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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Jun 10. 2023

경주에는 왜 우물이 많을까?

문화유산 지질학

신라의 천년수도 경주에는 우물과 관련된 전설도 많고 우물도 유독 많다. 현재까지 발굴조사된 경과에 따르면 270여 기가 확인된다.


신라의 초대 왕인 박혁거세는 '나정'이라는 우물가에 있던 보랏빛의 알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박혁거세의 왕비인 알영은 우물가에서 나타난 용이 낳은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고 이 우물을 '알영정'이라고 한다. 또한 김유신은 백제와의 싸움에서 돌아오다가 다시 침입의 소식을 듣고 집에는 들르지 않고 집의 우물물만 한 그릇 마시고 "우리 집의 물맛은 변함없구나"하며 다시 싸움터로 나갔다고 하는데 이 우물이 지금의 '재매정'이다. 이밖에도  유명한 곳으로는 경주 향교의 우물(설총이 마셨다 하여 일명 '총명수'라고도 함), 쪽샘, 분황사 우물(제목사진) 등이 있고 국립경주박물관의 야외전시장에 가보면 다양한 우물의 부재가 전시되어 있다. 


재매정, ⓒ 전영식
국립경주박물관 우물 부재, ⓒ 전영식 


경주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新羅全盛之時 京中十七萬 八千九百三十六戶"라 하여 전성기 때 17만 8,936호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를 1호당 4인으로만 잡아도 71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살았다는 이야기다. 경주는 서쪽으로 치우쳐 형산강이 흐르는데 이는 위치상 직접적인 식수로의 한계가 있다. 북천과 남천은 지금의 수량으로 보아 충분한 식수원이 되기는 어려웠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당시에는 달랐을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식수원 및 생활용수는 다른 곳에서 구해야 했는데 이 공급원의 역할을 한 것이 우물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우물로 접근이 가능한 충분한 수자원이 있어서 천년동안 수도로서 기능을 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경주의 우물, 출처: 문다솔(2022)


경주는 거의 아무 곳이나 파도 물이 나왔던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의 우물에서도 깊지 않은 곳에 물이 고여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신라 마립간의 무덤은 묘실을 땅속으로 깊이 파지 않고 지표면 위에 만들고 이 위에 돌을 쌓은 적석목관분의 형식으로 만들었다. 신라 제38대 왕 원성왕(785~798)의 무덤인 원성왕릉은 물이 많이 나와 관을 나무기둥 위에 괘어  안치했다고 해서 괘릉이라고 불린다. 지금도 무덤 오른쪽으로는 우물이 있고 물이 흘러나온다.


재매정의 우물물, 지상에서 1m 내외로 보인다, ⓒ전영식
원성왕릉(괘릉)의 우물, ⓒ전영식

경주에 우물이 많은 이유


이렇게 경주에 우물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경주의 지형은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형태이다. 북쪽으로부터 섯갓산(271m), 소금강산(176m), 약산(272m), 힌등산(268m)이 남북으로 이어지고 남산(468m)이 경주시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지역은 역단층인 양산단층 등에 의해 동쪽이 높은 지형을 보이고 여기서 침식된 쇄설물이 경주분지를 이루었다고 판단된다. 


경주의 지형, 출처: google earth 수정


위의 사진에서 보면 이러한 사실은 분명히 보인다. 현재의 경주시 대부분이 형산강과 동쪽 산지 사이에 발달한 선상지에 자리 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확인되는 단일 최대 규모의 선상지로 전형적인 부채꼴 모습을 하고 있다. 선상지의 가장 높은 곳인 선정에서 가장 낮은 곳인 선단까지의 거리는 4.5km인데 그 표고차이는 45m에 불과해서 매우 완만한 지형임을 알 수 있다. 


보통 선상지에는 물을 얻기 쉬운 선정과 선단에서 취락이 위치하고 가운데 부분인 선앙에서는 물이 적어도 키울 수 있는 과실수등으로 이루어진 과수원이 만들어지는데 경주분지는 그 구배가 낮아 전 지역에서 취락의 형성이 가능한 모습이다. 


경주의 선상지, 출처: 윤순옥(2004)


경주는 단층에 의해 혜택을 본 지역


이와 같은 지형적인 특징은 우리나라의 다른 왕경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으로 경주가 천년동안 수도로서의 명맥을 이어간 한 가지 이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단층에 의한 동고서저의 지형이 근본 원인이고 단층이 만나는 곳에 문명이 발달하는 세계사적인 맥락과도 통한다고 볼 수도 있다. 지질학적인 시각으로는 경주가 이렇게도 보인다. 그래서 언제든 가고 싶은 곳이다. 


참고문헌


1. 권오영 외, 2015, 신라우물, 민속원

2. 문다솔, 2022, 통일신라시대 경주지역 우물 연구, 영남고고학, 제92호 p.149~2022

3. 윤순옥, 황상일, 2004, 경주 및 천북 지역의 선상지 지형발달, 대한지리학회지, 제39권 제1호, p.56~69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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