극화 계속될 전망”(매일경제, 2025.9.5)

PF시장 기지개 켜나...대출채권 유동화 '반등'(더벨, 2025.8.27)


빅 딜로의 신규 수주/투자 쏠림은 고위험 영역의 투자 축소와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일례로 PF 시장에서는 대출잔액이 감소하는 '디레버리징'이 계속 진행 중이다. '23년말 231조원에 달하던 금융업권 PF대출잔액(토지담보대출 포함)은 '25.3월말 191조원까지 줄어들었다. 특히 증권과 은행의 익스포져가 각각 1.6조원 증가, 3.4조원 감소로 비교적 큰 변화가 없었던 반면, 보험은 6.1조 감소, 저축/여전/상호 등은 각각 9.1/8.3/15.2조원 감소하며, 제2금융권에서의 여신 잔액이 크게 감소하였다. 시장 전체적으로 유동성이 감소한 상황에서 '될만한 사업'으로 자금이 집중되고 있는 셈이다.


202509-[금융위] PF 익스포져 현황.jpg


특히, 연기금/공제회의 블라인드펀드 등을 통해 투자가 늘고 있는 상업용부동산 투자시장과 달리, 개발 시장에서는 유동성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 은행과 함께 PF 자금조달을 주도해 왔던 대형 증권사 일부에서도 최근 신규 자금집행이 다소 주춤하는 모습이다. 발행어음 신규 인가 등을 통해 증권업 운용자금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부동산보다 기업 투자를 장려하는 정부 정책 기조에 더해, 제2금융권의 부동산 투자 위축으로 대주단 구성이나 셀다운이 지연될 경우에는 증권업의 부동산 익스포져 증가세도 둔화될 수 있다.


증권 부동산금융의 최근 이슈(우분투, 2025.6.3)

삼성증권 PF 신용공여, 활발하던 기세 꺾였다(딜북뉴스, 2025.7.15)

'PF 고위험지대' 여전/상호금융에 자본규제 강화(더벨, 2025.7.3)


이는 당분간 은행권, 특히 자금력이 풍부한 대형 은행이 부동산 금융시장의 큰 손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수천억에서 조 단위의 자금을 모아야 하는 대형 사업장에서는 은행의 전략적 참여를 끌어낼 수 있는가가 자금조달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반면, 은행 입장에서는 타 업권의 투자여력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현 시점이 자산 포트폴리오를 개선하는 기회일 수 있다. 성공적으로 실행할 수만 있다면, 위험도가 높은 부동산 익스포져는 줄이되, 입지, 자산, 사업구조가 우수한 우량 사업을 대상으로 여신을 집중 취급함으로써 수익 증대와 리스크 관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개발-시공-금융의 각 영역에서 시장 참여자들의 체력과 선호가 차별화되는 최근의 시장 상황, 부동산 대신 기업금융을 확대한다는 정책 기조와 그에 따른 자본시장의 머니 무브는 은행권이 부동산 익스포져를 확대하는 데 부담이 될 수 있다. 결국, 위험가중치가 높고 자본부담이 크지만, 수익 기회도 큰 부동산 금융에 대해 은행권이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에 따라 향후 부동산 금융시장의 경쟁 환경이 크게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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