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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Feb 07. 2024

찜질방에서 만난 러시아인

왜곡과 편견에 대하여

⁎ 본 글은 어떤 정치적인 의도도 없으며, 주제 또한 러시아가 아니라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시각의 필요성에 대한 것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예전 문화유산 기행을 다닐 때의 일이다.

여행 11일째 되던 날 밤, 해남의 한 찜질방에서 러시아 여행객을 만났다. 우연히 같은 방있게 되었는데, 여행 외국인을 만난 것은 처음이라 무척이나 반가웠다. 마침 통역 어플이 있어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자기를 러시아갱단이라고 소개한다. 강간죄로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왔고, 한국에 친구가 있어 여행을 왔다나.


'헐...이거 뭐지?'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 시작한다. 이런 사실도 모르고 친근하게 대화를 걸었는데, 이미 엎질러진 물, 상황이 매우 난감하게 되었다.


'그래도 일단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어야지.'

그래서 친절하게 대해주었는데, 도리어 이것이 화를 불러왔다. 나의 그러한 태도가 고마웠는지, 간식거리와 음료를 주면서 마음껏 먹으라고 한다. 그런데 먹지도 못하는 술을 계속해서 권한다. 미안하지만 계속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혼자서 병을 비우고, 한 병을 더 사 와서 마저 비운다. 결국에는 취해서 난동을 부리고 계속 잠을 못 자게 괴롭히는 것이었다.


술이 들어가니 본색이 나오는 것 같아, 두려운 마음에 짐을 챙겨 야반도주를 감행했다. 새벽 한 시였다. 급하게 서두르는 바람에 몸빼바지에 들어있던 스마트폰이 시멘트 바닥으로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졌다. 액정이 온전한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파손되었다. 서둘러 찜질방을 빠져나와 다음 목적지인 다산 초당으로 무작정 차를 몰았다. 피곤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도착한 곳에 마침 정자가 하나 있었고, 마루 위에 텐트를 치고 바로 곯아떨어졌다.


이렇게 나는 러시아인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추억으로 안게 되었고, 이러한 경험은 러시아 사람에 대한 이미지로 굳어졌다.


그러다가 최근 사업차 러시아에서 오랜 기간 머물다 오신 브런치 작가 한 분을 알게 되었다. 해외에서만 20여 년 머물면서 사업을 하셨다는 그분의 삶은, 웬만한 영화 뺨치는 스토리를 엮어낼 수 있을 만큼 화려하고 다채로웠다. 글 솜씨도 좋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마치 황금시간대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다음 편을 애타게 기다리게 만드는 마성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내가 지금까지 러시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계신다는 사실이었다.


03화 야누스의 계절 (brunch.co.kr)


05화 모스크비치카 vs. 모스크비치, 이들은 누구인가 (brunch.co.kr)


06화 분절 아닌 연결, 단절 아닌 통합 (brunch.co.kr)


러시아로 향하는 비행기의 스튜어디스들은 늘씬하고 아름다운 모습과 상냥하고 환한 미소로 승객을 맞아주고, 러시아 승객들은 무뚝뚝하지만 활력이 넘친다. 모스크바의 여성들은 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고, 남성들은 강인하고 건강하며 깔끔하다. 운전할 때도 끼어들려 하면 자리를 내어주고, 끼어들고 나서는 고맙다고 정중히 인사한다. 운전자끼리 서로 싸우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세계 3대 독서국가라는 사실.

인구의 53%가 3개월 평균 5권의 책을 읽는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고전과 베스트셀러를 읽으며 대화와 토론을 나누고, 러시아의 전통이 담긴 미술관과 극장에서 러시아의 정신을 배운다.

발레, 클래식, 뮤지컬, 문학회, 독서회 등이 매일 열리는 격조와 품위가 있는 도시, 그곳이 바로 모스크바다.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안톤 체호프, 푸쉬킨,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와 같은 거장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곳.

나는 이런 모스크바의 풍경을 접하면서 무척이나 충격을 받았다.


어떤 시간, 어느 곳에 가든 고개를 푹 수그리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흔한 풍경, 책을 읽는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기 힘든 이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인 것을 감안해 보면, 오히려 부끄러운 것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였다. 내가 만난 러시아인은 그들 중 극히 일부였을 뿐, 전체 러시아를 본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한 번의 강렬한 인상은 러시아가 어떤 나라인지를 단번에 각인시킬 만큼 큰 영향을 주었다.


우리는 때로 자신이 경험한 어떤 것을 전부인 것처럼 인식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작은 것 하나로 전체를 보려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곤 한다. 특별한 계기로 인식의 틀이 깨지기 전까지는,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아 왜곡된 상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넓은 시각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섣부른 판단과 평가를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다.


그나저나 러시아 여성들에 대해 더욱 궁금해지는 건 왜일까? 흠흠..




연재하고 있는 브런치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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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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